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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는게 다야. 그래서? [cropper] 300
cropper 2007-03-15 오전 10:34:30 1759   [5]
영화 제목중에 이렇게 간단하고 무모한 영화 제목이 있을까?
그 흔한 형용사나 부사 없이 그냥 "300".   영어로 "Three Hundred" 라고 말하면 폼이 좀 더 날 것 같은데도
예고편은 고의로 그 단순하고 무작스러운 느낌을 실어서 이렇게 외친다.  "삼백". 

이제는 "작품"세계 라는 낯간지러운 단어 때문에 낯을 긁어대지 않아도 될 만큼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린
미국 만화계(코믹스)의 대부 '프랭크 밀러"는  전작 "씬시티(Sin city)" 에 이어 그의 대표작 "300"을 영화화
하면서  이례적으로 '제작 총지휘'에 나섰다. 
덕분에 원작만화의 비현실적인, 아니 지나치리 만큼 현실적인 전투씬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포효하는 바다, 산더미같은 시체, 거대한 협곡, 흙탕물 처럼 퍼지는 핏자국, 어지럽기 까지한
천길 낭떠러지 들을 순전히 그래픽으로 만들어 내었다.

예고편 만으로도 남성의 딸랑이에서 주로 생산되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이 분비될것 같은
이 영화의 시사회 장에는 유난히 남성 관객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들어선다.
꽉다문 입술은 전사의 알통처럼 도톰하고, 손에 든 핸드폰이 창 처럼 보이고, 바람 불 리 없는 극장 안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재킷 끝이 망토 처럼 펄럭이는것 만 같은 분위기다.
 

영화 [300]은 그런 영화다.   인간이 만화라는 매체에 생명을 주면서 그것의 손에 쥐어 준것은
'말' 보다 한발 앞서는 진한 '비주얼'과,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무한한 '이미지' 이다.
[300] 이 갖는 최고의 장점은 줄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에 줄거리가 없다는 치명적인 상처조차
마치 전장에서 얻어온 훈장 마냥 명예롭게 끌어가는 이 영화는 "보이는 것이 전부" 라는 역발상적인
무모함을 무기로 관객들의 말문을 굳게 걸어 잠근다. 

그래도 좋다.  사근사근한 말 한마디, 부드러운 감정선 하나 그어주지 않아도, 남성들로 하여금 먹이감을
사냥하게 하고 침입자들을 죽이게 만드는 원초적인 생존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남성호르몬이 스크린을
뒤덮다 못해 심장을 두드린다.   사지가 찢겨나가고 목이 잘려나가고, 목줄기에 두둑!하며 깊숙히 박히는
칼날에 경기를 일으키는 병사의 고통이 내 목 핏대에 전달되고, 레오니다스 왕의 천둥같은 목소리가
나의 고환에게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명할 무렵이면  이 영화의 숨쉬는 비주얼은 단지 볼거리에 머물지
않고 물렁한 내 팔뚝에도, 좁아터진 어깨에도, 나온 똥배에도 "힘"으로 변형되어 전달된다. 

영화 '300'은 역사상 그 치열함이 이를데 없는 살육의 전투 중, 최고 중의 최고로 꼽히는 테르모필라이
협곡 전투씬을 피와 살로 무차별 토해낸다. 
무적의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크세스가 이끄는 백만의 군대를 맞아 고작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이
나흘이나 버텼다는 거짓말 같은 이 역사적 전투는 그냥 사건으로만 남은 것이 아니라 현재의 서구와 동양의
지도를 형성하는데 분수령이 되었다는 역사적인 의미로 남았다. 

이 전투가 없었다면 아마 헬레니즘 시대나 로마의 유려한 문화나 아테네의 민주주의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서양학자들의 호들갑이 그저 과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쩌면 심각한 서구 우월주의의 시선 위에서 만들어졌을 지도 모른다.
페르시아의 제왕은 정복 과정에서 정복국의 고유한 문화와 정치형태를 고스란히 인정하고 존중했던
관대함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사실을 비춰볼 때 영화속에서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의
복종요구에 무조건적인 저항과 자유를 부르짖으면서 마치 동양에서 온 괴물집단으로 페르시아를 묘사한것은
동양인의 한명인 필자로서 슬쩍 불쾌한 심기를 느끼게 한다.



어찌되었건 레오니다스 왕이 그의 용맹스러운 300명의 전사들과 함께 자신의 명예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는 대의명분만 놓고 보면 유사 이래 그런 일이 어디 이 전투 뿐이겠는가?
"300"은 닳고 닳은 현대인들에게 고리타분한 '희생정신과 자유의지'라는 틀에 박힌 교과서를 들이대는
어리석음을 범하진 않는다.   테르모필라이 전투가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것은 세계 어느 역사에도
찾아 보기 힘든 독보적으로 무모한 전투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무슨 놈의 용맹함이 저리도 무모할 수 있단 말인가.   튼튼하지 못할 기미가 보이는 남자 아이들은
출생과 동시에 무덤에 버려지고, 코흘리개 때부터 생과 사를 넘나드는 군사훈련을 시키고, 임신이 어려울 것
같은 징조를 보이는 여성이면 가차없이 처형했던 스파르타인들의 무지막지한 '스파르타식 교육' 과
우성보존의 법칙은 스파르타 전사들로 하여금 신의 경지에 이른 전투력과 평정심을 지니게 만들었다. 

하지만  피눈물 조차 없을 것 같은 스파르타 전사들에게 레오니다스 왕은 이렇게 말한다.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옆에 있는 전우들이다.  그들을 완전히 신뢰하고 존경하는 것이 전쟁에서 승리
하는 길이다".    싸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스피드도 체력도 믿음도 아니요 바로 동료를 믿고 존경하는
거라니. 오.. 이 얼마나 간단 명료하면서 황홀한 발언인가. 

스파르타 전사 300명은 눈 앞에 죽음처럼 다가오는 백만의 페르시아 군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전쟁에서 죽는 것이 진정한 명예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내게 그런 명예를 주지 못했다. 
저 백만의 적들 속에는 나에게 진정한 명예를 선사할 사람이 있을테니 행복하지 않은가"

죽기를 각오한 것이 아니라 죽고 싶어서 환장한 자들에게 그 어떤 공포가 공포다울 수 있겠는가.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황제는 스파르타의 용맹함에 도저히 손을 쓸 수 없게 되자 결국 전면전을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지는 바, 용맹과 무모함도 저 정도면 가히 '아트' 다.



역사는 스파르타를 너무나 무지막지하고 민주적이지 못한 군주제를 가진 나라 라고 평가하면서도
레오니다스 왕의 테르모필라이 전투야말로 "서구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일으킨 전투"
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의 신 조차 무모하다고 예언한 전투에서, 하찮은 인간인 그가 몸뚱아리로
싸우고 부딪혀서 그리스의 결속을 얻어내고, 그로 인해 서구 문명을 지켜낸 것을 상기해 보면
"중요하고 적절한 타이밍" 이라는 단어가 갖는 텍스트의 무게는 몇 천년의 세월도 덜어 내지 못한다.  

우리가 속한 대한민국, 내가 속한 이 회사, 자식이 속한 학교 속에도 반드시 리더가 존재하고 있다.
리더는 때때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해서라면 "하면 좋은 일" 보다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
을 위해서 신의 말 - 외부의 압력 - 조차 듣지 않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우리는 "국민을, 조직원을, 학생들을 생각해서" 라는 말로 지긋지긋한 그 우유부단함을 감추려는 리더들을
얼마나 더 두고 봐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레오니다스 왕이 필요한 타이밍 이다.

Filmania  cropper

(총 0명 참여)
joynwe
평이 엇갈리는 영화...
서양중심적 사고가 지배하는 영화...
그런데 화면이 통쾌한 영화...   
2007-03-1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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