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작품을 다시 만나기까지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오아시스를 거치면서 어느 하나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지 않은 작품이 없을 정도로 이감독의 영화적 감수성과 시대를 바라보는 철학적 깊이는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네번째 그의 필로그라피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컸으리라. 전편의 우수성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한 집착이 힘이 잔뜩 들어간 기형적 영화로 탄생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작품을 감상하기전 항상 스포일러에 주의하면서 리뷰를 훑어보는 습관 때문에 몇몇 사이트를 돌며 탐색했는데 예상대로 영화전문가들은 극찬한데 반해 네티즌들의 평은 차갑기만 했다. 깐느영화제에서도 공식 출품작으로 선정되어 시사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아내와 함께 140분짜리 짦지 않은 영화를 관람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영화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수작이다. 초록물고기보다 나았던 박하사탕, 박하사탕보다 나았던 오아시스에 이어 오아시스보다 나은 밀양이 탄생했다.
영화는 스토리의 다음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지 못하게 하면서 느림의 철학에 재미라는 소스를 입힌다. 혹 누구는 기독교에 관한 얘기가 나오므로 종교영화라기도 하고 유괴를 소재로 했으니까 유괴영화라고 단정하겠지만 이 영화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는 듯 하다.
인간이 우선인가 하나님이 우선인가. 인간이 인간을 용서하려 했지만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용서권을 앗아간다면... 잃을 것이 더 이상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 여자가 마지막으로 은혜를 베풀 대상은 이미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존재로부터 용서를 받고 은혜가 충만해 있다.
여자는 하나님을 향해 외친다. 마지막 남은 것까지 가로채 가시는 당신의 얼굴에 대고 외친다. “자 보이시죠”. (스포일러로 인해 장면소개는 생략)
영화라는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깊이(옅은 나 자신의 지식체계에서만큼은)를 느끼는 순간이다.
그 여자를 어느 정도 간극을 두고 배회하는 한 남자가 있다. 어쩌면 이 여자를 구원할 진정한 구세주일지도 모를 이 남자는 영화의 끝 부분에서 거울로 묘사된 이 여자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다.
그리고 좁디 좁은 앞 마당에 내리쬐는 밀양(secret sunshine)을 받으며 잔바람에 살랑이고 있는 잡초가 클로즈업된다. 흔들리지만 꺾이지는 않은채 ... 이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