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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호 씨가 쓴 글 입니다. 밀양
cropper 2007-05-28 오전 10:58:18 2283   [2]

보험사에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차 한대가 밀양 진입 도로에서 뻗었다는 전화였다.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하늘을 보니 날씨가 참 좋구만.   구름 동동하니 기분도 그럴싸 한데
뻗은 차 주인이 젊은 아가씨 였으면 좋겠구만.

얼굴은 뽀얗고 동글한데 말씨를 들어보니 낭창낭창 한게 영락 없는 서울 아지매구나.
죽은 남편 고향이라는거 하나 갖고 이 밀양 촌구석에 들어앉아 살아볼라고 왔다는게 말이 되나...
그런 사람 나도 많이 보아왔다.  보아하니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게지.   시골사람이라고 내가 호락해 뵈나.
뜬금없이 이 과부 아지매가 '밀양'이 무슨 뜻인줄 아냐고 밀양 토박이인 나한테 물어보네.
'비밀스러울 밀' 에 '햇볕 양' 자라고?   그러고 보니 한자는 뭐.. 기억이 나는데 깊이 생각을 해봤어야지.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여까지 왔는데 참으로 안되었네 그려.
그래도 이것도 인연인데, 부탁도 받은 참에  내가 집 딸린 가게자리도 한번 알아봐주고 해야겠구만.

참 까다로운 아지매다.  이것저것 부탁은 많이 하면서 내가 지를 위해서 고생하는 거는 안중에도 없나.
뭐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왜 그렇게 틱틱거리는지.  깍쟁이 서울 여편네들은 다 저러나.
오픈하는 피아노 학원 이름이 'JUNE' 이라고?   7월이라는 뜻이지 아마.  이름은 좋네.  '쭌 피아노학원'
그래도 수강생이 좀 들고 하니까 먹고 사는데는 큰 지장없을 기라.   이름은 이신애라고 했나? 
이름은 이쁘네. 이신애 씨.

보아하니 남편 죽고 타낸 보험금이 좀 있나본데.  괜찮은 땅을 알아봐달라고 하는 걸 보니.
이 동네 땅부자인 우리 회장님을 어렵사리 소개도 해주고 내가 밥도 사고 했는데 나를 보고 '속물' 이라꼬?
참 나...  우째 내 면전에서 그런 말을 천연덕스럽게 내 뱉는지 참 맹랑한 여편네 일세.
앞집 옷가게 김여사 한테는 인테리어가 후져서 손님이 없는거라고 대 놓고 말했다는데,
이거 원, 이 좁은 동네에서 왕따 당하면 어찌 발 붙히고 살라꼬. 

이게 무신 일이고.. 준이가 시체로 발견됐다니.  이 촌구석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고...
이제 신애씨는 우짜노.. 남편 죽고 애도 죽었으니 어쩌면 좋노..
신애씨가 땅 보러 다니는건 회장님하고 나하고 행님 밖에 모르는데..  도대체 범인은 누굴까.
그러게 신애씨.  이 촌동네에서 돈 있는척은 왜 했능교. 
신애씨는 이제 눈물도 안나는가 보네.  저러다가 실성하는거 아이가.. 

참, 다행이지.  곧 죽을 것 처럼 하고 다녀서 그렇게 불안하게 하더니만 이젠 정말 신애씨 얼굴이 편안해
보이는 걸 보니 하느님이 참 대단한 분이긴 한가보다.   정말 신애씨 말대로 저 햇볕 속에도 하느님이
계시는 건가.  나도 신애씨 따라서 교회를 열심히 나가볼까 보다.  나 장가가라고 우리 엄마 제발 그만 좀
들볶으라고 기도해봐야 겠다.

신애씨가 오늘은 교도소에 그 놈 면회를 가겠다고 해서 교회에 난리가 났다.  목사님도 장로님도 예수님
하신 말씀 중에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 는 것이라고 했다.  신애씨 참 대단하네예.
자기 자식을 죽인 그 놈을 용서해 주러 간다니...  이젠 정말 완전히 예수쟁이 다 됐네.
그런데, 그런 놈도 용서한다고 하면서 왜 나한테는 관심조차 안보이는 거요.  내가 신애씨를 얼마나 걱정하고
매사에 늘 이렇게 도와주려고 애쓰는데. 

근데 저 놈은 감옥에서 뭘 먹였길래 얼굴이 뭐 저렇게 허여멀그래 한게 좋아보인담.
아니, 저 죽일 놈이.  자기도 이미 하느님에게서 구원을 받았다고?  어허. 하느님은 개나 소나 회개하면
받아 주시나 보지?   저 불쌍한 영혼을 용서해야 한답시고 신애씨가 여기까지 왔는데.  이미 하느님을 깨닫고
하느님이 다 용서해 주셨다니 차라리 잘 됐지뭐야.  나는 저 흉악한 놈이 신애씨 깊은 마음도 모르고
지랄할까봐 걱정되서 여기까지 따라온 거 였는데.  
그런데 신애씨는 표정이 왜 저러지?   또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이네.


신애씨가 요즘 교회에서 통 보이질 않네.  나는 뭐 하느님 그렇게 깊이 믿지도 않는데 나 혼자 뻘쭘하니
이게 뭐람.  그나저나 저 사람들은 정말 울고 불고 완전히 하느님 부르고 매달리고 난리네.  정말 하느님이
저 사람들 목소리를 다 들어주실 수 있을까.  그럼 왜 아무것도 모르는 준이는 그렇게 죽도록 내버려
두셨을까.  그런 것도 다 하느님의 큰 뜻이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도 한답시고 역전 앞에서 찬송가 부르고, 만나는 사람마다 하느님 믿어야 한다고 저렇게들 떠들고...
그래도 이젠 교회에 나오면 마음이 편안하다.  그냥 죽치고 앉아서 이것 저것 생각도 좀 하고 기도하는 척
하다보면 뭐가 좀 가라앉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좀 한 숨 놓나 했더니만 신애씨는 또 왜 그런 짓을... 
전날 밤에 찾아와서 별 시덥지 않은 말로 내 속을 다 뒤집어 놓더니만.   그래도 천만다행이지 뭐야. 
나는 신애씨가 완전히 미친 년 되는거 아닌가 했는데.
전에 내려왔던 그 싸가지 없는 서울 동생 놈도 내려 온다고 하니 퇴원수속 밟고 집에 좀 바래다 줘야 겠다.

쯧쯧, 퇴원수속할 때는 멀쩡하니 괜찮아 보였는데 또 저러는 걸 보니 아무래도 아직 다 나은 건 아닌가 보네.
그래도 동네 아줌마들하고 얘기하면서 웃는 걸 보니 내 맘이 한결 편하다.
신애씨 저런 편안한 표정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그래.  뭐 지지고 볶아도 이래 살아야 안되겠나.

신애씨.  하느님 믿고 안믿고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꺼.  그냥 이래 편하게 웃을 수 있으면 되지.
이제 다 잊고 나랑 이렇게 따스한 햇볕 아래서 살면 안되겠능교.  이제 내 맘도 좀 알아주이소 마.
하늘에만 의지하지 말고 우리 이렇게 땅에 발 붙히고 서로 아웅다웅 살아가입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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