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007을 상상이나 해봤는가. 하지만 적어도 '007 카지노 로얄'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는 그렇다.
숀 코넬리, 조지 레젠비, 로저 무어, 티모시 달튼, 피어스 브로스넌 등에 이어 여섯번째 제임스 본드가 된 다니엘 크레이그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일단 외모가 다르다. 크레이그는 최초의 금발 본드요, 최고의 근육질 몸매를 자랑한다.
또 최신식 무기가 아닌 맨몸뚱이로 난관을 돌파하고, 공작 장소에서 만난 여성들과의 로맨스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일이 우선이다. 하지만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우직한 새 제임스 본드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게 참 무섭다. '그 놈의 사랑 때문에' 다니엘 크레이그는 007 역사상 가장 많이 얻어터지고, 가장 많이 눈물을 보인 제임스 본드로 기록되게 생겼다.
한데 이같은 캐릭터의 변화가 스물한번째 007 시리즈인 '007 카지노 로얄'의 매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007 카지노 로얄'은 제임스 본드가 '살인면허'를 받기 전의 활약부터 소개한다. 임무 수행 성공으로 '살인면허'를 딴 제임스 본드는 007이란 암호명을 받고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테러리스트 몰라카의 감시 임무를 맡는다. 임무 수행 중 상황이 급변,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독자적인 작전에 돌입한 007은 신비한 인물 드미트리오스가 국제 테러조직의 자금줄인 르 쉬프와 관계돼 있음을 알게 된다. 몬테네그로의 카지노 로얄에서 큰 포커판을 벌일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007은 상관 M(주디 덴치)이 급파한 여성요원 베스퍼 린드(에바 그린)와 접선한다.
결국 베스퍼와 연인 관계로 발전한 007. 하지만 그녀로 인해 작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더 이상의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생략한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크레이그가 연기하는 007은 기존의 모습과 많이 다르고, 007 시리즈의 묘미라고 할 수 있는 신무기의 등장, 늘씬한 '본드걸'과의 원나잇 스탠드도 없다.
하지만 '인간적'인 제임스 본드의 모습을 보는 재미와 원초적인 리얼액션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여기에 포커 신은 가을 극장가를 휩쓸었던 '타짜'의 고스톱 신과는 또다른 맛을 선사해 준다.
기존의 007 시리즈에 식상한 팬들, 007 시리즈의 여성 상품화에 반감을 가졌던 여성 팬들도 부담 없이 볼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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