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다, 버겁다, 암담하다, 눈물이 난다.....
마치 희망을 보여주는 듯이 파란 하늘로 영화는 시작한다. 신애는 자신과 아들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그녀가 왜 굳이 연고도 없는 밀양을 선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씩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텐데....
과연, 그 누구도 과거의 나를 알지 못했던 곳에서 새로 시작하면 과거와는 다른 행복한 삶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영화는 종찬의 입을 빌어 그건 아니라고 말한다. "사는 건 어디나 똑같지예~~~~"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구석에서 흔들리는 강아지풀을 비추는 한 줄기 햇볕에서 찾을 수 있을까?
영화를 보기 전부터 그러리라고 예상은 했다. 무겁고, 버거울 것이라고... 그래서 당분간 <밀양>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힘들어 할 것이라고... <박하사탕> 때도 그랬고.. 그보다는 덜했지만 <오아시스> 때도 그랬기 때문에.. 그런데.. 예상보다 <밀양>은 나를 좀 더 힘들게 할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무겁고, 버겁고, 암담하고, 눈물이 났다. 물론 종찬(송강호)을 통해 마치 어두운 동굴 속 한 줄기 시원한 바람처럼 웃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애절함 만이 내 가슴에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밀양>은 누구 표현대로 정말 징글징글하다. 한 가련한 여인의 바닥을 저렇게까지 긁어내어 펼쳐보여야 하나, 대체 인간 심연의 바닥은 어디까지일까? 인간의 극한 고통은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그런 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선 이창동 감독도 징글징글하고, 그걸 몸으로 표현한 전도연도 징글징글하다. 그걸 옆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송강호도 징글징글하고.
이창동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타인의 고통을 정말로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가?" 이렇게까지 박박 긁어서 보여줬는데도, 내가 영화 속 신애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과연 신이라고 해서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신을 통해 인간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영화는 인간의 구원은 인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본주의'에 철저하게 기대있는 듯 하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또 기독교 내지는 종교가 가지는 긍정적 역할을 종찬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신애씨 때문에 나갔지만 이제는 습관이 됐어요. 안 가면 심심하고, 가면 편안하고 그렇지요" 종교가 없는 나지만, 종교가 없이도 인간은 충분히 인간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나지만, 어쩌면 종찬의 그런 마음이야말로 과도하게 모든 걸 재단하려 드는 이 땅의 종교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아닌가 싶다.
이 영화를 얘기하면서 전도연의 연기를 빼놓고는 도저히 얘기할 수가 없다. 물론 송강호의 연기도 "역시!"라며 극찬을 받아 마땅하지만(그리고 영화가 얘기하고 싶은 바는 사실 종찬을 입을 통해 얘기된다), 그래도 이 영화는 전도연의 영화다. 대체 이 아담하고 작은 여자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란 게 있는 것인지, 다음에 또 어떤 걸 우리에게 보여줄 것인지, 혹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건 아니었는지... 전도연이 보여준 연기는 만약 칸에서 상으로서 인정 받지 못한다 하여도(전도연이 상을 받지 못한다면 그걸 이변이라고 보겠다) 한국 영화에서 앞으로도 내내 극찬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한 에너지를 펼쳐 보인다.
아들 '준'을 잃고 신애는 '신'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 보인다. 얼굴에는 행복이 넘친다. 마치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가식적 미소들. 신애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되지만, 자기보다 먼저 범인을 용서해버린 신에게 절망하고 신을 향해 저항한다. 그녀의 저항은 스스로를 망가뜨려 신이 지은 세계에 흠집을 내려는 '자해 공갈'. 목사의 설교 중간에 틀어댄 신중현의 '거짓말이야'는 차라리 재미난 풍자에 불과하다. 교회 장로를 유혹하는 신애는 하늘을 보며 웃는다. "보고 있어요?" 작고 메마른 전도연의 독기에 찬 연기는 온몸에 소름에 돋게 하는 동시에 마치 내 스스로가 신애가 된 듯,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 듯 답답해지고 울렁울렁하고 울컥해진다.
특히 종찬이 쓸쓸하게 혼자만의 생일 상을 차려 놓고 소주를 마시는 카센터에 찾아온 신애가 종찬을 보며 애기하는 장면, "김 사장님도 하고 싶어요. 섹스". 왜 이 장면의 전도연이 그렇게까지 아프고 쓸쓸하게 보였는지, 어떻게 순간적으로 천진난만함과 인생의 극단에 몰린 표정이 동시에 그려질 수 있는지, 그 대사를 하는 전도연의 연기는 앞으로 오랫동안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박하사탕>을 보고나서 영화를 떠올리며 이불을 뒤집어 쓰고서라도 펑펑 울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실제 실행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밀양>을 보고나서 하룻밤이 지난 오늘, 다시금 그런 감정의 파고를 경험하고 있다. 그런다고 신애의 고통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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