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르완다>평론.
영화 ‘호텔 르완다’는 1994년의 르완다 내전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폴 루세사바르기나’라는 인물이 가족과, 다수의 이웃주민들을 성공적으로 구함으로써 전쟁상황을 극복해내는, 성공적이고 존경스런 실화를 담아냄으로써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들은 이 영화를 보고 실제 르완다 전쟁의 참혹함을 느낄 수 있었고 단지 핏줄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죽음으로 전쟁에 희생된 무수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폴 이라는 영웅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감동을 주었고 그리고 그 이야기가 실화라는 데에서 그런 감동이 우리의 마음속에 한 발짝 더 가까이 와 닿을 수 있었다. 감동 뿐 만이 아니라 이 영화는 나름대로 교훈도 전해주고 있다. 바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무조건 적인 사랑’이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조건이 없이 주는 사랑’이다. 그것은, 후투족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은 아랑곳 않고 투치족인 가족들과 이웃주민들을 챙기는 폴과,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위험천만한 전쟁터에서 끝까지 고아들과 다친 환자들을 챙겨주는 적십자사 등을 통해 잘 알 수가 있다. 핏줄이나 피부색,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 들 중에서 그 무엇도 ‘무조건 적인 사랑’을 이겨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무조건 적인 사랑’이 모든 것들을 이기고 정상에 우뚝 선다는 것이다. 폴이 온갖 역경을 다 이겨내고 마침내 가족과 마을 주민들을 구해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감동과 교훈을 동시에 주는 이 훌륭한 영화에도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것은 르완다 내전에 관한, 보다 객관적인 사실들과 역사를 알려주는 것이 조금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영화 제목답게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있는 호텔을 주요 무대로 해서 내용을 전개한다. 호텔은 처음엔 별 네 개 짜리 벨기에 호화호텔이었으나 갈수록 그것은 가엾은 투치족들을 위한 피난처로 탈바꿈 한다. 그러면서 투치족들과 폴과 함께 동고동락을 함께한다. 호텔과 그들은 함께 지내던 백인들을 떠나보냈고, 후투족으로부터의 공격도 받았다. 아마 이 영화에서, 그리고 1994년 그 당시 르완다의 키갈리에 있던 투치족들에게 이 호텔이 없었다면 영화도, 투치족들도,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존경받고 있는 폴 이란 인물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호텔은 영화에게도, 투치족과 폴에게도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아쉽다. 제목 부터가 ‘호텔 르완다’이므로 호텔이 그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호텔 내부의 상황만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전쟁 당시의 전체적 분위기가 느껴진다기 보다는 주인공 폴의 행동과 호텔안의 분위기가 더 주가 되어 느껴 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다 객관적인 사회적 배경과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고 폴과 가엾은 투치족들의 눈으로만 그 상황을 보게 되고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마 대개 후투는 잔인하고 투치는 불쌍하다는 식의 느낌을 받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세심하게 따져 본다면, 후투가 좀 지나치기는 했지만 일단 투치족에게 그렇게 까지 적개심을 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애초에 르완다라는 땅에 투치족은 없었다. 후투족만이 살고 있다가 벨기에에 의해 점령당해 식민지가 되었고 그 후 소수의 투치족을이 남하하였다. 그런데 벨기에가 소수의 투치족을 권력의 자리에 앉혀놓음으로써 그들을 통해서 후투족을 지배하려 하였고, 그럼으로써 후투족이 자연스레 소수임에도 다수의 후투족을 지배하는 투치족에대한 적개심을 품게 된 것이다. 후투족이 대학살을 저질렀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그들이 의사표현을 하는 과정이 너무 과격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순 없겠지만, 그들 나름대로 마음 깊숙이 한이 많다는 점에서 우리들도 그들을 이해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배경을 알지 못하고 ‘호텔 르완다’라는 영화를 보게 된다면 르완다 역사를 잘못 알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전쟁의 잔혹함과 아프리카에 대해 좀더 깊숙이 알리고 ‘폴’ 이라는 인물의 공로를 전달한 것은 충분히 훌륭하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으나, 전쟁의 상황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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