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을 보고 한국 공포 영화가 뻔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매번 식상한 반전과 함께 깜짝 놀라게 하는 몇몇 영화를 보고 실망한 세계 최고의 눈높이(?)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예전의 <식스센스><아이덴티티>처럼 참신하면서도 강력한 한 방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흥행한 <장화,홍련><여고괴담><폰> 등을 봐도 한 방이 있었던 작품들이다. <기담>도 마지막에 그 앞에 툭툭 던져놓았던 궁금증을 다 잡아서 해소하려다 보니 뒤쪽에 내용이 압축됐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서정적이고 조용한 분위기를 음악으로 잘 이끌어내면서 귀신의 등장에 깜짝 놀랄 뿐만 아니라 귀신의 존재에 대해 의미 있는 스토리와 안생병원에서 일어난 의문의 3가지 이야기를 이야기함으로써 옴니버스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까지 얻을 수 있는 복합적인 공포 영화로 잘 만들었다.
특이한 전개방식과 각 이야기에서 궁금증을 유발!!
옴니버스영화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몇 개의 독립된 짧은 이야기를 주제나 인물로 연관성을 가지도록 하여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든 영화를 의미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내용 자체가 산만하다고 느낄 수 있다. 물론 짧은 이야기 나열에서 느낄 수 있는 산만함이겠지만, 그 영화들이 연관성이 있다면 그 밀접한 연결이 영화를 보는데 더욱 재미를 더한다. <기담>은 의대실습생 정남의 이야기,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은 10살 ‘아사코’와 의사선생님 이야기, 부부의사 이야기. 총 3개의 이야기가 순서대로 전개된다. 각 사건은 죽음과 사랑이 관련된 이야기라는 공통점 외에도 비슷한 때에 안생병원에 모여드는 것, 비밀스런 사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같고, 영화는 그런 사람들이 안생병원에서 각각 섬뜩한 사건을 맞닥뜨리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각 인물들의 사건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어 여러 인물들 사이에서 동시에 궁금증을 느끼게 한다. 전체적으로는 액자구성이지만, 그 전개가 <메멘토>처럼 과거의 일정 기간을 보여주고, 예전 과거부터 지금 과거까지 보여주는 식의 전개로 진행되어 거꾸로 가는 시간에 대해 불편함을 가질 수도 있다. 현재는 1979년 10월, 37년 전 1942년 의문의 사고로 돌연 폐쇄하기 전 마지막 나흘간의 일이 뒤에서부터 거꾸로 진행된다.
옴니버스식 전개와 각 이야기의 강한 개성!!
첫 번째는 아름다운 여고생 시체와 의대실습생 정남(진구)의 이야기. 정남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고아로써 원장님의 딸과 정략결혼이 예정된 상태. 시체실에 난도질한 조선인 탈영병의 시체가 들어오고 그 시체를 인영과 정남이 검시하고 있는 때에 양귀비를 닮은 아름다운 여고생의 시체가 병원에 들어온다. 여기서 이 여고생이 누구인지, 인영의 남편, 갑자기 의학생들의 귀신에 대한 질문, 여고생 시체에서의 반지, 병원에 갑작스런 스님의 등장과 영안실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이유 등 각종 궁금증만 남겨둔 채, 괘종시계와 목탁에서 오는 부조합으로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여기서 의아함을 다 풀지 못한 채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틀 전, 두 번째는 귀신을 보는 소녀 이야기. 교통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10살짜리 소녀가 병원에서 죽은 사람들이 계속 꿈속에 나타나 몸부림친다. 피 흘리며 소녀의 머리를 빗질하는 어머니, 피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쳐다보는 아저씨 등이 꿈에 보이면서 그 무서움에 소녀는 몸이 굳어간다.
3일 전, 세 번째는 엘리트 부부 이야기. 그러나 그 부인에게는 그림자가 없다? 남편은 부인에게 그림자가 없는 것을 알고 영혼이나마 사랑을 약속한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만 볼 수 있어야 정상이지만, 학생과 경찰 모두 그들 부부를 알아보는 것에 혹시라는 의심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영화는 이 모든 궁금증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이 때부터 박차를 가한다.
더욱 더 소름이 끼치는 장면들!!
각 이야기마다 무서운 장면들이 압권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시체 보관실에서 시신이 갑자기 기어나와 정남을 끌고 가는 장면에서 영화관은 고음의 함성소리가 여지없이 터졌고, 소녀이야기에서의 귀신은 그 피범벅인 분장도 그렇지만, 클로즈업한 카메라가 장시간 귀신을 비추고 있고, ‘아사코’의 고함소리와 귀신의 표정이 겹치면서 더욱 공포분위기를 조장한다. 특히 ‘아사코’가 거울을 통해 자기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죽은 어머니가 보이는 장면은 그 장면을 생각함과 동시에 머리카락이 쭈삣쭈삣 뻗치는 소름을 느낄 정도로 인상깊었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피범벅을 한 귀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영과 동원의 얼굴이 서로 겹쳐지면서 자신도 통제 못하는 행동을 알아채고, 최후의 방법을 선택할 때 또한 소름이 끼치긴 매한가지였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 도대체 진실이 뭐야!!
이제는 매번 공포 영화에 반전이 나오는 게 일반화된 듯 하다. 그러나 <기담>은 거듭 반전으로 도대체 뭐가 진실인지, 어디까지가 맞는 얘기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재주도 있다. 점점 과거로 가는 특이한 방식에서부터 초반에 여러 인물들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끝까지 그 궁금증을 끌고 가서 영화의 몰입을 심화시킨다. 게다가 마지막에 정신없이 결론지으려는 것이 보였지만, 그 과정이 산만하지 않고 과거 순서대로 일목정연하게 정리함으로써 어이없거나 황당하게 만들진 않는다. 복잡한 걸 싫어하지 않는 스타일만 맞는다면 영화는 충분히 즐길 수 있고, 마지막까지 영화와 씨름하면서 진실을 파헤치는 것도 공포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아닐까? 영화관에 나오면서 관객들이 서로의 의견을 물어보고, 뭐가 실제인지를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영화의 묘미를 이런 데에서 찾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올해 5번째 공포영화로 개봉한 <기담>!! 평으로는 거의 1~2위를 다툴 수 있을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가 공포적인 요소와 잘 조화됐고, 거듭되는 반전의 묘미에 빠져들게 만들면서 귀신이 등장하는 곳에서도 소름끼치게 만들어 기억 속에 장면이 맴도는 영화다. 특히 거듭 반전 부분에서는 아! 감탄사가 터지고, 귀신에 클로즈업해서 카메라가 몇 초 머무는 장면은 뇌리에 박힐만큼 강렬하다. 결국 자살로 끝나는 결말에서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하고, 안타까운 모든 주인공들을 생각하며 슬픈 공포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여운도 깊게 남고, 3가지 이야기 각각을 2가지 이상의 관점으로 생각해 봄으로써 각 이야기의 주인공들과 그 주변 인물들의 상황이 이해할 때, 더욱 그 슬픔이 가슴 속에 와닿게 되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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