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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을 믿으십니까? 비포 선라이즈
rhksdn77 2007-09-26 오후 7:38:38 1824   [6]



# 인연을 믿으십니까? #


대학시절, 농담삼아 늘상 입에 달고 다닌 소리다.

"인.연.을.믿.으.십.니.까?..."

수업이 끝나고 다 늦게 집에 돌아갈 때면, 가방에서 살짝 분첩을 꺼내들고 정성껏 화장을 고쳤다. 남몰래 화장실에 들어가서 머리도 손질했고 옷매무새도 다듬었다. 곧 집에 들어가는 마당에 무슨 법석이냐고 친구들이 궁시렁대더라도... 그 어디선가 나타날 지도 모르는 내 인연에게 번들거리는 화장을.. 다 지워진 입술을..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그 어디선가 불현듯 나타날 내 인연에게.. 내 추한 모습을 첫 인상으로 남겨줄 수는 없었기에......

콩나물 시루처럼 그득한 버스간에서, 지각해서 맘만 급한 아침 등교길에서, 미친듯이 질주하는 마지막 막차 버스 안에서.. 열심히 주위를 살펴가며 어느 구석에 숨어있을 "나의 에단호크"가 됨직한 인연를 찾아보았다.

그래.. 이 어디엔가 내 인연이 있을지도 몰라..

도도해야지.. 침착해야돼...

그러나.. 나에게 셀린과 같은 행운은 다가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비엔나행 유레일 기차 대신 지저분한 719버스를 탔으며.. 그 속엔 잘생긴 에단호크 대신 촌티나고 무식해 보이는 남학생들만 가득했으니..


게다가, 결정적으로 난 쥴리 델피도 아니였다...





# Before Sunrise #

8년 전, 처음 이 영화를 본 이후, 몇 번이고 다시 보았다. 정확하게 세어 보진 않았지만, 스무 번 이상은 족히 봤던 거 같다. 비디오가게에서 렌탈비 500원의 몇 배나 되는 연체료를 물어가며 보았고.. 나중에는 비디오가 늘어져서 못 볼만큼 돌려보았고.. 볼 만한 영화가 없을 때 마다.. 야한영화만 달랑 빌리기 멋적을 때 마다.. 혹은 뜬금없이 이 영화를 빌려다 보곤 했다..

낯선 유럽.. 그리고 유레일 기차 안.. 거기서 멋진 인연을 만나다니.. 더구나 비엔나에서 하루를 보낸 후, 아무런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고, 6개월 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다니.. 생각만해도 가슴 설레는 설정 아닌가...

6개월 후, 얘네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함에 끙끙거리고.. 나름대로 결말을 그려보는 것도 너무나 즐거웠다..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핑크빛으로 점쳐보았다가.. 웬지 사랑이란 이루어지지 않아야 스토리가 될 것 같고.. 결국 시니컬한 결말이 낫겠다고 혼자 결론지었다가도.. 뭔가 아쉽고...


 

처음엔, 에단호크의 얼굴만이.. 로맨틱한 설정만이.. 눈에 들어오더니.. 두 번, 세 번, 네 번... 볼 때 마다 주인공의 미세한 표정, 눈짓, 몸놀림.. 배경.. 그리고 대사가 보인다..

특히, 대사.. 얘네들이 쉴새없이 떠벌리는 대사는 정말 예술이였다.. 사실 이 영화는 처음 부터 끝까지 별다른 사건 없이.. 이들의 대화만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애네들의 대화란.. 가족, 일, 사랑, 정치, 섹스.. 아주 평범하고 자질구레한 이야기 보따리를 다양하게 꺼내놓으며.. 색다른 재미를 준다..

또 하나, 쥴리 델피.. 이 영화는 에단 호크보다도 줄리 델피를 위한 영화였다.. 그녀는 정말 매력적이였다..




# 내숭은 여자의 힘 #



이 영화를 또 한 번 재미있게 보는 방법 중에 하나는, 셀린의 행태를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해 보는 것이다..겉으로 보기엔, 박식하고, 비판적이면서 과격하며, 솔직하면서 똑부러지는 셀린......

그러나, 그녀가 하는 말.. 몸짓.. 행동들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는 어느 여자 못지 않은 내숭의 여왕이였다..
그래.. 그녀는 정말 고수였다...

그 중 몇가지를 보자면, (* 스포일러 주의*)

1. 옆자리에 시끄럽게 싸우는 부부.. 책을 읽고 있던 셀린은 조용히 기차 뒤로 자리를 옮긴다.. 바로 제시의 옆자리로... 남아도는 좌석 중에 왜? 왜? 왜?? 셀린은 제시의 옆자리로 간 걸까.. 그녀는 처음부터 그가 맘에 들었던 것이다.. 비록 먼저 말을 건 쪽은 제시였지만 결국 셀린이 먼저 제시에게 다가간 셈이다..


2. 어떤 여자가 낯선 외국남자와 열차에서 내려서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여자들은 맘에도 없는 낯선 남자와 절대 함께 여행하지 않는다.. 제시에게 설득당한 것 같지만 셀린은 처음부터 그와 함께 내리고 싶었다..

3. 놀이공원에 올라가서 제시의 목에 먼저 팔을 감아 안은 것도.. 키스를 한 것도.. 알고 보면 셀린이 먼저였다..


4. 와인을 마시며 공원에서 날이 세기를 기다리던 셀린과 제시.. 셀린은 one night stand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지만.. 다음날, 셀린이 속에 입었던 티셔츠가 사라진 것을 보면.. 이들이 어떤 밤을 보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5. 쿨하게 헤어지자던 이들.. 그러나 이미 서로에게 너무나 빠져있다.. 결국, 제시가 6개월 후에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데, 셀린이 먼저 감정을 내비치진 않는다.. 그녀 역시 너무나 원했지만......


===> 결론은, 여자의 힘은 내숭이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



Before Sunrise,

배낭하나 둘러메고 유레일 기차에 몸만 실으면,
에단 호크가 뛰어나와 친구하자고 달려 올 것만 같은..
여전히 다시 봐도 재미있는..
내 학창 시절 최고의 로맨틱 무비..... 

 

 


(총 0명 참여)
uuiihh
쫌.. 더 쓰시지..ㅎ
최강이시네요 함~   
2010-07-1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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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1995, Before Sun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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