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한번쯤 어린 시절에 할머니나 어른들로부터 옛날이야기 듣는 것을 즐기곤 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야기 문화’를 즐기고, 또 흥미로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시끌벅적 떠들어 대기보다는 차분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이야기 하는 스토리의 영화들을 통해 즐거움을 더 느끼곤 하기도 한다. 영화 [기담]은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기이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 관객들이 가진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자극하는 영화이다. 유난히도 잔인하고, 시각적으로 드러내 노는 공포영화가 많았던 올해에 조금은 다른 방식과 매력으로써 관객들을 찾아 온 [기담]은 우리나라 공포영화의 색다른 시도와 이미지로써 다가올 것이다.
시대적, 공간적 설정이 주는 호기심과 미스테리한 공포!!
1942년 경성, 일제 치하의 우리나라 경성에 세워진 서양식 병원인 ‘안생병원’은 일본인 원장과 조선인 의사, 간호사, 그리고 실습생들이 함께 있는 곳이다. 어느 날 부터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자살한 일본인 여고생과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소녀가 나란히 병원에 들어오게 된다. 영화 [기담]은 공포를 주기 위한 배경과 설정들이 매우 구미를 자극한다. 암울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밀스러움이 풍기는 일제시대라는 배경과 요즘 우리나라 공포영화의 트렌드라 해도 과언이 아닌 병원이라는 장소에서의 사건, 그리고 의문의 사고들과 비밀을 간직한 인물들까지 [기담]은 시작부터 관객들을 호기심과 은근하게 밀려오는 미스테리한 공포감에 빠져들도록 해준다. 무엇보다 현대적이기에 딱딱하고 비현실적으로만 다가오는 여느 공포영화들과 달리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시절의 ‘한번쯤 일어 났음직한’ 내용의 기이한 이야기를 통한 공포를 주고 있기에 그야말로 ‘이야기’가 주는 궁금증을 극대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 [기담]은 공포영화로서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신선함마저 놓치지 않는 시대적, 공간적 설정들과 그 속의 사건들이 어우러져 제목 그대로 한번쯤 확인해 보고, 들어 보고픈 기이한 이야기들로써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여 주고 있는 것이다. 1942년이라는 시대적 설정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공포영화의 배경으로 설정되었다는 점과 언제나 비밀을 간직한 듯하면서 차가움과 아픔, 슬픔과 눈물이 공존하는 병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전달하는 이야기들은 날카롭고 이성적이기만 한 공포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빠져들게 만드는 서로 다른 세가지 기이한 이야기와 개성있는 구성과 연출!!
영화는 병원에서 일어난 세가지의 기이하고 섬뜩한 이야기를 각각 들려주며, 서로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자살한 여고생 시체와 병원의 의대 실습생인 정남에 얽힌 이야기,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고 홀로 실려 온 소녀와 어린 시절의 상처로 한쪽 다리를 저는 의사 이수인이 겪은 이야기, 그리고 안생병원의 최고 엘리트 의사부부이자, 신사와 신여성으로 대표되는 동원과 인영의 이야기를 각각 들려주며 이들 사이에 일어난 이해할 수 없고, 소름끼치는 일들을 교차시키며 전개해 나간다. 영화 [기담]에서 들려주는 세가지의 이야기들은 각각 서로 다른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지만 공통된 바탕에는 ‘사랑’이 깔려 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을 죽음과 결부시킬 때 얼마나 섬뜩하게 바뀔 수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누군가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드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일은 없을 것이다. 영화 [기담]은 그런 관객들의 심리를 적절하게 자극하면서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세가지 이야기로써 시종일관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들과 서로 다른 개성의 분위기와 화면들로 꾸며진 흥미로운 세가지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그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영화 [기담]이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공포이며, 잔잔하게 스며들면서 강하게 날려주는 공포영화의 묘미라고 하겠다.
여느 공포영화와 차별되는 세련되고 고풍스러우며 감성적인 영상미와 음악의 매력!!
무엇보다 영화 [기담]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공포영화가 가지는 차갑고, 어두운 이미지와 더불어 감각적이면서도 세련된 이미지까지 보여주는 화면들과 때로는 날카롭고 무섭지만 때로는 서정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주는 음악에 있다. 1942년의 서양식 병원이라는 설정이 말해주듯 한창 서양의 신(新)문화에 젖어가던 당시의 모습을 재연해낸 병원 세트장과 인물들의 의상이나 소품은 영화의 시대적 세련미를 더해 주고, 보는 즐거움까지 안겨준다. 또한 세가지 이야기의 공통테마인 ‘사랑’이라는 주제가 말해주듯 칙칙하고 어둡기만만 한 공포영화 속에서 각각의 이야기마다 환하고 밝은 분위기의 서정적인 화면까지 담고 있다는 점은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하겠다. 벚꽃 날리는 화면과 하얀 눈 밭, 그리고 모래사장과 해변 등 세가지 이야기의 개성을 드러내 주는 각각의 서정적인 화면들은 감성적인 공포감 마저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영화의 시작과 함께 관객들의 공포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흑백의 무성화면과 시종일관 귀를 자극하는 날카로운 음악은 전형적인 공포감을 전달하며, 각각의 이야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미스테리컬 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느낌의 음악은 영화의 공포감을 더해 주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감성적인 분위기까지 전달하는 데 크게 한 몫을 해준다. 영화 [기담]은 단순히 어둡고 흉측한 화면과 찢어지는 듯한 소음의 음악들로만 공포를 전달하는 여느 공포영화들과는 달리 세련되고 고풍스러운 이미지의 화면과 음악으로써 오히려 관객들을 뼈 속까지 소름끼치도록 만들 줄 아는 고급스럽고 매력적인 공포영화이다.
이야기 속 다양한 캐릭터가 주는 즐거움과 여러 배우들의 호연!!
어딘지 모르게 비밀을 간직한 듯한 표정으로 나란하게 사진을 찍은 포스터가 인상적인 영화 [기담]은 여러 캐릭터들을 통한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즐거움 역시 가지고 있다. 일본인 병원원장, 여러 의사들과 의대 실습생 등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캐릭터들과 죽은 여고생 시체와 교통사고 후 가족을 잃고 귀신을 보는 소녀 등 각각의 사연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까지 [기담] 속에는 사연 하나하나에 다양하고 개성있는 성격의 캐릭터들로써 그 재미를 더해 준다. 각각의 캐릭터가 서로 얽히면서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한 캐릭터에만 비중을 두기 보다는 고른 비중과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캐릭터들의 성격 전달로써 영화 속 스토리를 매끄럽게 이어 나가는 것이다. 더군다나 포스터에서도 알 수 있듯 김태우, 김보경, 이동규, 진구, 고주연 등의 개성있는 연기자들의 다양한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또다른 즐거움이다. 우선 눈에 띄는 공포연기로 한가지 이야기를 완벽한 공포스토리로 만들어 준 아역배우 고주연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었지만 정작 아무런 외상없이 병원으로 실려와 귀신까지 보는 소녀를 연기한 고주연은 이미 [청연]과 [구미호 가족]등으로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아역배우이다. 그리고 세련된 신여성과 신사로 분해 안생병원 최고의 엘리트 의사로써 안타까운 사랑과 소름끼치는 비밀을 보여주는 김태우와 김보경 역시 냉철하면서도 이성적인 의사 캐릭터를 맛깔나게 보여준다. 또한 [달콤한 인생], [비열한 거리] 등에서 보여준 차갑고 이기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순진한 의대 실습생 캐릭터를 연기한 진구와 [와일드 카드]나 [스승의 은혜]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이미지를 벗어나 포근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의사를 연기한 이동규 역시 이미지 변시으로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또한 [태풍]과 [두번째 사랑]으로 관객들에게도 낯익은 데이빗 맥기니스와 [숨], [해안선]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지아의 카메오 출연 역시 인상적이다.
올해에는 다양한 우리나라 공포영화들이 관객들에게 각기 다른 개성의 공포를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몇 편의 영화들이 또다른 매력의 공포로써 관객들을 찾아 올 예정이다. 그런 와중에 관객들에게 공개된 [기담]은 공포영화가 가지는 고정된 이미지와 분위기를 탈피하고 매우 독특하고 개성있는 분위기의 공포로써 관객들을 자극해 준다. 또한 시종일관 눈과 귀를 불편하게 만드는 공포 보다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끌어 나가면서 잔잔하게 밀려오는 감성으로 공포감을 심어 주고, 예상치 못한 자극적인 화면으로써 마지막 한방을 시원하게 날려주는 매력적인 공포영화이다. ‘섬뜩한 러브스토리’라는 홍보문구처럼 ‘사랑’이라는 테마로써 어떻게 고풍스럽고 세련된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공포를 전달할지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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