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홍상수, 그리고 이창동...세 감독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떠오르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고집스러울 만큼 개인적인 스타일, 굳이 이해를 바라지 않는 듯한 어려운 메시지, 캐릭터나 스토리가 주는 외양적인 이질감과 다른 내부적인 공감대와 동정까지 하나하나 살펴보면 관객들에겐 참 불친절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다. 하지만 그런 불친절이 오히려 관객들의 구미를 자극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게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작품을 쉽게 지나쳐 버리지 않게 하는 그런 힘이 있는 영화를 만들어 내는 감독들, 이른바 작가주의 계통의 감독과 작품이 주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려 5년이라는 공백을 깨고 신작을 선보인 이창동 감독은 그 중에서도 가장 관객들에게 친절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에 내놓은 <밀양>이란 작품은 더더욱 그렇다. 언제나 그렇듯 연기로써 관객을 감탄시킬 줄 아는 배우들과 영화 속에 스며있는 인간냄새까지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그리 친절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관객 스스로가 보고, 듣고, 맡으며,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영화 <밀양>은 이전 작품들 보다 감독의 그런 고집 혹은 성향이 더욱 크게 부각되어 있는 작품이기에 감독의 눈을 통해서 일방적으로 ‘보여주기식’ , ‘들려주기식’ 영화들에만 익숙한 관객들에겐 그리 호락호락하게 와닿는 영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박하사탕], [오아시스]의 매력을 가슴으로 느꼈던 관객이라면 영화 [밀양]의 오프닝 타이틀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조용히 비치는 햇볕이 인상적인 엔딩씬까지 아무 이유없이 밀려오는 감정의 울림이 느끼게 될 것이다.
국도 한 곁에 고장 난 차를 세워 두고 전화로 안절부절 하는 한 여자가 있다. 낯선 외지에 사내아이 하나를 데리고 온 그녀, “신애”는 죽은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가는 중이다. 영화 <밀양>은 바로 신애가 찾아가는 지역인 경상남도 밀양이라는 지역의 이름이다. 그리고 신애의 고장난 차를 고치러 온 카센터 사장인 “종찬“에게 신애는 묻는다. "밀양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비밀 밀(密), 볕 양(陽), 비밀스러운 햇볕. 좋죠?”...영화 <밀양>은 신애가 말한 대사 속 밀양의 의미처럼 참 비밀이 많은 영화이다. 오히려 신애와 종찬 이라는 두 인물은 발가벗겨져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보여주지만 정작 영화 이면에는 관객들 스스로가 알아차려 할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부딪히게 되는 많은 비밀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 소중하다고 믿지요.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도 소중한 게 있답니다.” , “저기 작은 햇볕 하나에도 하나님은 의미를 주셨어요.”라고 말하는 약국 김집사 아줌마의 대사는 겉으로 기독교적 의미를 보여주지만 “비밀스러운 햇볕”이라는 신애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작은 햇볕 하나가 가지는 의미를 알지 못하는, 아니 그 의미를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 우리들의 모습이며, 절대자와는 구별되는 인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 <밀양>은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며, 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은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서 작은 피아노 학원을 개업하고 새 삶을 살아가려는 신애. 그녀에게 있어서 삶의 위안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어린 아들 “준”이다. 그리고 그런 신애의 곁을 맴돌며 사사건건 도움을 주려는 남자가 있으니 바로 신애의 고장 난 차를 고쳐준 계기로 이렇게 저렇게 인연을 만들어 간 카센터 사장 종찬이다. 영화 <밀양>에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원동력과 그 생명의 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흔히들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난 가족 때문에 살아”, “난 그 여자 때문에 살아야돼” 등등등...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와 근원을 쉽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찾으려 하는 것이다. 영화 <밀양> 속 신애와 종찬 역시 그렇다. 신애에겐 남편의 죽음이라는 상처가 있지만 아들이라는 살아가는 이유이자 힘이 되어 존재가 있고, 마흔이 되도록 결혼도 안하고, 가족들에겐 자기 말처럼 갈굼만 당하며, 다방 아가씨들과 시덥지않은 농담이나 하는 종찬에겐 우연히 만난 신애가 살아가는, 아니 살아가도록 만드는 힘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즐거움이 되어 주는 아들 “준”이 어쩌면 신애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자 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신애에게 속물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냉대만 받지만 물심양면으로 그녀의 곁에서 떠나지 않고 도와주는 종찬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그에게 신애라는 여자가 살아가는 숨소리를 느끼게 해주고, 그 이유가 되어 주는 것이다. 영화 <밀양> 속 신애와 종찬은 관객들을 대변하는 동시에 멀리는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신이 믿고 있는 삶의 이유와 삶의 원동력을 잃게 되는 순간, 또 거기에 변화가 생기는 순간 인간으로서 어떻게 반응하게 되는지와 삶에 있어 어떠한 변화를 보이는가를 처절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밀양에서 새 삶을 시작한 신애는 어느새 아들 준의 학교 학부형들이나 마을 주민들과도 어울리게 될 만큼 외지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평안한 생활은 얼마 되지 않아 급격한 변화를 가지게 된다. 이 순간부터 신애의 삶은 급격한 비극을 맞이하게 되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삶의 이유와 모습에 있어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런 신애의 변화와 함께 종찬 역시 변화를 맞이하게 되고, 영화 <밀양>은 지속적이면서 가혹할 정도로 두 인물에게 급격하고 커다란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아픔과 슬픔, 상처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숨까지 헐떡이며 울음을 터뜨리는 신애에게 이제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어 보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힘겹게만 보이고, 차라리 삶을 포기하는 것이 편안해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신애에게 또 다른 삶의 이유와 원동력이 되어 주는 것이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종교이며, 그 속의 하나님이라는 절대자의 존재이다. 신애의 급격한 변화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나 극중 종찬에게도 이해할 수 없고, 당황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어느새 공감대를 만들어 주고, 신애라는 인물이 가지는 또 다른 삶의 시작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교회 식구들 앞에서 자신은 행복을 찾았다고 간증을 하고, 밀양역 앞에서 찬송을 부르는 등 신애에게는 이제 하나님이라는 새 삶의 힘과 원동력이 생긴 것이다.
그렇지만 신애에게 있어 절대자라는 존재도, 종교라는 것도 가슴의 상처와 아픔, 분노까지 말끔하게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과 교회는 신애에게 새 삶에 대한 안정을 도와주었지만 살아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신애의 가슴 속 상처와 분노가 또 다른 형태로 그녀를 붙잡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가슴 속 상처와 분노까지 종교의 힘을 빌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믿었던 그녀이지만 어느 한 순간 자신은 절대자와 다른, 절대자보다는 낮은 인간임을 알게 되면서 힘겹게 잡고 있던 삶의 끈이 순식간에 풀리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종찬 역시 힘겹고 아프기만 한데, 그것은 곧 관객들의 마음과도 같을 것이다. 영화 <밀양>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을 잃고 죽음과 삶이라는 경계에서 고민하게 될 때 유일한 위안과 힘이 될 수 있는 존재로 절대자와 종교를 받아들이는 선택을 하게 됨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곧 절대적일 수만은 없음을 보여주면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그들이 설정한 절대자란 존재 앞에서 한없이 작은가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이기에 안고 있는 상처와 한계를 가슴 시리게 보여준다.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가르침, 즉 용서할 수 없는 존재 앞에서의 용서가 인간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과 아픔이 되는지를 영화 <밀양>은 보여주는 것이다. 나락으로 떨어진 삶을 지탱하기 위해 절대자에게 의존해 보지만 가슴 깊숙하게 묻어 둔 상처와 분노가 다시금 자신을 괴롭히면서 한없이 나약하고 초라하게 변모해 가는 신애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기에 함께 아파하고, 함께 좌절하게 된다.
<오아시스>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신작을 선보인 이창동 감독은 역시나 호락호락한 작품으로 관객을 찾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친절한 작품으로 관객들을 괴롭히지도 않는다. 인간의 본성과 순수성에 대해 이야기했던 <박하사탕>이나 인간의 본능과 그 속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던 <오아시스>에서 처럼 <밀양> 역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이며, 그를 통한 인간의 아픔과 상처, 나약함과 한계를 조심스럽게 이야기 한다. 전작들에서도 그랬듯이 이창동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나약하고,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의 순수함은 관객들에게 때론 웃음을 주기도 하고, 영화를 보는 동안 여유를 주기도 한다. 영화 <밀양>의 종찬이란 캐릭터가 바로 그것 이다. 사실 신애는 너무도 아픈 상처를 안고 있으며 그녀의 삶은 처절하리 만큼 비극적이다. 하지만 그녀 곁에서 언제나 바라보며 도와주는 종찬은 마치 관객들을 대변하는 듯 편안하고 일상적이다. 오지랖은 그 누구보다도 넓어서 신애의 일이라면 참견 안하는 것이 없을 정도고, 툭툭 내뱉는 말이나 생각없는 행동은 좋게 말하면 순수해 보이지만 어찌보면 바보같아 보일 정도다. 이렇게 인간냄새 풍기고 순수한 종찬이란 캐릭터를 통해 자칫 어둡고, 처절하기만 할 수 있는 영화에 생기를 주고, 활력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창동 감독의 작품들이 관객들에게 주는 배려이며, 결코 불친절하게만 비치지 않는 이창동 감독만의 작가주의적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고집스럽지만 집착은 아니고, 자유롭지만 이기적이지는 않으며, 처절하지만 어둡고 무겁게만 그려내지 않는 것이 이창동 감독의 작품들이 주는 매력이며, 5년 만에 선보인 영화 <밀양>은 그러한 매력을 더욱 부각시켜 담고 있는 영화이다. 어쩌면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의도하는 메시지 하나하나를 찾으려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인간의 이야기이기에 관객들 스스로가 의미를 형성하고, 느껴보면 더욱 편하게 다가오게 된다.
영화 <밀양>은 5년만에 선보인 이창동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과 동시에 전도연과 송강호라는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두 연기 잘하는 배우의 이름 때문에 더더욱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 속 신애와 종찬이 된 이 두 배우는 그야말로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아니 영화 <밀양>은 전도연과 송강호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둘의 연기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할 것이다. 일찌감치 이 영화를 통해 칸느 영화제에서도 주목받게 된 전도연은 영화 <밀양> 속 신애를 통해 기존의 많은 영화들을 통해서 보여준 연기와는 다른 느낌의 폭발적인 연기력을 과시한다. 가슴 속에 커다란 상처와 분노를 안고서 울분을 토해내는 신애를 통해 소름 끼칠만큼 사실적이고, 가슴 아픈 내면연기를 보여준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 절규하는 모습이나 세상에 대한 배신과 믿고 있던 절대자에 대한 배신감으로 점차 삶에 대한 좌절로 떨어져 가는 신애를 보여주는 전도연은 시종일관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때로는 행복한 듯한 모습으로, 그리고 때로는 무서우리만큼 넋 빠진 모습으로 신애라는 캐릭터의 급격스러운 감정변화를 확실하게 표현해낸다.
또한 그런 신애를 바라보며 그녀 곁을 지키는 종찬을 연기한 송강호는 역시나 두 말이 필요없다. 언제나 그렇듯 대본을 능가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송강호는 이번 영화 <밀양>에서도 어김없이 관객들에게 “송강호식 인간연기”를 보여준다. 신애나 심지어 가족에게도 속물 취급당하는 종찬이지만 신애를 도와주고, 그녀 곁을 지키면서 자신 역시 삶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고, 삶의 변화를 가지게 된다. 신애 앞에서는 작아지기만 하고, 오지랖만 넒어서 낄데 안낄데 다 끼어들고, 신애를 따라 교회까지 나가서 주차봉사도 하고, 역전 찬송까지 하는 종찬의 모습은 송강호를 통해 자칫 엉뚱해 보일 수 있는 캐릭터를 인간미 넘치고, 사실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 종찬이라는 캐릭터와 송강호의 연기는 자칫 어둡고 무거울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 여유와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영화 <밀양> 속에는 이렇듯 전도연과 송강호라는 배우가 살아서 숨쉬고 있다. 두 배우는 <밀양> 속 신애와 캐릭터를 정성어린 모습으로 연기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관객들을 영화 속 신애와 종찬을 살아있는 존재로 느끼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전도연의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감정연기는 관객들마저 신애가 가진 상처에 아프게 만들고, 송강호가 보여주는 인간냄새로 가득 찬 연기는 종찬을 매우 사랑스럽게 만들어 준다. 어떤 영화에서든지 멋진 연기력을 보여주었던 전도연과 송강호이지만 영화 <밀양>은 그들을 통해 더욱 빛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빌려 왔다는 영화 <밀양>은 종교와 절대자를 통한 상처의 회복과 삶의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영화에 비쳐지는 다소 종교적인 색채에 어색하거나 마치 그것을 재미있는 볼거리로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런 점이 우려되는 관객이라면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를 먼저 접하고 영화를 감상했으면 한다. 주인공의 상처와 아픔을 이해하고, 절대자라는 존재와 종교에 의존하며 조금이나마 삶을 지탱하려는 인간의 나약함과 그를 통해 보여 지는 한계를 가슴 시리게 느끼도록 해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영화 <밀양>의 포스터는 참으로 많은 느낌을 담고 있다. 웅크린 채 울고 있는 신애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고, 그녀를 뒤에서 물끄러미 안타깝게 바라보는 종찬은 애처롭게만 보인다. 그리고 한 켠에서 비치는 햇볕은 따뜻해 보이기도 하지만 따갑고, 슬퍼 보이기도 한다. 이런 포스터의 느낌이 아마도 영화 <밀양>의 느낌일 것이다. 때론 따뜻해 보이는 햇볕, 때론 따갑기만 한 햇볕, 그리고 종종 슬프고 가슴 아프게 하는 햇볕...그것은 곧 신애의 삶이고, 종찬의 시각이며, 관객들이 이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의 변화들이다. 하나님은 작은 햇볕 하나에도 의미를 주셨다는 김집사의 말처럼 어느새 우리는 영화 속 중간중간 마다 비치는 햇볕 하나하나에 의미를 만들어 가고, 엔딩과 함께 살며시 비쳐주는 햇볕을 보며 자신만의 의미와 여운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희망도 아닌, 그렇다고 좌절도 아닌 신애의 삶을 보면서 관객들 역시 “비밀스러운 햇볕”의 비밀스러운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창동, 전도연, 송강호라는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영화 <밀양>의 비밀과 매력을 많은 관객들이 확인하고, 그 의미를 만들어 보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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