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마지막 장면. 대규모 개발 계획을 막은 에반과 그의 가족이 나들이를 나왔다. 행복한 순간. 마무리를 동작 한 번 하시려고 벼르던 신(모건 프리먼)이 급기야 저만치 나타나 에반을 부르신다. 그리고 기억에 남을 한 마디를 흙바닥에 써갈기시는데...
"ARK"
Act of Random Kindness의 준말이라신다. 얘기인즉슨, '임의의 친절한 행동'이 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인데 미국의 모 교수가 주창한 운동 RAK(random acts of kindness)의 철자 순서를 바꾼 것. 동감이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테레사 수녀의 시 "한 번에 한 사람"도 대중이 아닌 개인을 구원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을 구하는 것은 사람이요. 세상을 구성하는 것은 인간이니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 그리고 한 사람의 작은 선행이 세상을 바꾸리라는 것. 맞는 말이긴 하다. 근데 테레사 수녀의 시가 주는 울림과는 영 느낌이 다른데 이거 왜 이래?
미국 퀴즈프로그램 중에 '운명의 수레바퀴'란 게 있다. 철자를 하나씩 맞춰가며 정답(문장 혹은 구)을 맞추는 아주 단순한 게임이다. 단서는 없다. 그냥 스물 여섯 개 알파벳 중에서 찍는 거다. 근데 신이라는 이 분이 하는 행동 그리고 이 영화, '운명의 수레바퀴'를 닮았다. 아무 단서도 없이 거대한 방주를 만들 재료들을 선물하고 소심한 물장난 치시더니 대뜸 ARK가 정답이란다. 또 주인공인 에반옹께서는 기어이 그걸 찍어내신다. 아, 방주(ARK)가 단서였던 게야? 그럼 ARK라는 교훈을 던져주기 위해서 ARK를 만들게 했다는 거야? 아...이런 참을 수 없는 영화의 가벼움이여...
개인의 작은 친절이 세상을 바꾼다는 교훈을 (안 그래도 되는데) 굳이 던져 주려 하셨다면 적어도 그게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좀 알려줘야지. 영화 내내 보여준 것이라곤 언론인에서 하원의원이 된 에반 같은 엄청난 인물이 개과천선(신을 믿게 되었으므로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면...)해서 법안을 폐기했다는 건데. 그러면 정치인, 언론인들이 각성하면 된다는 건지. 아니면 방주를 짓는 것 같은 이벤트를 좀 하라는 건지. 결론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다가 기분전환이나 하려고 극장에 찾은 '만국의 노동자'들을 말도 안되는 언어로 가르치려 드는 건가.
'신이 오늘은 물 장난을 좀 쳤다만 사람은 하나도 안 죽었으니 너는 개인의 친절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알라...'
대체 브루스가 신의 전지전능에 대해 고민했던 그 지성과 감성은 다 어디로 팽개친거야...그리고 머리없이 가슴없이 결국 쩐만 노리겠다는 그런 류의 교훈이라면 당장 집어치워 주었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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