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로 친구와 <밀양>을 보게 되었다. 그 전날, 다른 친구에게 이미 줄거리를 들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아는 유괴당하고 한많은 인생, 그러다 하느님을 영접해설랑 그러다 배신감을 느끼고 정신이 획 돌아서..." 대강 이런 줄거리이다. 스포일러라고 친구를 말할 순 없다. 이미 다른 리뷰에서도 들은 스토리이니까. <밀양>을 보면서 나는 계속 마음이 1인치씩 내려앉더니 결국 영화가 끝날 즈음 내 마음은 이미 심장하고 멀리 떨어져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아마 항문쪽으로 밀렸는지...) 근데 내 친구는 '이런 영화 정말 싫다!"면서 짜증을 부렸다.
난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엔 두 종류의 영화관객이 있구나... 영화를 고대로 보는사람(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 그리고 영화를 책처럼 가슴으로 읽는 사람(보이지 않는 것도 보는 사람).
영화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감독은 예전 영화보다 훨씬 보이지 않는 주제를 들고 나왔다. <인생역정>같은 눈물없인 들어줄 수 없는 줄거리가 다가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메세지를 가슴으로 읽는 이들... 난 그런 사람들과 영화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친구에게 반박도 반론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인생이란 것에 등치기를 당한 사람들. 영어 식으로 하자면 조물주가 갑자기 내 등에 칼을 박았다. 그 뒤로 칼은 빼지지 않아서 계속 날 아프게 한다. 그런 걸 당해보지 않은 이는 영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상실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는 <슈렉3>처럼 명랑하기만 하고 갈등도 발랄하기만 하다. 하지만 상실을 경험한(여러번) 나로서는 밀양의 무지한 햇빛에 공감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주께 매달렸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기독교가 안맞아 천주교로 돌아갔다. 기독교가 열렬한 몸짓이라면 천주교는 그냥 무릎끎음이다. 무엇을 구하든 성당에 들어서면 자신은 한없이 낮아지고 운명에 순응하게 된다. 기독교 인들처럼 열에 들뜨지도 않는다. 기독교가 주님과의 연애라면 천주교는 마치 큰 어른을 대하는 자세같다. 하여튼 선애가 가슴을 쥐어뜯었을 때 나도 속으로 가슴을 쥐어뜯었고 선애가 교회에서 탁자를 쳤을 때 나도 마음속으로 탁자를 쳤고 갑자기 준이 사라진 빈 공간의 집에서 억지로 밥숟가락을 뜰 때 나도 그 허망함 고요함 속에서 꿀꺽 식도로 음식을 보내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햇빛. 그리고 인간의 순응. 선애가 붙잡아야 할 숨자락인 종찬.... 정말 많은 걸 느끼게 해주고 숙연하게 해주고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밀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