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아마 젊은 시절 겪는 사랑의 아픔만큼 평생이 가는 게 있 을까요? 긴 세월이 지나고나면 그 조차도 희미해진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지금 이렇게 아픈 마음은 결코 치유되지 못할 거 같습니 다. 그가 나에게 주었던 쪽지, 같이 여행 갔던 기차 티켓... 그 모 든 것을 담아 미처 버리지 못하고 구석에 치워놨던 상자를 열어보 는 느낌을 주는 영화가 [와니와 준하]입니다.
준하는 와니에게서 종종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낍니다. 같이 산지 꽤 됐지만 그 벽은 여전하죠. 처음에야 와니가 소극적이고 말이 없는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 들어 꼭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중입니다. 답답하지만 그 벽을 건드릴 용기는 없습니다. 왠지 잘못 건드리면 무너져 내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이런 생각을 괜한 생각이라고 자신을 다독거릴 즈음 집에 손님이 왔습니다. 귀여운 인상의 소양이는 유학 중이라는 와니의 동생인 영민과 친하다는군요. 어느 날... 항상 잠겨있던 영민의 방문이 열 려있고, 창틀에 않아 LP판을 들으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소양 과 처음 보는 환한 미소를 담은 와니의 사진을 보고 그 벽의 정체 를 알 것 같습니다. 이런 걸 남자들의 직감이라고 하는 걸까요?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이런 상처를 발견한 다면 과연 그 상처를 보듬어 안아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전 아마 그러지 못할 거 같습니다. 생판 남이라면 차라리 낫겠지만 이복형제라도 가족은 가족이니까요. 앞으로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 을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마저 상처입기 전에는 그 끈이 끊어지진 않을 거니까요. 정리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흔들리는 눈빛을 지켜보며 감당할 능력은 안 될 거 같네요. 그런 면에서 준하나 소양이나 참 대단하 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 을 할 수 있는 그들의 용기가 존경스럽더군요. 특히나, 상처받더라 도 이겨낼 수 있다는 소양의 의지를 보여주는 기차역 사진 컷이 인 상적이었습니다.
[와니와 준하]는 파스텔 톤의 한지에 예쁘게 포장되어있는 선물 같 습니다. 정말 예쁘지만... 그 포장지를 뜯어보면 근래에 나온 어떤 영화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도발적인 구석이 많은 영화입니다. 동거, 이복형제간의 사랑, 동성애.... 사회적 이슈가 될만한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거든요. 그러나... 진지하다기 보다 와니와 준하의 사랑을 장식하는 이미테이션으로 끝나버립니다. 제가 봤을 때 와니 의 선배 얘기만 시작되면 다들 키득키득 웃어버리더군요. --;;; 무 조건 관객의 편견 탓이라고 몰아붙이기엔 잘못된 부분이 틀림없이 있었습니다. 왜 그런 반응이었는지는 관객과 감독이 다같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가끔씩 와니가 아닌 본인으로 돌아가버리긴 했지만 김희선의 연기도 전보다는 괜찮은 편이었구요. 주진모도 어 깨에 힘을 준 장군보다는 준하가 훨씬 편한 모습이었습니다.
전 소양이가 너무 좋았습니다. 준하야 직접 보지 못했지만 둘만의 추억보다 셋이 같이한 시간의 기억이 많다고 얘기할 정도인 소양입 니다. 같이 한 시간만큼 상처도 그만큼 많을 텐데... 어쩌면 와니와 영민보다 더 상처를 받았을 것임에도 그 상처를 감수하고 앞으로 나가는 모습이 너무 예뻤거든요.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하긴 했지만요. --;;; 사랑한다면 이제 정말 모두모두 행복 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섬세하고 예쁘던 애니메이션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