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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코폴라가 통역한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
tadzio 2007-05-20 오후 11:46:46 1351   [6]

Marie Antoinette(2006)

Presented by Columbia Pictures

Directed by Sofia Copola

Starring Kirsten Dunst

 

 

  외로움, 이질감. 그리고, 베르사유.

  정성일 평론가는 영화를 볼 때 인물을 쫓아가고 이입하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했다. 미성숙한 눈을 가진 20살의 나는 인물이 먼저 보이고 내 눈이 알아서 감성을 먼저 쫓는다. 영화 초반에 드러나는 앙투아네트의 이질감이나 외로움은 꽤 설득력 있게 와 닿았다. 어린 나이에 새로운 환경에 그야말로 내던져진 그녀. 적응할 틈도 없이 그녀는 이방인이 된다.


  이방인이 거치는 코스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내국인들에게 이방인을 파악하기 위해 필수적인 건 label이다. 그녀는 여기서부터 온전한 인간일 수 없게 된다. 14살, 현대의 우리는 질풍노도의 청소년으로서 제 2차 성징에 대한 지루하고도 어이없는 오래된 성교육 비디오를 봐야했었는데, 마리는 오스트리아인, 게르만 인으로 절대왕정의 상징이었던 베르사유에 받아들여진다. 소통, 애정, 소속감이 필요한 나이에 그녀가 느끼는 건 고립, 외로움밖에 없다. 베르사유에서 마리는 다른 무언가로 평가받는 나날, 새로운 생활, 그리고 자신의 입지가 굳혀지기 위한 섹스의 분투로 영화의 전반부는 그려진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안전할 수 없는 그녀는 돌연 마리 앙투아네트이기 이전에 ‘아이 낳는 기계’로 변한다. 최강의 권력, 모든 화려함과 그 시대 프랑스의 모든 ‘최고’의 집대성인 궁전 베르사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불모의 곳이다. 온전한 인간만은 낳지 못하는 곳. 마리는 베르사유 안에서 불온전하고 malfunction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된다. 사고하고 생활하는 한 인간이 아닌 아이를 낳는 기계, 그리고 협정의 윤활유 밖에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타인의 요구에, 체제의 견고함에, 그리고 자신의 기능적인 자아에 짓눌린다. 그리고 사치에 취한다. 그런 면에 있어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외견은 어울리는 듯싶기도 하다. 뽀얀 살결과 하늘거리는 파스텔 톤의 드레스는 반쪽자리 인간을 가리고 포장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진득한 사유, 짜릿한 소통이라곤 오갈 데 없는 빽빽한 그녀의 드레스 틈 자락으로는 기막히게 잘 어울리는 궁내의 인테리어와 candy, 술이 보일 뿐이다.

 

 

 소녀적인 영화

  그러나 솔직히 나는 어느 틈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녀의 외로움과 이질감, 그리고 그녀의 불온전함에. 이러니 어디 자신의 욕망을, 가치를 둘 곳이 있었겠어! 하고. 하지만 다시 질문해본다. 나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누구인지(who she really is)를 느끼고 있는가? 모르겠다. 후반부로 가보자, 지켜보자 했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남는다. 그녀는 누구일까? 오스트리안 아가씨? 어린아이? 어머니? 여왕? 아이를 낳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며(무려 루소를 읽으며!) 평온한 트리아논 궁의 생활이나, 마지막에 치달아 위기에 처한 모습에 변화가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변화는 그녀가 누구인지를 설명해주지 못하고 압축적인 전개 역시 틈을 주지 않는다. 한 인물의 인생을 다루는 데 있어서 성장과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감동을 얻기 힘들다. 그런 고로, 나는 이 인물이 누구인지(who she is)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인생의 여러 모습을 보았는데도 이 여인이 이런저런 일을 겪어서 이런 사람이 된 거다, 하고 느낄 수가 없었던 이 영화는 자라지 않는 피터팬처럼, 소녀처럼 멈추어 있었다. 정체된 상태로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다달아서 화가 난 군중들에게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완벽히 이해가 가지 않고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은 이유 역시 이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소녀적 분위기를 더하는 건 화려무쌍한 미장센이다. 파스텔 톤, 틴걸teen girl을 대표하는 핑크색, 스트레스 해소에는 쇼핑을 하고 케익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건 소녀적 판타지를 불러일으킬만하다. 거기에 의도적이었다던 연보라색 converse 운동화. 그녀도 다를 바 없는 소녀임을 여러모로 증명하는 건 영화의 아트 디렉션이다.

 

 

Marie-centered Point of View.

  영화는 지극히 마리의 관점에만 머문다. 자기를 둘러싼 이질적인 세계에 힘겨워 한다는 게 중요하게 자리하는 이 영화는 POV 면에서 코폴라의 전작 <Lost in Translation>과 닮아있다. 전작 역시 전적으로 주인공 중심으로 일본을 꽤나 모독적으로 그리면서 그 한가운데 몽환적인 감성, 주인공들의 외로움 속에 소통을 담았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시점만큼은 지독히 마리 중심적이고, 사실 그게 이 영화의 전부what it's all about인지도 모른다. 신고전주의 화가들이 캔버스 밖의 세계로 시선이 넘어가지 않도록 계산했던 것처럼 베르사유 혹은 파리의 화려한 가면무도회, 그리고 트리아논 궁 밖으로는 시선을 줄 수 없게 만드는 시점이었다.


  전작 LIT과 시점은 닮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 쪽이 아름답기는 하나 더 비극적이다. LIT의 샬롯은 일본의 세계에도, 남편과의 소통과도 실패해 다른 사람과의 유대를 겪게 되지만, 영화 속 앙투아네트에겐 이렇다할 관계가 등장하지 않는다. 14세부터 함께한 남편 루이 16세가 그나마 가장 오랜 기간의 관계지만 결국 동지에 가깝게 굳어지게 된다. 한 인간을 조망하는 데 있어서 주변인물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게 나에겐 매우 비극적으로 다가왔다. 페르젠과의 사랑은 잠깐의 열병같이, 그것도 로맨틱 코메디의 장면같이 등장하는데다가, 포리냐크 부인 같은 친구들과의 수다에선 어떤 관계였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영화는 마리가 결국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포기하듯 유희의 길로 빠지고 말았다고 말하는 듯 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인간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 인간과 타인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참 슬플 수밖에. 거기에 시대적으로 굴곡이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 더욱더 외롭게 느껴지는 인물이다.


 

 "Sofia Copola", Her.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건 감독 소피아 코폴라다. 결국 감독도 작품을 통해 소통하는 게 아닌가? 예술가들은 개인적인 것을 많이 표현하기에("Great art usually is awfully personal.") 결국 작품도 자기가 세상에 하고픈 말의 표현이고 그것이 세상과의 나름의 소통이며 그걸 통해 더더욱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LIT에 이어서 이쯤 되면 코폴라씨 어렸을 때 많이 외로웠나, 하고까지 생각하게 된다니까). 소녀적인 감성, 이질감이나 외로움을 떠나 언젠가 그녀가 그리는 ‘소통’을 볼 수 있을까? 질투가 조금 나기도 하지만 여성감독이 흔치 않은 영화계에 집안의 명예를 떠나 기대가 많은 감독이다, 그녀는. 그래서 바란다. 언젠가 꼭 보고 싶다. 그녀가 그리는 ‘세상과 나와 너와의 진짜 관계’ 그리고 ‘소통’을.

 

 

  소피아 코폴라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이 영화는 특정한 연출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 모던한 감각으로 상징적인 인물을 비추려 했던 것이 인상적이다. 18세기의 프랑스 궁전에 연보라색 converse 운동화는 웬 말이며, 락음악과 팝, 그리고 인트로의 타입 디자인 역시 매우 현대적이다. 또한 마리를 비롯한 왕궁의 이들을 평범한 파티광 젊은이로 보일만한 에피소드들은 리얼리티가 있으면서도 신선했다.

 

 
 

  또한 거듭 말해온 탐미주의적이며 화려무쌍하고도 고전적인 미장센! 아름다움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영화의 아트 디렉션이 훌륭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았을 정도로 화려하고 고증적인 의상, 수없이 등장하는 반할만한 케익들. 오오, 아름답고 아름답다! 트리아논 궁전의 벽지 색깔과 마리의 드레스, 거기에 심지어 악사들의 의상과 꽃 색깔까지 맞춘 미장센이라니. 고집스럽게 모든 의상과 인테리어를 꼼꼼히 제작했을 기획의 현장이 그려진다. 순간 캡쳐를 해놓으면 곧바로 innisfree 같은 화장품 광고로 변할 것 같이 아름답고 환상적인 샷도 많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미장센은 영화의 큰 장점이지만 또한 단점으로 변하기도 한다. 자꾸 말하게 되지만, 인물의 감성이 톡 튀어 나오다가도 스크린 밖에까지 덥썩 하고 내 맘을 잡지를 못한다는 것. 오히려 그 지나친 화려함이 감성의 진솔함을 깎아 먹는 듯 하다. 배경의 웅장함 덕인지 꼭 중세의 종교화 마냥 인물을 중간에 배치시켜놓는 고전적인 구도도 인상적이지만 관객을 깊이 참여시키지 못하는 듯해 아쉽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도 사실 이 영화는 마리 앙투아네트 이름이 갖는 무게라는 관점에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은 지극히 가벼운 동시에 무겁다. 한 시대 혹은 왕조의 마지막 여인들은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마련이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갖고 있는 너무나 커다란 아이콘적인 이미지, 이름이 가진 역사성을 파헤치고 다른 각도에서 보기란 매우 힘들다. 그 커다란 아이콘을 모던한 감각으로, 압축적이게 그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수긍을 얻어내기까지엔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상징을 깨부수는 건 상징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감독은 영화를 “역사수업이 아닌 소피아 코폴라가 통역한 역사”라고 했지만, 그 소피아 코폴라가 통역한 역사라는 것이 꽤나 애매모호하다는 것이 내가 느끼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이다. 이게 모던하게 바꾼 풍자화인지, 초상화인지, 에피소딕한 사실주의 장르화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꼭 영화의 파스텔톤 같이 성장기도, 전기도, 치밀한 개인사도 아니니까. 카테고리를 나누지 말라고? 카테고리의 문제가 아니라 context의 문제다. 내가 현대적인 표현에 익숙해져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콱, 이렇다할 형태를 띠고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적지근하다. 실존 인물을 그것도 myth에 가까운 인물을 영화로 자신만의 작품으로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지 새삼 실감한다. 문득  <Last Days>의, 실존의 전설적인 인물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구현한 구스 반 산트를 외치고 싶어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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