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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걸즈 스윙걸즈
francesca22 2007-05-21 오후 11:18:36 1210   [2]
얼마전 한창 유행이던 광고 중에 "지루하게 사는 건 젊음에 대한 죄다"라는 문구를 내건 자동차 광고가 있다. 그 광고 속 주인공이 하는 행실처럼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사는 건 상당히 무례한 경우겠지만(얼마전 <마린블루스>에서 이 광고를 비판한 걸 본 적 있다), 그래도 카피의 뜻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뭐든 해볼 수 있는 때, 뭐든 하고 싶은 때라는 것이 어쩌면 젊음이 가진 특권일 텐데, 이걸 그저 무료하게 흘려보낸다면 확실히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젊음"이라는 기회에 대해 상당한 무례를 범하는 경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진리가 비단 젊은 시절에만 적용되는 것이랴. 우리가 너무 어리든 젊든 나이가 들었든, 이 진리는 언제나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이 영화 <스윙 걸즈>가 우리들에게 이런 교훈을 가르쳐준다. 아직 가슴 한켠에 열정의 불씨가 꿈틀거리고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불씨를 되살려 심장을 활활 불태우게 할 의무가 있음을 이 영화는 감미로운 스윙 리듬과 함께 가르쳐준다. 이 영화는 일본 감독들 중에 특히나 코미디 쪽에서 인정받는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작품인데, 그의 보통 컨셉인 스피디함과 예측불허의 전개보다는 잔잔하고 흐뭇하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웃겨주는 센스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의 어느 시골고등학교, 토모코(우에노 쥬리)를 비롯한 13명의 왈가닥 소녀들이 야구경기에 응원차 출장간 학교 합주부를 위해 도시락을 전해주게 되는데, 더운 여름 날씨에 너무 오래 음식을 방치한 나머지, 이 음식들을 먹은 합주부 전원이 식중독에 걸리고 만다. 그들은 곧바로 병원으로 직행하고, 이제 합주부의 자리는 난데없이 비게 된 상황.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자부원 나카무라(히라오카 유타)는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소녀들에게 은근슬쩍 압력을 넣고, 결국 소녀들은 수업도 빠질 겸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합주에 대한 소질이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 이들이 하루아침에 실력이 나아질 리가 만무하다. 이런 이들이, 어쩌면 기존 합주부보다 더 위험한 도전일지도 모를 재즈 빅밴드 스타일을 시도하게 되는데, 여전히 악기에선 헛바람만 나오는 이들이 과연 제대로 된 연주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영화가 내가 참 좋아하는 스타일인 것이, 헐리웃의 흔한 공산품 코미디들처럼 뭔가 정밀하게 꽉 짜여져 있고 정리된 구조로 나아가지 않는다. 캐릭터들의 면면은 선생님, 아이들할 것 없이 하나같이 어딘가 허술하고 어리버리하며, 영화의 전개도 빽빽하게 개연성을 부여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코미디에서는 오히려 꽉 짜인 구조보다 이렇게 좀 헐렁한 구조가 더 맛깔나는 웃음을 만드는 법. 어디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웃긴 장면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냥 툭 던져 놓으니 보는 사람으로선 웃기지 아니 할 수 없다. 특히나 중반 밴드가 잠시 와해됐을 때 나오는 자전거 소년의 고난도 덤블링 장면과 악기값을 벌기 위해 버섯을 채취하다 멧돼지와 맞닥뜨리는 장면은 그러한 헐렁-언밸런스 유머의 절정을 보여준다. 콧물까지 떨어질랑말랑하는 다급한 주인공들의 표정이 카메라에 집중되면서 음악은 클래식이 흘러나오는데 이거 웃지 않고서야 배길 수 없다.

헐렁한 캐릭터들도 한층 정겹다. 탁월한 재능을 부여받았다거나, 아니면 전형적으로 착하거나 나쁜 캐릭터라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그저 평범하고 엉뚱하고 때론 비주류적이기도 하다. 합주부원들을 식중독의 늪으로 몰아넣고도 여전히 천진하게 잘만 웃고 다니는 주인공 토모코를 비롯해, 그래도 명색이 밴드를 이끌어가야 할 처지인데 여전히 소심하다고 이마에 써붙인 듯한 인상의 남자부원 나카무라, 학생들 앞에서는 재즈 분야의 숨겨진 실력자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은 자신도 열정만 있고 실력은 아직 모자란 담임선생님(다케나카 나오토), 끝까지 지조있게 전자기타를 연주하는 기타소녀들과 이들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겉으론 잔뜩 터프한 척 하지만 알고보면 무식하리만치 사랑밖엔 난 몰라인 불량소년들에 이르기까지... 전형성을 벗어난 캐릭터들로 가득해 그들의 예측불허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앞에서 얘기했듯, 이 영화는 허술한 구석이 어느 정도 있다. 식중독 사태가 발생하여 새로운 밴드부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좀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고, 후반부에 가서 여전히 실력이 부족하던 밴드부가 갑자기 멋진 연주를 선보일 수 있게 되는 것도 확실히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것들이 아니다. 이런 점들이 덮을 수 없는 영화의 미덕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절로 몸이 들썩거려지는 경쾌한 재즈 사운드들을 들려주면서, 재즈가 이렇게 발랄하고 밝은 음악이었던가 하고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속 여고생들의 말처럼 재즈라는 것이 "어른들이 담배 하나 물고 듣는" 고리타분한 음악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렇지 않다. 진심으로 절로 발이 까딱여지면서 리듬을 따라가고 싶게끔 만든다. 그만큼 재즈, 스윙이라는 장르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 영화다.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나아가는 스윙 리듬과 함께, 영화는 이 여유롭고 경쾌한 스윙 리듬을 우리 삶에도 그대로 스며들게 하라고 얘기한다. 영화 속 여고생들처럼 "우리에게 장래가 있을까?" 싶은 공허한 고민을 해도 괜찮고, 담임선생님처럼 아들 뻘인 아이에게 "아저씨 너무 못해" 소리를 들어가면서 늦은 나이에 주책맞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괜찮다. 자신이 간절히 하고 싶은 일에 조금이라도 힘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살아가면서 이렇게 뭔가에 자신의 땀 한방울까지 다 쏟아붓고 싶게 하는 열정을 가진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결과를 보장할 수 없더라도 "까짓것 해보는 거지 뭐"하며 유쾌하게 시도할 줄 아는 대담함은 다소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삶을 한층 경쾌하게 만드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기에 너무 어려운 거 아니냐,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도, 한번 번지기 시작하면 온몸의 아드레날린을 한방에 폭발시키는 열정의 힘으로, 스윙 리듬처럼 빽빽하지 않고 부드럽고 여유만만하게, 새로운 문을 열고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임을 영화는 얘기한다.

영화 속에서 야구부 학생이 "그래, 우리도 노력하면 스윙을 할 수 있어"라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사실이다. 무언가에 대한 무모하리만치 활발한 열정은 적어도, 우리 인생에 있어서 독약은 되지 않을 것임을 영화는 이야기한다. 삶의 수레바퀴에 놀라운 활력을 선사할 윤활유가 될 거라는 것을.

(총 1명 참여)
soja18
잘 읽었습니다..   
2009-12-22 18:59
kgbagency
야구치 시노부 영화는 다 재밌죠^^   
2007-05-22 06:4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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