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느껴지지만, 지루한 건 어쩔 수 없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과 함께 소위 3대 미제 사건으로 불리며 1991년, 온 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압구정동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거의 대부분 당시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음이 영화 곳곳에 배어있다. 심지어는 이형호군이 유괴되었던 바로 그 아파트 놀이터를 화면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면 일단 이 영화가 진정성에 기반했다는 점은 의심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국민 모두가 알고 있고,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다룬다는 건 꽤나 위험한 도전이다. 비극적 사건을 상업화한다는 비판을 들을 우려가 있고, 그 반대로 가게 되면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을 우려가 동시에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진표 감독은 사실상 후자-도덕적으로 비난 받지 않고, 진실을 전하며, 범인 검거에 일조하겠다. 비록 영화적 재미가 조금 반감되더라도-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시종일관 그 목적 의식을 뚜렷하게 제시한다. "범인이 미치도록 잡고 싶다!"
이런 전제에서 영화는 범인인 강동원의 얼굴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점이나, 감정의 과잉으로 빠진다 해도 이해될 수있을만한 장면에서도 꽤 절제하는 듯했다. 이건 감독의 전작은 <너는 나의 운명>의 선택과 확연히 비교되는 지점이다. <너는 나의 운명>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지만 영국 영화 <브랜단 앤 투루디>에서 빌려온 듯한 교도소에서 황정민이 창살을 붙들고 노래하는 장면 등은 분명히 오버된 감정의 과잉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최근 인터뷰에서 전도연은 그 장면에 대해 시나리오에 없었던 장면으로 현장에서 즉석에서 결정됐고, 자신은 그 당시에도 반대했고, 지금도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가 유괴되고 나서 44일 간의 행적을 묵묵히 묵직하게 따라가다 보니, 사실 영화는 마치 TV에서 한 때 인기를 끌었떤 <공개수배 사건 25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재미적 측면에서는 <공개수배 사건 25시>보다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인데, 몇 번의 동일한 패턴(유괴범의 전화-부모의 반응-경찰의 무능-검거 실패)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범인에 대한 적개심을 고양시키기보다는 지루감의 증폭에 더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유괴되고 나서 고조로 올라선 감정을 2시간 가까이 그 상태로 유지한다는 건 보는 사람에겐 꽤나 어려운 미션이었다.
그런데 2시간 동안 내내 묵묵히 사건을 훑으며 따라가던 영화가 마지막에 와서야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이 감정을 폭발시키며 실제 범인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끝을 맺는다는 것(아마도 아버지의 직업을 유명 앵커로 설정했던 건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 인 듯)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하나의 분위기로 유지되어 오던 영화적 감정을 일거에 뒤집어 버렸다는 점에서 그다지 좋은 선택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영화는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을 몇 차례 언급하고 있는데, 당시 범죄와의 전쟁은 정치적으로 학생운동, 노동운동에 대한 전쟁의 의미도 있었다. 보수/수구 세력은 노태우를 '물태우'라고 부르며 반체제 세력에 대한 좀 더 강경한 태도를 주문했고, 이것이 '범죄와의 전쟁'으로 외화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생범죄의 해결보다는 재야인사/학생·노동운동가의 검거가 경찰에게 훨씬 큰 이익을 보장했다는 점이다. 민생범죄에 집중해도 성공을 보장하기 어려운 전쟁을 분산해서 치렀으니 제대로 전쟁이 수행될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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