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한국형 스릴러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등장한 이 영화는 김한민 감독의 이름을 머리에 새기는 영화로서
부족함이 없다. 1986년도를 배경으로 한 극락도라는 섬을 무대로
한 17명의 사람이 모두 실종되는 사건을 픽션으로 내세우며 미스테리
스릴러의 느낌으로 모습을 보이는 이 영화는 정신적 트라우마와 패닉
상태로 연출되는 인간들의 모습과 분열속에 일어나는 참사를 다루고
있다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만들게 되는 원인을 제공
하는 범인은 항상 엘리트형의 인간이라는 것을 간과하지 않게 만드
는 영화다. 일단 바깥세상에서 흘러들어온 보건소 소장 제우성(
박해일)과 학교선생인 장귀남(박솔미)은 범인으로서 지목하기에
가장 좋은 먹잇감이 되고 그 화살표를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범인을
예측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결말을 맞추어 보는 것도 미스테리 스릴러의
재미로서 빼놓을수 없는 메리트인데 이 영화도 그런 틀을 넌지시
깔아주고 있다. 극락도의 이장(최주봉)을 비롯해 숨은 그림찾기의
달인인 학교 소사 춘배(성지루)등 모든 섬의 사람들은 일단 순박함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김노인(김인문)의 팔순잔치가 벌어진 다음날,
두명의 송전기사의 시체가 발견되고 극락도는 유래없는 패닉상태에
빠진다. 범인은 섬안에 있는 누군가 이고 유력한 용의자로 함께
화투판에 있던 덕수(권명환)가 지목되지만 그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범인은 오리무중에 빠진다.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춘배는 하나의 메시지를 받는다. '이장이 들여놓지 말아야 할것을
들여놓았다' 라는 메시지는 춘배의 정신을 점점 미쳐가게 하고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신하며 패가 갈린다. 그리고
사고로 인해 한명, 한명 목숨을 잃어가고 춘배는 예전에 열녀를
가두어 두었다가 굶어죽은 열녀귀신의 환영까지 보게 된다.
유일한 연락수단인 무전기의 고장과 메시지로 인해 이장은 의심을
받게 되고 이장의 아들 상구(박원상)가 꺼내놓은 총으로 혼란이
일어나면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모든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듯한 제우성과 장귀남, 그리고 춘배만이
남은 상황에서 극락도는 더이상 극락도라 불릴수 없는 죽음의
섬으로 변해간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귀신이나 다른
호러적인 소재를 이용한 것이 아닌 인간의 정신상태에 작용을
하는 약품에 의한 결과물이란 사실이다. 제우성이 임상실험을
하듯이 마을사람들에게 남모르게 자연스럽게 복용시킨 결과가
끔찍한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결국 모두 죽게되는 참혹한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유일한 생존자인 장귀남을 밖으로 떠나
보내면서 제우성이 느낀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몸에 마지막
으로 실험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의 광기와 욕망의 남용이
얼마나 처참한 나락으로 빠트리는지를 보여준다. 열녀귀신에
대한 소문과 다른 단서들로 범인을 헷갈리게 하는 미궁으로
빠트리려는 감독의 의도적인 전개가 돋보이지만 한가지 생각
못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미 범인의 윤곽이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극락도로 흘러들어온 사람은 제우성
과 장귀남뿐이다. 그들사이에 섬의 사람들이 모르는 모종의 관계
가 있고, 그것은 범인으로서 자연스럽게 의심하고 확신하게 만드는
전개를 보여준다. 함축한다면 인간의 그릇된 욕망으로 미쳐가는 사람들의
광기에 휩싸인 참극이라고 해야 될것같다. 중요한 것은 전에 보여주던
한국형 스릴러영화로서는 신선한 시도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배우들의
파워가 아닌 스토리로서 끌리게 만드는 영화, 그것이 극락도 살인사건
이 보여준 한국 스릴러 영화의 새 전형일 것이다. 김대승감독의 <혈의 누>
가 보여주었던 전형적인 한국형 정서적 틀에 기반한 호러가 아닌 새롭게
비상하려는 다른 움직임을 보여준 영화가 아닌가 하는 여운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