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후 부랑아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도시근로자의 자녀들을 '수용'하거나 세계대전을 치뤄낼 집단형 인간들을 '생산'해낼 수단으로써 생겨난 학교제도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은 거쳐야 한다는 소재의 밀접함(아, 차마 '친근함'이라고는 못하겠다 -_-) 뿐 아니라 부조리 때문에 수많은 영화의 단골소재가 되어왔다. 멜로부터 액션, SF, 공포, 무협, 드라마, 음악영화, 심지어 에로물(-_-;;;)에 이르기까지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압박감은 마찬가지인지 그 많은 학원물중 학교 제도 자체를 긍정하는 영화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단 한편도 없었다.
핑크플로이드의 더 월, 볼링 포 콜럼바인, 엘리펀트, 캐리 등 학교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사건들을 다룬 영화 뿐만 아니라 스쿨오브락 류의 발랄한 학원물들에 깔려있는 정서인 '해방감' 또한 학교생활이 주는 억압 등 학교의 부정적인 면에 기초한 감정이란 걸 생각하면 학교제도가 인간에게 주는 스트레스를 산술적으로 산출해낸다면 어마어마한 수치가 나오리란 짐작을 가능케 한다.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의 두 배우 크리스챤 슬레이터와 위노나 라이더의 어린시절을 만날 수 있는 헤더스는 그러나 풋풋했던 하이틴스타들의 모습을 만끽할만한 영화는 아니다. 앳된 얼굴로 태연히 살인을 저지른 후 주인공이 느끼는 죄의식이 마치 편의점에서 과자 한봉지 슬쩍하거나 시험때 컨닝한걸 자책하는 정도의 감정표현으로 묘사될 때 어안이 벙벙해지는 영화다.
학교와 가정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지만 그 안의 장면장면들은 이질적이기 그지없다. 학교에서 권총을 발사한(공포탄이지만) 학생에게 내려진 납득불가한 솜방망이 처벌,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대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진심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태도, 뻔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정도의 전시행정으로 일관하는 학교당국과 거기에 무분별하게 반응하는 학생들의 집단광기... 이런 모습들은 현실과 괴리된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이질적인 느낌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된 연출'이라고만 보기에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행해지도 있는 부조리와 너무도 닮아있어 모골이 송연해진다.
현실세계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시선은 예리하기 그지없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의 건강함은 갖지 못한 영화, 그 건강하지 못함을 더없이 화사하게 포장한 기묘함때문에 한 시대를 풍미한 하이틴스타들의 앳된 모습마저 전혀 발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미국 상류사회를 비꼬는 듯한 헤더들의 행동, 장난처럼 이루어지는 살인, 학생들을 몰살시키려는 끔찍한 음모, 친구의 주검을 앞에 둔 자들의 장난스러움 등이 하나같이 화창한 햇살 아래 벌어진다는 점, 그리고 살인을 한 주인공이 일기장과 대화하거나 죽은 친구의 환영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동화적인 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는 점은 이 영화가 시종일관 밝은 톤을 유지하면서도 기괴한 느낌을 잃지 않는 이유가 된다.
이 개성넘치고 냉소적인 영화는 낮선 표현방식으로 인해 정작 이 영화를 보고 느껴야 할 기성세대들에겐 오히려 어필하기 힘든 결과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세지의 대상을 넓히는데는 '말아톤'이나 '화려한 휴가'의 접근방식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런지... 하지만 헤더스의 컬트성이 이뤄낸 영화적 성과는 눈부시다. (이 영화의 코디네이터가 이런것까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지금보면 촌스럽기 그지없는 80년대 말 패션마저 우습게 보이기는 커녕 이 영화만의 도무지 대책없는 개성을 더더욱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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