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영화를 보면, 스토리가 보입니다. 영화배경도 보이고요. 음악도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영화 '밀양'에서 본 것은 마음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은 스크린을 향해 있었지만, 머리속에서는 '신애'의 마음을 따라가게 되더군요.
물론 주인공의 상황은 제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라 거기에 감정이입했다고 감히 말하기는 힙듭니다.
오히려 송강호가 연기한 '종찬'이 감정이입하기는 쉬웠지요.
종교를 믿지 않았던 신애가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자기 원수의 딸이 고통 받는 것을 보았을 때는 어떤 기분이 들까?
용서한다고 교도소로 찾아갔을 때, 과연 진심이었을까?
이미 용서를 받아,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 소리를 듣고 느끼는 심정은 어떠할까?
신에 대한 배신감으로 신의 뜻과 정반대로 살아갈 때의 마음상태는 어떠했을까?
저에게 이 영화의 관람은 이런 식으로 신애의 생각을 읽어보려고 애쓰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만약, 이 영화의 결말이 '신애'가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에게 귀의하여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으로
끝이 났다면, 적잖히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영화나 소설에서 '나라면 저렇지 못했을거야'하는 초인적인 모습에도 감동을 받게 되곤 합니다만,
'밀양'에서 '신애'처럼 끝내 극복하지 못한 모습에서 더 큰 마음의 울림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은 영화나 소설을 보고 나면, '당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떳떳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부끄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애'의 캐릭터가 성인, 군자의 모습도 아니고,
배신감으로 가득 차 반기독교적인 삶을 계속 수행할 만큼 독한 캐릭터도 아니라면,
'신애'의 캐릭터를 통해 무엇을 보았냐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저는 삶의 의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철학적인 질문보다도 현실적이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교회를 찾아가게 된 것은, 신앙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반기독교적인 삶을 선택한 것 역시 같은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신의 뜻을 거역하기 위해 도둑질, 간음을 거쳐 끝내는 손목을 긋는 선택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삶을 선택합니다.
'신애'는 한번도 죽고 싶었던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고자 하다가 그와 같은 선택으로 몰린 것입니다.
그래서 '신애'는 칼로 손목을 그은 후 거리로 나와 '살려주세요' 라고 말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고, 이 한마디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신애'의 캐릭터가 너무 강해서 '종찬'의 모습이 잘 안보이기도 합니다만
그 덕분에 영화의 무게중심이 잘 잡히게 된 것 같습니다.
만약 '종찬'이 없었다면, '신애'는 너무 위태로워 보여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결말을 보고 그나마 앞으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을 수 있게 한 것도
'신애'옆을 지키는 '종찬'이라는 캐릭터 때문일 것입니다.
오랜만에 영화속에서 인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은 오래 지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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