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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iju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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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1 오전 11:4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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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이야기는 지금까지의 한국 애니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우선 화면에 가득 차 있는 우리것들이 너무나 친밀했죠. TV에서 외국것, 특히 일본의 애니를 볼 때 어설프게 지우고 써넣은 어색한 우리말과 달리 화면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의 것들은 너무 친숙했습니다. 삼호수산, 동성약국, 신성은행 그리고 무궁화호와 타이탄 트럭 등...일상적인 우리것들이 화면속에 이렇게 예쁘게 그려질수 있다는 사실에 전 너무 기뻤습니다.
또 기존의 이야기 전개에만 급급한 작품들과는 달리 국제 영화제에서 여러차례 능력을 인정받은 이성강감독의 연출과 아름다운 화면은 한국 애니에서 볼 수 없었던 여유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감독의 연출력은 차분한 작품의 전개, 그리고 부드러운 색조의 화면과 어울려 편안함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특히 결말부의 특수효과는 세심하게 신경쓴 느낌이 역력할 정도로 성공적이었고 기타 판타지나 SF장르에서의 가능성도 충분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장항선, 나문희등의 성우진입니다. 비록 이병헌이나 배종옥, 안성기들의 인기 연기자들이 있었지만 영화의 화면에 가장 잘 어울리던 성우는 장항선과 나문희 두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애니메이션 성우의 자질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기가 아니라 충분한 연기력이라는 것을 증명한 샘입니다. 외국 애니메이션도 유명 영화배우를 많이 쓰는데 이러한 배우들 대부분이 발음이 정확하고 탄탄한 연기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결국 애니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그 배우들의 유명세와 더불어 탄탄한 연기라는 이야기입니다.
또 음악을 빼 놓을 수 없네요. 유희열, 성시경등의 뮤지션들은 단지 이름뿐 아니라 극 분위기에 너무 잘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 내었고 효과음악도 그리고 배경음악도 참 좋았습니다.
저는 한국 애니에 관심이 많은 터라 애착을 가지고 보아서인지 마리이야기는 정말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드러운 영상과 차분한 스토리는 마치 TV문학관을 보는 듯 했고 감동도 잔잔하게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역시 TV문학관은 시청률이 떨어지죠. 좋은 주제를 택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자칫 지루하기도 하니까요.
시사회가 끝나고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친구인 듯한 사람에게 전화를 하더군요. 그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애니가 다 그렇지....화면은 그적저럭 괜찮은데 스토리가....."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글도 극명하게 대비가 되더군요. 스토리를 지적하면서 부족하다고 하는 글과 대단한 작품이라고 극찬하는 글. 마리이야기를 극찬하는 글은 대부분 한국 애니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기존의 수많은 허접 극장판들이 실망을 안겨주는 가운데서 이만한 작품이 나왔다는게 참 감동적일 테니까요...(저도 그랬습니다.). 또 부족하다고 여기시는 분들은 일반 관객분들이나 일본애니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랑 같이 갔던 사람들도 스토리가 지루했고, 마리의 세상이 생각보다 그렇게 환상적이지 않아서 조금은 실망했다고 얘기하데요. 특히 이말이 가장 가슴에 남습니다. "오빠말하길 마리이야기가 잘만들어졌다고 해서 기대했었는데, 딱 한국애니에 기대한 그 만큼이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당연히 스토리일것입니다. 이미 재미있는 작품들을 얼마든지 접한 관객들에게 지루한 스토리는 정말 적응하기 어렵죠. 그림이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재미가 없는 작품은 관객에게 외면당합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에서나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하지만 마리이야기의 지루함은 절대 스토리를 미숙하게 진행해서가 아닙니다.
마리이야기는 감독이 처음 생각해내고 작가가 2~3명정도 참가한걸로 아는데 이만한 인력이 참가했다면 그것은 미숙해서 스토리를 지루하게 끌고 간게 아니라 그들이 주제에 알맞도록 작품을 차분하게 끌고가려고 했다는 것이지요. 재미를 추구한다면 얼마든지 그럴수 있습니다. 한국애니가 썰렁한 개그로 일관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 MBC에서 방송되고 있는 '해상왕 장보고'라는 작품을 보시면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만화광인 제 동생이 "태어나서 우리나라 만화를 보고 3번씩이나 포복절도 해보기는 처음"이라고 할만큼 유머감각이 뛰어납니다. 즉 지금의 한국 애니는 재미있게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이야기는 재미를 줄이더라도 주제에 어울리는 차분한 스토리전개를 택한 것이지요.
제가 마리이야기를 보러 갔을 때 아이들을 대동하고 오신 부모님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리이야기는 아이들이 보면 재미없다고 칭얼거릴것이 뻔한 작품입니다. 그렇다고 같이 오신 부모님들은 어떠실까요? 작품을 차분하게 즐기기 보다는 칭얼대는 아이들에게 부대끼며 '이것도 만화야?"하는 생각을 갖게 되겠죠. 그리고 그분들의 한국 애니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기회도 날아가는 것이죠.
지금까지 마리이야기를 너무 까댔나요? 하지만 잘된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애니가 충분한 재미를 가지고 일단 관객에게 호응을 이끌어 낸 다음에 이러한 작품이 나왔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관객들은 최근에 흥행한 여러 영화들에서 보듯이 재미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죠. 만약 애니도 비슷하게 흥행성을 담보한 재미나는 영화들이 많이 나온 뒤에 나왔다면 '새로운 시도', '철학적 메시지'등의 찬사와 더불어 더 많은 시선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우리 관객들에게는 에니메이션, 특히 한국 애니메이션이라는 개념자체가 생소합니다. 마리이야기는 작품의 완성도와 주제면에서 너무나 시대를 앞서간 작품입니다. 지금은 스토리가 문제가 되어 미흡하다는 평을 들어도 앞으로 발전할 한국 애니의 역사속에서 마리이야기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발전 방향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을것이며 우리 후대들은 이 작품을 지금의 우리와는 다르게 평가할 것입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외면을 나쁘게 만 볼수 없습니다. 마리이야기의 완성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은 전보다 분명 한단계 올라섰습니다. 이정도로 예술적인 애니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재미있는 애니를 만들 수 있어야 하겠죠. 그리고 소재는 일본이나 미국이 다 우려먹은 판타지니 공상과학이니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분명히 걔네들은 못하지만 우리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요.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이 아무리 배경묘사가 세밀하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네들의 것일 뿐이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의 것들은 표현하지 못하니까요.
관객들이 우리 애니는 싫어한다구요? 애초에 한국 창작 애니를 버리고 싸다고 일본것만 수입한 것이 누구며 창작은 위험하니까 하청만 한 것은 누구며, 지금도 일본꺼 수입할려구 혈안이 돼서 서로 경쟁하는 것은 누군가요? 결국 자기가 자초한일이죠. 그러니 관객을 원망하기 보다는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겠죠.
마리이야기는 스토리가 약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많을 것들을 이야기하는 애니입니다. 이만한 것도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겨우 이정도야 하는 사람이 있는것도 당연한 것이죠. 하지만 전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솔직히 이정도의 수준에 와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힙냅시다. 한국애니. 할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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