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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서워지는 순간 뷰티풀 선데이
jimmani 2007-03-29 오후 2:38:25 1724   [9]

사랑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고귀한 가치라고는 하지만, 때론 그 절대성이 사람에게 무시무시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한번 빠지게 되면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게 사랑이 지닌 대단한 위력인지라, 이 위력에 사람은 때론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마냥 휩쓸리게 된다. 자신이 사랑을 품에 안고 보듬어주는 것에서 벗어나 사랑의 소용돌이 안에 자신이 빠져들어 미친듯이 휩쓸리는 순간, 낭만은 순식간에 공포가 되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사람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 가장 높은 차원의 가치라 해도, 사람은 때론 그 사랑의 거대한 힘에 무기력하게 휩쓸려 아무리 사랑이라는 명목을 갖다붙여도 쉽게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감정의 동물로서 사람은 사랑이란 감정으로 인해 천국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때론 끔찍한 지옥을 경험하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 <뷰티풀 선데이>는 이렇게 사랑이 무서워지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대규모 마약거래조직을 검거하며 나름 승승장구하고 있는 강형사(박용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정신을 놓고 다니는 듯한 모습이다. 그에겐 사고로 아직까지 식물인간인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이젠 포기하라고 해도 끝까지 희망을 놓고 싶지 않지만, 날이 갈수록 그를 압박해오는 병원비는 그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다. 입원비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조직과 결탁하여 끄나풀 생활을 해오지만, 그가 검거한 조직에서 그 사실을 알고 그를 위협하기 시작하고, 경찰 내부에서까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오면서 그의 위치는 점점 위태로워진다. 한편, 고시생 민우(남궁민)는 단조로운 일상 가운데 자신이 원하던 이상형을 만나게 되니 바로 수연(민지혜)이라는 여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에 이내 좌절하고 만다. 약간의 세월이 지난 후, 민우와 수연은 다시금 만나게 되고 애틋한 사랑을 키워가며 결혼에까지 골인하지만, 민우의 숨겨진 과거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드러나고 수연은 그 과거에 질겁하여 파경을 선언한다. 여전히 수연을 사랑하는 민우는 필사적으로 수연을 붙잡으려 수연과 실랑이를 벌이고, 그러다가 우발적으로 수연을 살해하고 만다. 사랑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길로 치닫는 두 사람의 삶. 그 끝은 과연 어디일까.

강형사와 민우가 이야기를 정확히 2등분하여 교차시키며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가운데, 두 역할을 맡은 박용우와 남궁민의 연기 또한 그에 걸맞는 존재감을 풍긴다. 직업상 에너제틱한 면과 동시에 한없이 무기력한 면모까지 보여주는 성격을 지닌 강형사를 연기하는 박용우는 그에 걸맞게 겉모습부터 표정 연기, 목소리까지 고된 현실에 피로감을 있는대로 느끼는 남자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다. 역할의 특성상 확실히 뇌리에 박힐 만큼 기가 센 연기를 보여주진 않지만, 시종일관 넋이 나간 듯 눈이 풀려 있고 목소리엔 기운이 죄다 빠진 채 비극적인 순간까지도 허탈한 웃음만 내뱉는 모습에서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묵직한 카리스마가 절로 느껴졌다.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연기력이 단련되어 가는 모습이 보여 기분이 좋았다.

민우 역의 남궁민의 연기 역시 좋았다. 브라운관에서 주로 모범적이고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여주던 남궁민은 스크린 데뷔작인 <비열한 거리>에서부터 이번 <뷰티풀 선데이>까지 선과 악을 함께 품고 있는 양면적이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모습이 꽤나 잘 어울린다. 착하게 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욕망 앞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행을 저질러버리고, 그로 인해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번민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남자의 모습을 무난하게 소화해냈다. 선량한 미소와 비열한 썩소를 넘나드는 모습이, 앞으로 보다 입체적인 연기를 통해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더불어 여주인공 수연 역을 맡은 신예 민지혜도 첫 주연작으로서 남자의 욕망의 희생양이 되어 힘들어하는 쉽지 않은 캐릭터를 무난히 소화하며, 두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 뚜렷한 이미지를 남겼다.

요즘 한국영화로서 보기 드물게 이 영화에는 웃긴 장면이 거의 없다.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일말의 유머감각도 갖고 있지 않다. 거기다 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에, 나른한 봄에 즐기기에 다소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영화는 그런 묵직한 스토리라인에 관객들을 꽤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아픈 아내와 조직의 압박 등 곳곳에서 애로사항을 겪는 강형사의 삶과 사랑의 감정 앞에 어쩔 줄 몰라하는 민우의 삶이 교차되며 보여지는데, 이들이 결말에 이르기까지 어디 한 군데에서도 만나지 않고 그들이 겪는 일들 또한 연관된 모습을 찾기 힘들다. 이때문에 관객들은 오히려 "관련이 없으면 왜 한 이야기 안에 엮었을까, 관련이 있으니까 엮었겠지"하는 기대감이 꾸준히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이렇게 영화는 자칫 마냥 무겁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를 전혀 상관없는 듯 교차 편집하다 나중에 이들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면서 긴장감을 적당히 수축하고 이완시키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스토리라인에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게 하면서, 부담없이 가다가 끝에 가서 갑작스럽게 사실은 이런 메시지가 있었다면서 당혹스럽게 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접근하며 일관된 탐구 정신을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도덕한 일들을 저지르고, 그로 인해 끊임없이 죄의식에 시달리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서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행동들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낭만적이지만 압도적이기도 한 사랑의 힘 앞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한다. 괜히 한눈을 팔다가 마지막에 가서 메시지를 꺼내들어 관객들을 생뚱맞게 하는 게 아니라, 교차 편집을 통해 관객들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이면서 이를 기반으로 다소 무겁지만 일관되게 주제의식을 밀고 나가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 할 만하다.

이 영화는 외양만 봤을 때 스릴러의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영화 속 사건의 발단이 "사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스릴러라도 마냥 싸늘한 분위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병석에 누워 있는 아내에 대한 강형사의 안타까운 사랑, 수현에 대한 민우의 빗나갔지만 절실한 애정이 비중있게 그려지면서 스릴러의 긴장감 속에서도 사랑이야기에서 오는 애틋한 분위기 또한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이렇게 영화가 사랑이야기와 스릴러를 함께 끌고 가다보니, 때론 이 두 부분이 이질적인 분위기를 형성해 관객들을 당황스럽게 할 우려도 있다. 스릴러 부분에서는 현란한 카메라워크와 음악을 통해 잔뜩 긴장감과 속도감을 조성하다가, 사랑이야기 부분으로 넘어가면 멜로영화로 급변하여 잔잔하게 흘러가는 등 두 방면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 부분도 없지 않다.

스릴러답게 이 영화도 반전을 갖고 있는데, 그 반전이란 것도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다. (물론 보고 나서 얘기지, 보기 전에는 그 생각을 미처 못했기 때문에 굳이 꼬집을 이유는 없다.) 그래도 결말을 접한 뒤에 앞부분을 곱씹어 보면 장면들 곳곳에서 나름의 복선을 심어놓아, 관객들이 반전에 맞춰 이야기를 다시 끼워맞춰 보기 쉽게 해준다. 다만, 후반 30분 가까이 반전이 담긴 결말이 보여지는데, 어느 기점에 오면 관객들도 "이제 알겠다" 싶으면서도 오래 분위기를 유지하며 밀고 나가는 모습이 좀 느슨하고 김이 빠지게 느껴지는 것은 단점이다. 살짝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반전은 길어도 10분 안에 한꺼번에 몰아쳐주고 빠지는 것이 관객들이 받는 충격 면에서는 더 강도가 컸을 텐데, 반전을 너무 오래 이어나가서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하게 된 점도 없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단점들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못만들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 것이다. 스릴러와 로맨스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혼합시키려 한 시도도 돋보이고, 괜한 양념 요소 넣지 않고 낭만과 공포를 오가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양면성과 그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의 죄의식이라는 목표 주제를 끊임없이 파고 들어간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관계로 한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능숙한 연출은 아니었지만, 긴장감과 슬픔을 묘하게 섞어내며 냉철함 대신 뜨거운 감정적 열기를 표현해낸 것은, 한국형 스릴러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여준 결과가 아닐까 싶다.

한 마디 더 :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겠지만, 함께 본 친구가 이르기를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적의 화장법>과 스토리가 비슷하다고 하더라.


(총 0명 참여)
kyikyiyi
지루한 영화지만 반전은 괜찮음   
2007-04-1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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