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매년 4월의 연례행사 4월 이야기
redface98 2007-04-20 오후 5:44:37 1790   [9]

3일전부터 아픈 몸을 끌고 이번엔 정말 병원에 가리라 문 손잡이를 돌렸는데, 뚝 하고 부러졌다. 이곳 언니네 집의 도어시스템은 먼저 열림버튼을 누르고 꼭지를 돌리고 손잡이를 힘껏 비틀어야 열리는 구조였다. 그래서 아무생각없이 힘주어 돌렸는데 뚝, 하고 손잡이가 부러진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연신 중얼댔지만 누가봐도 내 잘못같이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또 병원에 가지 못하고 나는 집안에 꼼짝없이 갇혀 몸도 아프고 기분도 울적하여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2시간쯤 자 버렸다. 몸이 아파서 그랬는지 연신 가위에 눌리다 겨우 깨어나 물을 연거푸 2잔 들이키고 하루종일 굶고 있었던 걸 깨닫고 라면을 끓여 먹고는 비디오를 틀었다.

4월이야기

이와이 슈운지 

영화가 시작된 지 5분쯤 지나서야 아, 밖에 비가 오는구나, 알아차리고는 멍청한 얼굴로 다시 영화에 눈을 돌렸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영화 속 주인공 이제 대학교 새내기인 마츠 다카코, 니레노 우즈키의 얼굴은 멍청해 보였다. 나는 흐믓한 기분으로 그 얼굴을 보며 즐거워했다. 행동도 굼뜨고 이리저리 헤매는 것이 녀석, 귀엽구나. 남자들은 저런 여자 좋아하겠지(일단 얼굴이 예쁘잖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미열로 미지근한 몸을 이리 저리 뒹굴렸다. 소파 양끝이 베개로 이용하기 딱 좋은 높이와 쿠션을 가지고 있었다. 왠지 배 속에서 라면면발이 자꾸 꼬불거리는 느낌이 났다.

 

시간이 흐를 수록 실내가 자꾸 어두워졌다. 나는 잠시 영화를 중지시키고 가지고 있던 트뤼포의 전기(포장을 벗겨놔서 시커멓고 무지하게 두껍다)와 읽고 있던 시집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 비가 들이치던 말던(내 집이 아닌걸) 베란다문을 다 열어 젖히고 가끔씩 떨어지는 비를 쳐다보며 시를 소리내어 읽었다. 마음에 드는 시는 모서리가 세모나게 접혔다.

 

다시 들어와 영화를 돌리니 멍청한 얼굴의 우즈키가 무사시노도 서점에서 단지 좋아하는 선배의 얼굴을 보기 위해 대책없이 책을 사들이고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큰 대형서점말고 동네에 저런 단골 서점이 있으면 좋겠네, 나도 예전엔 있었는데, 그때는 주로 로맨스 소설을 샀었지, 그런데 저 선배 눈과 눈 사이가 너무 멀어...라는 생각을 하며 뜨거운 보리차를 마셨다.

 

영화는 어느새 막바지(라고 해봤자 런닝타임이 67분이다). 비가 쏟아지는 날, 우즈키는 선배가 자기를 알아본 것에 감동하고 기뻐하며 빗속으로 우산도 없이 뛰어든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선배에게 우산을 빌려가서는 비 오는 날 멋모르고 떠오른 둥근해같이 밝은 얼굴로 웃는다. 무지 행복해 보였다. 그들의 러브스토리는 이제 시작이겠지. 이루어질지 안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심술).

 

몸이 아파서 줄곧 누워서 봤더니 어디 머어먼 요양소에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것으로 소일하며 쓸쓸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감기를 털고 일어서면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어, 인스턴트 음식도 좀 줄이고, 길에서 닭꼬치같은 것 좀 그만 사 먹고, 중얼중얼대고 있으니 깊은 병은 아랑곳하지 않고 요양소를 뛰쳐 나와 유유히 방랑길에 나서는 태평스런 병자같은 기분이 되었다. 아마 그 병자는 여행길에서 체력을 길러 누구보다 오래 살 것이다.

 

1998년에 나온 영화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였으니 나는 영화주인공과 함께 입학해서 꼬박 9년이 흐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매년 4월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이 영화를 보고 있는데(나는 이 비디오테이프를 구입했다), 주인공의 얼굴도 늙어 이젠 새내기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필름도 늙었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매년 4월이면 항상 멍청한 얼굴의(미안-단지 내 개인적인 편견이야)우즈키와 함께 새내기가 된다.


(총 0명 참여)
ldk209
영화도 그렇지만.. 참 이쁜 글이네요....   
2007-04-21 10:06
lolekve
짧아서 아쉬웠어요..ㅠㅠ
정말 예쁜 영화^ㅇ^)/   
2007-04-21 00:51
justjpk
잔잔하게 흐른 영화로 기억되요. ^^   
2007-04-20 22:36
kyikyiyi
많이 기대하고 본영환데 여주인공만 이쁘고... 내용은 별로 안좋았어요   
2007-04-20 22:29
1


4월 이야기(1998, April Story)
배급사 : (주)팝 파트너스
수입사 : 조이앤컨텐츠그룹 /
공지 티켓나눔터 이용 중지 예정 안내! movist 14.06.05
공지 [중요] 모든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 관련 안내 movist 07.08.03
공지 영화예매권을 향한 무한 도전! 응모방식 및 당첨자 확인 movist 11.08.17
72999 [4월 이야기] 너무나도 잔잔하기에 더욱 빠져든 영화... (3) jillzzang 09.03.04 1219 3
61257 [4월 이야기] 4월 이야기...여운이 긴 영화... (1) ksham10 07.12.06 2137 3
현재 [4월 이야기] 매년 4월의 연례행사 (4) redface98 07.04.20 1790 9
47876 [4월 이야기] 당신은 짝사랑을 기억하고 계세요? kiki12312 07.02.03 1477 13
33545 [4월 이야기] 이와이월드.. pontain 06.02.27 1252 16
27962 [4월 이야기] 4월이야기를 보고 sims00l 05.03.18 1806 19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