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영화를 선택한것은 순전히 송강호 때문이였다.
우아한 세계에서의 그 맛깔스런 연기를 다시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이창동 감독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사람 내가 궁금해 하고 짜증났었던 질문에 해답을 주었다.
난 불교를 조금이나마 공부했던 사람이다.
그렇다고 절에 자주 가진 않는다. 부처님을 신이라고 생각하기 보단 내인생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불교관련 책들을 보면서 내가 배운것은
모든 세상의 슬픔과 기쁨 두려움이 내마음속에 있다는걸 가르쳐준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힘들거나 아플때 부처님을 찾기도 하지만 내말을 안들어주거나
일이 잘 안풀렸을때 그것이 부처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것이 내가 말하고 행동해서 생긴 일들이므로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항상 이런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던나는
일부 기독교에서 보여주는 믿음의 강요나 광신도적인 모습에 왜 저렇게 까지 하는가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지하철이나 주변에서 무조건 믿어라 안믿으면 지옥간다고
왜쳐데는 사람들보면 너무나 화가 나곤했다. 갈수록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고
교회가 늘어가는것을 보면서 좋은점도 있겠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많을꺼란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근원적으로 기독교에 해답은 무엇인지 궁금했었다.
이런 나에게 신애가 하나님을 믿어가는 과정은 많이 불편했고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원수를 면회하는 장면에서 나는 가슴속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꼈다.
아 그래 이거다. 내가 궁금해 하던것 전세계 어떤 영화나 책에서도 보지 못했던 의문이 한순간에 풀렸다.
종교가 없었던 신애는 하느님의 힘을 빌어 원수를 용서 하기 보다는
나는 하느님이란 빽이 있으므로 나는 괜찮다 그러니 하느님의 힘을 빌려 내가 널 용서함으로써
나의 분함을 풀어버리고 싶다. 이런 마음이었을꺼라고 생각한다.
근데 왠걸 나의 빽이라고 생각했던 하느님이 원수의 빽이 되어있었고 이미 용서까지 해버린 상태
신애가 느낀 그 배신감이란 조폭에서 믿고 있던 쫄다구가 뒤에서 자신을 찌르는거보다 몇백배는
더 컸을거라 생각된다.
무조건적으로 믿고 의지 하는것이 그 절대적 믿음이 깨져버렸을때의 인간의 나약함이란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 일인지 영화가 끝나는 그순간까지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글에서 난 기독교가 나쁘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다른사람에게 사랑을 배풀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하는것은 어쩌면 불교보다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종교를 전할땐 현실적인 이해가능한 가르침이나 깨달음 없이 단순한 믿음만 강요한다면 기독교에서 금기시 하는 우상숭배와 다를께 없다고 생각한다.
이창동 감독이 이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것이 진정 무엇이였는지 감독자신이 더 잘알고 있겠지만
그를 통해 내가 얻은것은 현시대에 맞는 설득력있는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과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점에
확실한 해답을 찾고 이영화를 통해 내자신을 다시 한번 살펴 볼수 있었던점.
캐리비안의 해적처럼 정신없이 바다 회오리안에서 배싸움 하는거만 보는것보다 너무나 남는게
많았다는점 여러가지로 칭찬할만함 감독의 영화였던것 같다. 아울러 그누구도 표현하기 힘들었을
감정을 잘 표현해낸 전도연과 송강호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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