'괴물'을 보았다. '아직도 그 영화를 안 본 사람이 있단 말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여기 있었다. 우리 집엔 한 명 더 있다. 우리 할머니. 나는 그 유명한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도 작년에 보았고 식스센스도 '브루스가 유령이야'라는 말조차 잊혀진 2004년에야 처음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첫 키스만 50번째'라는 영화에서 '식스센스'의 한 장면이 나온 덕에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영화를 그 정도로 안 보는 사람은 아니다. 아니 외려 영화를 폭식하는 사람이다. 막 제대한 2003년 한 해에만 무려 200여 편의 영화를 보았고 암흑의 경로로 수집해 보관하고 있는 영화만 해도 CD로 300여 장이 넘는다. 영화제에서 일하기도 했고 비디오 가게에서 알바를 한 적도 있다. 얼마전 이사 준비를 위해 버리긴 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모아오던 포스터와 팜플렛만 해도 수백 장이 넘는다. 정말 배탈날 정도로 영화를 쳐먹었었다.
그냥 가끔씩 어떤 영화에 대해선 망설임이 생길 때가 있다. 달리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보려고 마음 먹으면 망설여지는 것. 다들 재밌다고 하고 관객 수도 만만찮게 들어찬 영화인데 확 땡기는 무엇이 없는 것이다. (때론 너무 땡겨서 좋은 타이밍이나 좋은 동행을 만들기 위해 기회를 노리다 놓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망설임이 생기면 결국 그 영화는 못보게 된다. 물 건너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뒤 늦게 찾아보더라도 별 감흥이 없을 때가 많다. 감흥을 느껴도 다들 식상해져 버린 터라 그 감흥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
'괴물'을 무척 재미있게 보았다. 홀로 방 바닥에 누워 담배를 피워대며 불량스러운 자세로 보았지만 왜 영화관에서 안봤나 후회가 들 정도로 무척 빠져들었다. 어떤 이들은 어색하다고 욕하지만 괴물의 CG도 괜찮았고 후반부에서 늘어진다는 평이 무색할 정도로 끝까지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간간히 나오는 유머에 폭소하고 가족을 잃은 슬픔에는 눈물을 찔끔하기도 했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막상 그런 감흥들을 풀어놓자니 갑자기 식상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어디서 읽었던 글을 짜집기 하는 것 같고 짧은 감상조차 누군가 했던 얘기인 것만 같다. 다들 곱씹고 곱씹어서 너덜너덜 해진 껌을 되받아 씹는 기분이랄까?
이제는 망설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것에 그리 특별한 의미를 갖다 붙이지 말아야겠다. 뭐 대단하다고...그냥 땡기면 봐야지. 따끈따끈할 때 극장에서 보고나와야 영화 한 편 봤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동행한 사람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영화를 안주삼는 것도 영화보는 맛 중의 하나일게다. 아님 고독을 벗삼아 혼자 보는 것도 괜찮고...
지금 생각하면 창피한 얘기지만 한 때 영화감독을 꿈꾼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때는 소위 말하는 '시네아스트'라는 것이 되고 싶었다. 예술영화를 꿈꾸는 철부지 시네키드였달까? 아마도 그래서 내게 영화란 것이 특별한 것인가보다. 그리고 이렇게 영화를 보고 나면 뭐라도 남기고 싶어 하는가 보다.
[배우들...]
봉준호의 페르소나 송강호다.
어리석고 힘없는 가장의 연기가 대단했다.
이미지는 술 좋아하고 게을러
아내한테 구박받는 한국남자의 전형이지만
낄낄대는 웃음과 어눌한 모습 속에 훈훈한 인간애을 담고 있다.
대단한 배우!
'넘버 쓰리'에서 나는 지금의 송강호를
상상조차 못했었다.
총알이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 괴물을 등지고
어서 가라는 손짓을 하는 그 때의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아태영화제 조연상 수상.
맛깔나는 웃음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
봉감독의 una 페르소나?
배두나를 참 좋아한다.
'고양이...'에서의 연기에 반한 이후로 쭈욱~
누구처럼 예쁘기만 한 배우가 아니다.
독특한 매력과 분위기가 있다.
활 시위를 당긴 저 모습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아마 사극 배우들도 쉽게 소화못할 거다.
박해일. 연애의 목적을 보며 박해일을 다시 보았다.
낯뜨겁고 추잡한 연기를 그리 능청스럽게 해내다니...
거기서 문성근을 읽었다면 조금 오바인가?
아직은 다양한 색깔을 간직한 배우다.
그만의 독특한 느낌이 어떻게 만들어져갈지...
괴물이 만든 또 하나의 신화?
아이를 부둥켜 안고 괴물을
응시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영화 내내 저 몰골(?)이었지만
무척 귀엽다^^
[감독씨...]
봉준호.
흔치 않은 봉씨라 처음엔 봉만대 감독이랑 헷갈렸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아우라를 갖게 된 두 사람이건만...-.-;;
2000년 배두나가 출연한 '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참패한 이후
비디오 가게나 할까하는 고민도 했다고 하던데
이젠 한국 최고 감독의 반열에 오른 그다.
기자들이 뽑은 한국 최고의 영화 '살인의 추억'
한국 최고의 흥행 영화 '괴물'
흥행과 비평에서 이처럼 완벽히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박찬욱? 음... 이준익? 장진? 이건 좀 약한가...)
한국영상아카데미 11기.
나도 여기나 들어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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