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해피엔딩
영화의 주요무대인 미술관과 동물원은 영화의 처음이자 끝이다. 공간은 제목 그 자체이기도 하며, 사건이 일어나는 주요 무대이기도 하고, 두 주인공의 취향과 성격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활기차고 본능에 솔직한 동물원의 철수와 정적이고 내향적인 미술관의 춘희. 이들의 기이한 동거가 시작되면서 시나리오 속의 인공과 다혜도, 동물원 수의사와 미술관 안내원으로, 좀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만남을 갖는다. 철수가 춘희의 분신인 미술관 다혜의 등을 떠밀며 좀 더 적극적이길 주문할 때, 춘희는 철수의 분신인 동물원 인공에게 자상하고 세심한 배려를 요구한다. “풍덩 빠져드는 게 아니라, 서서히 물드는 사랑도 있다”는 걸 깨달은 춘희는 동물원을, 귀대를 앞둔 철수는 미술관을 찾아간다. 이렇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침범당하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기로 하고 서로에 대한 좀 더 깊은 탐색을 시작한다는 의미다.
공간에 생기를 더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청결 불감증에 걸린 중성적인 사진사 춘희 역의 심은하는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고 생기 있다. 당시로는 영화에 첫 출연한 이성재도 외강내유의 철수 캐릭터에 꼭 들어맞는 연기를 펼쳤지만, 이들이 다툼 속에서 간혹 문어체의 대사로 인해 연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두 사람이 입을 맞추는 결말도 조금은 난데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유쾌하다. 캐릭터에 대한 진한 애정,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따뜻하다. 탄력 있게 치고받는 대사들, 능청스레 곳곳에 포진한 잔잔한 유머는 이 영화가 가진 또 다른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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