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는 촌스러운 음악이다. 사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노래방가서 지금까지 트로트라는 장르안에 속한 노래를 불러본 적도 없으며 제대로 아는 트로트 노래도 하나 없다. 그 장르에 그토록 무지한 것은 관심을 지녀본 적이 없어서이다. 만약 필자가 트로트를 무시했다고 질타를 받는다면 관심이 안가고 취향이 없는 것을 손가락질 당할 이유는 없지 않다는 이유로 그 장르에 무지함을 단한번도 부끄럽다고 생각해본 적 없음을 커밍아웃하는 바이다.
사실 이는 필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주장하고 싶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 10대에서 20대라는 범주안에 속한 이들에게 트로트라는 음악은 꽤나 생소할 것이다. 사실 트로트라는 장르의 기원은 확실치가 않은데 속설에 의하면 엔까(演歌)의 창시자인 고가 마사오(古賀政男)가 트로트(trot)라는 장르적 명칭을 먼저 썼기 떄문이기도 하고 사실 트로트의 기원이 미국 경제공황 이전의 미국이라는 속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근거가 불분명한 기원에 무관하게 트로트라는 음악은 마치 국내에서 본래의 속성과는 다른 모양새로 변통되어 확산된 기독교처럼 국내의 정서에 뿌리를 내리며 한국형 가요로 완전 터를 잡았다. 물론 요즘에 이르러 세대차이로 외면당하고는 있지만 기성세대에게 뽕필은 가장 익숙한 가락일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사이토 히로시의 '엔카의 꽃길'을 원작으로 하면서도 엔카와 뽕짝 사이의 간극이 지닌 차이점 자체를 감지할 수 없는 관객에게는 그조차도 그리 중요한 사실이 되진 않을 것 같다.
사실 이 영화는 이상한 세계다. 그곳은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는 트로트 가수가 존재하고 -물론 현실에서도 인기많은 트로트 가수가 존재하지만 그들이 10대의 열광을 그토록 뜨겁게 받던가?- 트로트 가수를 열망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마치 영화속에서 트로트는 하나의 성공 척도로 여겨지는 것만 같다. 이는 이 영화가 구축한 하나의 세계관이다. 트로트는 그 세계의 절대적 진리이자 눈속임같은 매력포인트인 셈이다. 결국 트로트 가수가 열광적인 환호성을 들으며 등장하는 그 무대는 시대가 불분명한 대한민국인 셈이다.
그 세계에서 락커의 삶을 꿈꾸는 달호(차태현 역)는 밤무대의 트로트 가수 반주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에게 특별한 뽕필을 발견한 트로트 가수 기획자 장준(임채무 역)은 그를 자신이 찾던 적임자라고 확신하고 그를 자신의 프로젝트로 끌어들인다.
일단 이영화가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무기는 웃음이다. 달호가 치렁치렁한 락커의 머리를 버리고 2:8가르마로 머리를 가를때, 레이어드 룩 대신 빤짝이 의상을 입을때, 그리고 이름마저 봉필로 바뀌게 되었을때 그 얼굴이 죽상이 되는 순간 관객은 홍조를 띄게 된다. 하지만 영화속의 웃음이 그리 큰 수위로 치닫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중심은 의외로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캐릭터가 보여주는 성장이다.
락커를 꿈꾸며 상경한 달호가 장준의 술책에 넘어가 트로트의 후예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을 전가받을 때 영화는 마치 무책임한 전가론을 펼치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얻게 된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영화는 캐릭터의 변화에 근거를 실어준다. 락에서 트로트로 전향하게 되는 달호의 계기는 지극히 타의지만 영화는 이야기를 통해 그의 본의를 끌어낸다. 세상의 모든 감정이 멜로디가 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는데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트로트라 그것을 한다는 기획사 선배의 대사는 그를 감화시키고 자신도 모르게 그 세계로 편입되기 시작한다. 마치 이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농구를 시작한 계기처럼 엉뚱하지만 그 과정은 꽤나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그 계기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은 로맨스이다. 그것 역시 강백호처럼 닮아있다. 그 방면에 문외한인 타자가 우연한 계기로 생각지도 않았던 세계에 이끌려가고 그 안에서 자각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꽤나 익숙한 이야기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재미난 일이다. 마치 풋내기 강백호가 도내 최고의 리바운더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큼.
사실 이 영화는 그리 뛰어난 이야기 구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영화는 사건을 에누리없이 간단하게 진행시키고 너무나도 쉽게 상황들은 이루어진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은 캐릭터의 나열 후 그것을 간과해버린다는 것이다. 봉필과 대립되는 상대인 나태송(이병준 역)과 짝퉁가수 태준아(선우 역)가 어떤 심리적인 긴장감이나 극적인 굴곡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몇번의 웃음거리만을 보여주는 것이나 봉필의 트로트 입문에 계기가 되고 영화의 감정선을 깊게 드리울 법했던 차서연(이소연 역)이 계기만 만들고 진도를 내보내지 못한 것은 분명 이야기의 전개가 투박하고 미세하지 못한 무성의함 덕분이다. 사연이 있을법한 장준이 그 사연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기이하다. 영화는 때로 너무 간단하게 결과를 만들어내고 위기를 고조시키지 못하며 깊은 감흥 대신 현상에 대한 관찰 행위만을 부른다.
하지만 플롯의 단점은 왜인지 모르게 동정을 부르는 기묘한 맛에 상쇄된다. 분명 맛있는 영화가 아닌데 이 영화는 기이하게 맛있게 먹었다는 착각을 부른다. 그것은 아마도 봉필을 만들어내는 차태현의 역할 수행 덕분일텐데 그가 연기하는 달호 -혹은 봉필-는 락커를 꿈꾸지만 트롯 가수가 되는 비련을 겪지만 그로부터 우연찮게 굴러들어온(?) 성공을 각성이라는 비범한 자세보다는 행운이라는 미쳔한 기회로 인식하는 평범한 인물이다. 그는 극에서 자신이 뒤집어 쓴 복면이 가져다 준 절호의 기회를 거머쥐고 복면의 의미는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기획적 의도로 포장된다. 여기서부터 인물의 심리적 괴리가 발생하는데 이것은 어쩌면 '미녀는 괴로워'의 한나와 맞닿아있고 추후에 봉필이 무대에서 자신의 복면이 지닌 사연을 털어놓을 때 한나의 커밍아웃과도 같은 동정심이 일어난다. 간지나는 락커들이 모양새와 무관하게 무대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박해를 받는 것과 무대위에서는 화려하지만 그것이 트로트이기에 무시받을 수밖에 없는 장르적 오해 혹은 뿌리깊은 편견은 미인을 추종하면서도 성형미인을 손가락질하는 '미녀는 괴로워'의 풍토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대중이라는 시선이 지닌 이중모션의 심리인데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을 좇으며 내면에 잠식된 본질을 외면하게 된 대중의 요구안에서 노래를 하기 위해 성형을 하거나 복면을 뒤집어써야하는 -물론 복면은 봉필의 쪽팔림을 모면하기 위한 자기방어의 수단이지만 그것이 대중에게 먹힌 이후 그는 복면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세태에 대한 한탄이 발견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 영화가 원래 의도한 바인지 혹은 봉필이 뒤집어 쓴 복면이 되려 대박을 터뜨린 것처럼 우연찮게 발생한 부가가치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달호의 심리적 갈등과 자의식의 성장은 이영화의 불성실한 플롯과는 다른 측면의 호감이 된다.
또한 영화는 역시 의도했을지 모르는 사회적 비판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트로트 일변도의 이상한 가요판은 마치 하나의 장르가 힘을 얻으면 그 장르에 대한 양산이 확산되는 가요계를 우회적으로 묘사한 것만 같다. 어쩌면 현실의 댄스가요는 어쩌면 영화속에 트로트로 치환된 것만 같다.
어쩄든 무엇보다도 영화속 봉필이 부르는 '이차선 다리'하나만큼은 꽤나 맛있다. 여전히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도 트로트가 맛있는 음악인지는 모르겠지만 봉필의 이차선 다리만큼은 꽤나 맛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이 영화가 맛있다는 착미(錯味)현상에 기여할 수 있는 공산이 될지도 모른다. 분명 영화는 엉성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생각보다 맛있다. 그것은 아무래도 촌스럽고 폼나지 않는 트로트의 선율이 떄론 맛깔스럽다는 것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빈틈이 보이지만 그것을 눈감고 싶게 해주는 것은 소박한 꿈을 지닌 사람들의 뚜렷한 열정이다. 적어도 극속의 큰소리 기획은 예술을 팔아 한 몫 벌겠다는 도둑놈 심보는 아니지 않은가. 트로트라는 한 우물을 판 열정이 빛을 보는 것도 오늘날 찾아볼 수 없는 영화만의 훈훈한 미담이 될법하고. 더 큰소리 기획으로 바뀐 그들의 상호가 삐까번쩍해진 사무실보다도 먼저 눈에 띄고 웃음을 자아내는 이유는 바로 그것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트로트 가수들의 빤짝이 의상이 촌스러워도 밉지 않은 정감이 느껴지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 반짝이 의상의 정서는 이 영화가 자신도 모르게 거머쥐는 비의도적 장점인 셈이다. 마치 봉필의 복면처럼.
-written by kharisman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