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밀양이 개봉했다. 개봉전부터 칸 영화제 경쟁부분에 초청이 되고 꼭 봐야할 10편의 영화에 선정이 되는등 화제가 되긴 했지만 <박하사탕>, <오아시스>를 감명깊게 본(아직 초록물고기는 보지 못했다) 나에겐 이창동감독님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개봉작중 하나였다. <캐리비안의 해적>이 50%에 가까운 스크린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지금 한주라도 지났다간 이 영화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는 예상때문에 개봉당일 첫회에 이 영화를 보러갔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의 감정상태는 당황스러움 ⇒ 불편함 ⇒ 묵직함(이런 감정상태가 있다면) 이렇게 변해갔다. 영화는 신애(전도연)에게 지독한 불행을 선사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끝내려고 저렇게까지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제 들은 라디오에서 이동진기자는 "마음의 지옥"이라는 표현을 사용 했는데 정말 지옥에 가까울 정도로 영화속의 신애는 지옥의 끝까지 '밀어붙임'을 당한다. 그녀의 잘못이라고는 밀양으로 내려온 것. 무시당하기 싫어서 돈이 있는척을 한 것 정도?(이동진 기자도 언급했지만 이건 전혀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다.) 그저 이런 이유만으로 그녀를 둘러싼 환경, 어쩌면 그녀의 운명은 지독히도 그녀에게 불행을 선사한다. 그녀는 그녀의 지독한 운명에 대항하기위해 교회를 다니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그때마다 그녀의 신(운명)은 우습다는듯 그녀를 비웃는다. "너한테 절대 안져" "잘 보고있냐"등 신애의 대사에서도 잘 드러나듯 그녀는 신에 대항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결국엔 자신의 손목을 긋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하지만 이내 그녀는 밖으로 나가 "살려주세요"라는 말로 인간이기에 어쩔수 없는 나약함, 생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감독은 우리에게 신(운명)앞에서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신애의 대사에도 있지만 살다보면 우리는 "왜 하필 오늘, 왜 하필 여기" 등의 말을 할때가 종종 있다. 나도 그럴때마다 신의 존재를 지독히도 인식하게 되는데 얄궂은 신의 손바닥 위에서 그저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인 나를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지독한 신(신이란 것이 있다면)의 얄궂은 짓거리에 놀아나지 않기위해, 어쩌면 신애처럼 처절한 사투를 벌이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의 원작소설인 이청준의 <벌레이야기>와 비교하면 소설은 '인간적'이라는 것과 그 인간의 나약함에 관해 그리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영화는 소설보다 좀더 풍부하게(소설자체가 매우 짧은 단편이다) 한단계 더 나아간 지점에서 운명에 맞서서지만 너무나 나약한 한 인간의 처절한 사투를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의 개봉에 맞춰 원작소설인 <벌레이야기>도 출간되었는데 개인적으론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게 좀더 풍부한 감상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소설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원래 영화의 제목은 <시크릿 선샤인>이었다. 나중에 <밀양>으로 바뀌었는데 처음엔 영어제목이 더 멋지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한글제목이 왠지 영화랑 더 잘어울리고 곱씹을수록 매력적인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전을 찾아보면 빽빽할 '밀'과 볕 '양'자를 써서 密陽이라고 쓴다. 이 중의적인 제목이 뜻하는 바는 매우 크다. 그녀의 모든 불행이 펼치지는 공간이 바로 밀양이고 햇볕이라는 소재를 보자면 영화속에서 두가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물론 내생각이지만)한가지는 절대 피할수 없는 운명의 절대성이다. 비의 노래도 있지만 인간은 아무리 태양을 피하고 싶어도 그 태양을 피하기란 절대로 쉽지않다. 오히려 햇볕이 없이는 절대 살아갈수 없는게 인간이다. 이러한 햇볕의 특성은 영화속에서 운명의 절대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로 희망이다. 너무나 상반되는 의미지만 영화의 엔딩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엔딩을 보면 신애는 미용실에서 도망치듯 나온 신애가 종찬(송강호)가 들고있는 거울을 보며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이 나온다. 잘린 머리카락들이 바람에 날려 어딘가로 날아가는데 그곳엔 철저한 그늘속에 자그마한 햇볕이 비치고 있다. 카메라는 이 장면을 꽤 오랫동안 보여주는데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은 마지막에 와서야 미약한, 매우 미약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볕은 지독한 운명의 절대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작지만, 매우 따스한 희망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안할수가 없는데 전도연은 그녀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송강호 또한 마찬가지 이고. 이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것 자체가 사족인 듯 싶어 생략한다. 또한 영화를 보면 불법주차를 한 차를 보고 투덜대는 종찬에게 잠깐 나타나 볼멘소리를 하는 선배가 나오는데 그가 바로 우리나라 최고(古)의 영화기자인 배장수 기자이다. 영화를 보고 피식 웃었는데 나중에 크레딧을 확인하니 그가 맞았다. 원래는 영화일을 하고싶었다는 꿈때문에 종종 카메오로 등장하곤 했다는데 내가 그를 발견한건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마음의 지옥"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지독한, 감정의 극단을 보여주는 영화 <밀양>. 분명 애인손을 잡고 룰루랄라 극장으로 쪼르르 달려가 편히 관람을 하거나 흥행대박이 날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너무나 뻔한 상업영화들에 질렸거나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다고 투덜대고, 눈만을 사용하는 영화가 아닌 머리를 쓰고 가슴을 건드릴 영화를 찾고 있다면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 이 영화 <밀양>을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영화를 보고 나오자마자 생각나는 말. 신의 뜻, 혹은 장난을 감내할 만큼 우리 인간은 강하지 못하다. 하지만 이런 시구가 있지 않는가. "누군가 나에게 왜사냐고 묻거든, 그냥 '배시시' 웃지요." 다 그런거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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