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밝혀둘 점은 이성애자라는 것과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후자는 좀 서글프지만 넓은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때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지독한 7, 80년대의 오마쥬야. 밤씬까지 일부러 어둡게 찍었더라니까. 대단하더라. ((시사회장에서 감독님 말씀이 디지털 영화라 컨버젼하는데 극장 기기에 따라 밝기가 다르다고 하시네요.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깜깜하게 찍으신 것은 아님을 밝힙니다. 사운드는 일반상영까지 다 손질하시겠다는 다짐도...))
이 전화 이후로 난 기다림이 생겨났다. 밋밋한 그래서 더 외로운 세상속에서 기다림은 생명이란 날 것을 새삼 상기시키며 노동속에서도 입가에 엷은 웃음을 매달았다.
조업을 마치고 찾은 영화 시사회장에서 김조광수 제작자님과 이송희일 감독님께 싸인을 받았다. 싸인을 청하자 초면인 감독님께서는 당연히 사양하셨지만 이차저차 부연 설명 끝에 싸인을 해주셨다. 두 분 너무 친절하게 꼭꼭 눌러써주셔서 나름 감동이었다.
각설하고 나말고도 보도자료에 기인한 글을 쓰신, 쓰실 분은 널렸으므로 애써 스포일러를 만들 생각은 없다.
영화는 사랑이야기이다. 유승완 감독이 7, 80년대 영화를 바탕으로 액션 활극을 찍듯 이송희일 감독은 멜로를 찍었다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하다. 물론 마지막엔 영자의 전성시대를 살짝 배신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남자대 남자란 사실을 배제하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진부하게 만들지 않는 것은 적어도 내가 볼 때는 가람이란 인물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이긴 하겠지만 가람은 재민과 수민의 사랑이란 단편적인 구도에 자연스레 뛰어들고 자연스레 퇴장하면서 극을 보다 풍요롭게 만든다.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바닷가 장면이다. 재민과 수민의 바닷가 장면에서 등장하는 바다와 말의 이미지는 첫장면과 오버랩되면서 브로크백 마운틴을 생각나게 만든다. ((물론 상처입은 재민이 홀로 찾은 바다 역시 브로크백 마운틴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연기는 모두 좋았다. 쉽지 않은 연기인데 다들 정말 열심히 하셨고, 특히 수민 역은 이영훈은 올해의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이한은 올해 주목받은 두편의 저예산 영화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물론 술집식구들도 정말 열심히 하셨다는 것 보면 알 것이다.
내가 본 느낌을 정리하자면 탱고보다는 블루스, 왕가위보다는 관금붕을 닮은 시선을 느꼈다. 즉 전체적으로 카메라가 격정적이기보다는 담담히 두주인공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고, 살짝 춘광사설을 떠올리게 되는 헨드 헬드와 필터링된 거친 입자의 화면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디테일이 마치 관금붕의 영화처럼 진솔하고 세세하였다.
저예산 디지털 영화이기에 화면의 아쉬움이 좀 있었지만 이를 과감히 상쇄시키는 음악의 힘이 상당했으며, 간혹 마음을 두드리는 대사발도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뻔한 이야기를 식상하지 않게 이끌어가는 연출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 영화의 힘이다. 무엇보다도 제작진, 연기자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나있었다. 특히 마지막 클라이막스는 정말 원제인 야만의 밤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만큼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후회하지 않아는 올해 최고의 영화는 될 수 없을찌라도 최고로 매력적인 영화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