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Turtles Swim Faster Than Expected)>
각박한 세상.. 기계적 패러다임과 물질만능주의에 맞물려 시계 속 작은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돌아가는 이 세상. 현재를 살아가면서 현재진행형이 되지 못하는 우리에게 현실은 너무나도 숨막히는 곳이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 점점 더 늘어만 가는 것은 조직과의 관계이고 그 관계 사이에 치여 정신없이 뛰어다니는게 우리의 모습이다. 오늘은 여기서.. 또 내일은 저기서.. 현재를 살며 미래를 생각해야하는 우리의 운명은 언제부턴가 당연히 되어져왔다. 그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 그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은 도태되거나 사회의 낙오자란 이름으로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서 우린 나 자신의 모습, 나를 넘어 우리의 모습과 생각을 돌아보는 것에 점점 더 낯설어지게 되었다. 나를 둘러싼 익숙한 것들은 이제 더이상 '익숙한' 것들로 인식 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 눈 앞에 보이는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 사이에 ing라는 이름으로 흐르고 있는 '현재'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들이 미쳐 그 존재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체 지나가버린 소중한 그 무언가들..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우리가 '익숙함'이란 이름 아래 가을날 시린 바람처럼 가볍게 넘어가거나 간과해버린 그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 '스즈메(우에노 쥬리 분)'는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영화 속 '스즈메'는 감독이 우리의 모습들은 우리를 대신해 투영해 놓은 인물이다. 평범하다 못해 어중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손목시계의 초침 마냥 허겁지겁 달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들이 느끼는 무료함과 무감각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반성과 미래의 이상의 삶 속에서 정작 '현재'가 없는 우리들에게 주인공 '스즈메'의 삶은 그리 낯설지 않다. 자신의 안위보다 자신이 키우는 거북이에게 사랑을 쏟는 남편이나 반복적인 일상은 그녀의 그러한 모습에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 근거가 된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에게도 달콤한 변화가 찾아온다. 우연하게 보게 된 '스파이 모집 광고'는 현재의 그녀 모습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만들게 된다. 얼떨결에 스파이가 되게 된 그녀... 스파이라는 신분의 특성상 그녀는 그녀의 신분을 노출해선 안된다. 평범함 중에서도 더더욱 평범함을 찾아야 하는 그녀.. 그녀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찾고자 했던 그 '무언가'를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장난스럽게 이야기되는 그 무언가는 우리의 주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을 보려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소소한 행복들이었다. 동료 스파이 '에츠코'와 '쿠기타니'와의 작고 사소한 일들.. 그리고 그것이 가르쳐 준 작은 행복들과 사랑은 무감각했던 그녀의 삶에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 힘이 얼마만한 것인지 까지.. 심지어는 종업이 외우기 가장 어려운 메뉴가 닭튀김이란 사실까지도 말이다(이건.. 감독의 센스?? ㅋㅋ)
그러면서 영화는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그녀가 스파이를 시작하게 되면서 받게 되는 거액의 돈은 영화 속 그 누구에게도 그리 큰 의미를 갖는 존재이지 못하다. 돈은 단순히 스파이 활동을 위한 수단이지 스파이 활동을 하는 목적(이유)가 되지 않는 것이다. 감독은 이러한 모습들을 영화 전반에 설치하면서 그들의 삶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하는 동시에 우리는 왜 그것을 위해 이토록 달리고 있는 지에 대한 물음도 함께 던지고 있다. 일상의 모든 것에 목적을 두고 것만을 바라보며 달려가기 때문에 지나칠 수밖에 없는 그 무언가들.. 작지만 소중한 그것들에 대한 암묵적인 강조가 아닐까.
그리고 영화에서 또하나 주목해 볼 인물은 그녀의 단짝친구 '쿠자쿠(아오이 유우 분)'다. 평생 단짝으로 지낸 '쿠자쿠'는 스파이가 되기 전 그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센스가 넘쳤고 당당했으며 항상 무언가를 위해 달리고 노력하는... '스즈메' 자신의 무료함과 무감각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언제나 힘이 넘치고 자신감에 찬 '쿠자쿠'를 보면서 '스즈메'는 변화를 추구하려하나 단순히 동경에 머물고 만다. 이러한 '쿠자쿠'의 등장은 '스즈메'의 현재와 대조를 이루는 동시에 현재 우리들의 삶이 어디에 더 가까운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해답을 감독은 결국 그녀들을 통해 보여주게 된다.
케릭터의 스타일이나 네러티브의 구조는 전형적인 니뽄스타일이다. 조크의 센스나 웃음의 장치들까지도 일본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이게 뭐야'라는 불만과 찌푸림이 나올 법한 영화이다. 하지만 본인이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영화의 외향적인 구조나 스타일이 아니라 그 속에 담고 있는 메세지와 영화의 연출, 드라마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란 울타리 안에서 우리들이 놓치고 있는 그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며 새삼 그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마음의 눈에 이야기를 전하는 그런 영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직.. 스포일러와 나의 주관을 적절하게 조율할 줄 몰라 이야기는 이만 접는다. 역시.. 영화는.. 봐야하는 것인가 ㅡㅡ;;
아직도 내 귓가에는 "아즈키 판다 짱~ 아즈키 판다 짱~"이 맴돌고 있다(보신 분들은 아마.. 다들 저와 같은 느낌이실듯?? ㅋㅋ)
p.s 영화의 음악이 너무나 절묘하였는데 그 내용을 빼먹었다.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힘을 이 영화를 통해 또한번 느낀다. 역시.. 영화는 종합 예술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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