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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번지는 상상의 힘 미스 포터
jimmani 2007-01-24 오후 4:24:32 638   [2]

수많은 음악과 글로부터 우리는 즐거움을 얻지만, 막상 그런 음악과 글을 지은 사람들의 삶은 우리가 얻는 즐거움만큼 마냥 밝지만은 못한 경우들이 흔하다. 금방 떠올릴 수 있는 모차르트나 베토벤같은 명음악가들의 삶도 결코 평탄하지 못했고, 최근으로 와 보면 지금이야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롤링 또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펴내기 전까지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막막한 하루하루를 이어나갔었다. 작품에 힘을 쏟아붓는 만큼 현실의 자기 삶에서는 그만큼 많은 걸 포기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미스 포터>의 주인공이 되는 베아트릭스 포터는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삶에는 그렇게 큰 굴곡이 없었고, 시련의 연속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영화의 내용 면에서 봤을 때에는 굴곡 없는 삶이 지루하고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영화 속 베아트릭스 포터의 상상력은 비극적인 면을 띤 어두운 인상이 아니라 사람의 가슴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동화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는 화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1902년, 영국 런던에 활기와 의욕으로 가득찬 여인 베아트릭스 포터(르네 젤위거)가 있다. 어려서부터 자연과 동물들과 벗하며 상상력을 키워온 베아트릭스는 동물들의 그림도 곧잘 그리며 그들에 관한 이야기도 곧잘 지어냈다. 결국 베아트릭스는 작가로서 책을 펴내기로 결심하고 출판사들을 이곳저곳 드나들지만, 그 시대 사람들의 시선은 "여자의 인생 최대 목표는 시집 잘 가는 것"이었다. 당연히 32살 노처녀가 책 펴내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좋게 보지는 않는다. 그런 가운데 그녀의 책 출판을 돕게 된 청년 노먼 워른(이완 맥그리거)은 출판 일에는 난생 처음인 이쪽 분야의 새내기. 하지만 베아트릭스의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상상력에 금세 빠져들고 둘은 힘을 합해 출판 준비를 해나간다. 그리하여 베아트릭스가 펴낸 첫번째 책 <피터 래빗 이야기>는 대히트를 기록하고, 이 인기에 힘입어 제미마 퍼들 덕(오리), 톰썸과 헝커 멍커(쥐)의 이야기 등 후속작들을 펴내게 된다. 그러면서 베아트릭스와 노먼의 서로를 향한 감정 또한 애틋하게 무르익기 시작하는데, 하지만 이들의 사랑의 앞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 영화는 동화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을 영화화한 전기 영화이다. 하지만 예술가의 삶을 다룬 대다수의 전기 영화가 끝없는 고뇌와 정신적 갈등 등으로 인해 마냥 밝을 수만은 없는 분위기인데 반해, 이 영화는 사람을 참 기분좋게 하는 화사한 매력을 품고 있다. 이 화사한 분위기는 두 배우의 연기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강인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여성의 모습을 뚜렷이 보여줬던 르네 젤위거는 이 영화에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준수한 연기를 보여준다. 가식없이 활짝 지어보이는, 사람 좋아보이는 특유의 미소는 영화 속에서 순수한 열정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펼 쳐내는 베아트릭스 포터의 활기에 더할 나위 없이 들어맞는다. 이완 맥그리거 또한 오랜만에 여성 관객들이 보면 꽤나 호감이 갈 만한 훈남의 모습으로 <다운 위드 러브>에 이어 또 한번 만난 르네 젤위거와 함께 멋진 호흡을 맞추었다. 베아트릭스 포터 못지 않게 순수하고 천진한 면을 지닌 청년으로서 모범적이면서도 선량한 남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다른 데는 일체의 수염이 없으면서 콧등에만 김흥국마냥 수염이 난 겉모습에서부터 그러한 인물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발랄한 상상력을 실사 영화에다 애니메이션으로 덧대어 붙인 형식도 인상적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싹을 틔우기 시작한 베아트릭스의 상상력이 엄마와 아빠가 올라타는 마차를 쥐들이 끄는 호박마차처럼 보이게 하고, 종이 위에 자리잡은 동물 그림들이 눈짓과 몸짓으로 장난치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꼬마돼지 베이브>를 통해 동물들의 고단하지만 희망찬 삶을 사랑스럽게 묘사했던 크리스 누넌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다소 고리타분하게 보일 수 있는 전기 영화라는 틀 위에 이런 식으로 깜찍한 상상력을 덧붙여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이 워낙에 평탄해서 이걸 영화로 옮기는 것도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중간에 큰 이야기 전개의 전환이 오기도 하지만, 이전에 우리가 흔히 보아 온 예술가들의 삶에 비하면 베아트릭스의 삶이 평범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가난때문에 힘들어 하지도 않았고, 출판 과정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것도 아니다. 적어도 일에 관해서는, 영화에서 봤을 때 책 만드는 일을 접어야 할 지경까지 이를 만큼의 큰 좌절과 시련은 없었다.

대신에 영화는 베아트릭스 포터의 아기자기한 상상력과 거기서 힘을 얻는 베아트릭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영화에서 베아트릭스의 상상력은 그녀를 지나치게 공상의 세계에만 빠지게 해서 현실 생활에선 적응을 못하게 한다거나 하는 부정적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베아트릭스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일과 사랑을 향해 보다 성공적인 길을 걷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그 속에서 오리들이 재롱부리고, 토끼들이 장난치며 펼쳐지는 베아트릭스의 상상력은 그런 긍정적인 역할 덕분에 더욱 보는 이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이런 베아트릭스의 상상력은 어린 시절 자연과 가까이 지내면서 생겨난, 즉 자연으로부터 온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 토끼를 친구 삼아 그림도 그리고 함께 놀면서 사람같은 친구로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런 상상력은 베아트릭스로 하여금 혼자만의 세계에만 갖혀 있게 하지 않고 외부로 더 크고 넓게 확장되어 나간다. 베아트릭스의 가슴 속에서 예쁘고 사랑스럽게 다듬어진 자연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과 애정은 곧 현실에서 접하고 있는 자연, 나아가 세상에 대한 애정을 더욱 키워주면서 베아트릭스로 하여금 세상을 향해 보다 적극적인 걸음을 내딛게 도와주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으로부터 와서, 마음 속에서 보기 좋게 다듬어진 뒤에 다시 더 많은 곳으로 퍼져 나가는 베아트릭스의 상상력은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고 흐뭇한 기분을 안겨준다.

이렇게 때묻지 않은 베아트릭스의 상상력은 그녀의 사랑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던 베아트릭스의 재능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며 믿어준 노먼 워른은 베아트릭스 못지 않게 때묻지 않은 사람이다. 집안의 막내로서 늘 어머니를 보살피다 막 출판업에 뛰어든 그는, 그래서 형들만큼 수완은 없을지 몰라도 사람을 보는 눈은 순수하다. 그래서 베아트릭스에 대한 믿음도 굳게 가진 채 출판 작업에 착수하고, 순수한 마음씨가 착 잘 들어맞는 두 사람은 이내 애틋한 연인의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베아트릭스의 천진한 상상력 속에서 수놓아지는 두 사람의 사랑은 똑같이 순수하고 천진한 성격 덕분인지 보는 내내 귀엽고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베아트릭스의 상상력은 시대의 배경에 맞서 그녀만의 독창적인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앞서 얘기했듯, 여자는 좋은 집안에 시집 가는 것만이 능사인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에 베아트릭스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자신만의 생각으로 누구에게 기대지 않은 독립적인 삶을 추진해 나간다. "고작 애들 이야기일 뿐이다", "동물이 옷입고 말하는 게 먹히진 않을 것이다"라는 주변의 섣부른 판단 속에서도 베아트릭스는 자신의 의지와 자신이 만들어낸 생각의 산물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더욱 삶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역시나 독립적인 사고관을 가진 노먼의 동생 밀리(에밀리 왓슨)와 남성의 힘에 의존하지 않은 여성들 간의 굳건한 유대 관계를 쌓기도 한다.

이렇게 누구도 쉽게 만들어내지 못한 베아트릭스만의 생각의 힘은 세상을 향한 애정, 이성을 향한 애틋한 사랑, 여성들간의 강인한 유대 관계를 만들어내면서 긍정적인 원동력이 된다. 이를 통해 영화는 현실이 동화만큼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순수한 상상력과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는 그런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을 더욱 크고 강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동화같은 상상력이라고 해서 현실과 괴리된 채 부작용을 낳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에 긍정적인 힘을 전한다는 면에서 영화는 동화적이면서도 밝고 희망적인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있다. 동화적인 상상력이 지닌 이런 화사한 활력 덕분에, 베아트릭스의 삶이 자라는 모습도, 사랑과 우정이 익어가는 모습도 한층 흐뭇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영화 <미스 포터>는 창조적인 생각을 거름삼아 한뼘씩 자라나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상상력이 때론 현실에 이만큼 순수한 생명력을 얹어 줄 수 있다는 희망을 드러내는 영화다.


(총 0명 참여)
yjmnbvc
잘 보고 갑니다^^   
2007-01-2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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