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감독의 영화에서 대서사적 스토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므로 줄거리를 알려달라거나 결론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정말 쓸데없는 짓이다.
그럼에도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최연소 신춘문예 작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한민우(강동원 분)는 최근 새로 집필하는 소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불면증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계속 그를 쫓고있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루팡 바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미미(이연희 분).
그러나 민우는 그녀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고 그러한 민우를 지켜보는 약혼자 은혜(공효진 분)는 불안하다.
간단한 이야기이다.
인류가 글을 쓰기 시작하고, 이야기를 하고, 영화를 만들 때, 써먹고 써먹고 또 써먹어서 이제는 너무나 케케묵은 소재.
첫사랑.
이러한 첫사랑이라는 소재로 이명세는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걸까.
첫사랑.
그 애틋하고 아름다웠던, 다시는 오지 못할 내 순수한 날의 기억.
영화를 보다보면 문득 눈물이 흐른다.
이 눈물은 <너는 내운명>을 볼 때와 같은 서러운 눈물이 아니다.
주인공이 안타까워서 내 가슴이 함께 아파와 울부짖는 그런 울음이 아니다.
조용히 한쪽 눈에서 흐르는 사랑스러운 눈물이었다.
마치 '그래요. 난 늘 여기 있었어요~'하고 자신의 존재를 조용히 알리는 그런 눈물이었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문득 익숙한 냄새에, 익숙한 노래에, 익숙한 물건에 갑자기 눈물이 떨어질 때가 있지 않던가.
갑자기 부는 바람과 함께 묻어온 냄새에 어느 순간 잊고 지냈던 내 순수한 날의 기억이 떠올라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에 그 안타까움에 문득 슬퍼져 운 적이 있지 않던가.
M은 이런 영화다.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아파하길 원하지 않는다.
하나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하나의 노래를 들려주며 내 깊숙히 숨겨져 있어서 그동안 나도 잊고 지냈던 기억을 되살려준다.
그러고 내게 생각하게 한다.
나의 기억, 추억들을...
기분이 좋지 않은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지만 다시 떠올릴 수 있음에 감사하지 않은가.
M은 첫사랑 이야기이다.
민우는 자신에게는 상처로 남은 첫사랑의 기억을 애써 지웠다.
덮고 덮어서 그 상처를 묻어버렸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그 기억이 바람과 함께 묻어온 냄새처럼 내게 돌아왔다.
그러나 그 기억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
나는 잊어버렸다.
내게 상처가 됐던 그 사람의 이름.
나는 지워버린지 오래이다.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그러나 기억이 난다.
내게 상처였던 그 첫사랑이 그 사람에게도 상처였다.
영화속에서 나오는 엄브렐라 맨은 죽은 미미를 데려가려는 저승사자쯤 될까.
그러한 저승사자가 눈물을 훔친다.
미미의 첫사랑이 매듭짓지 못함에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미미를 위해 민우와 만날 수 있는 루팡바를 만들고 민우를 그 곳으로 인도한다.
신출귀몰하는 괴도 루팡과 같이 그 바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
내 첫사랑, 순수성과 현재의 나를 연결시켜주는...
민우가 루팡바를 찾을 때는 늘 거울을 통한다.
이 때 이상의 <거울>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거울속에 존재하는 나는 분명히 나이건만, 내가 아니다.
거울 속의 민우는 늘 미미를 만난다.
현재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나를 만나는 길이된다.
민우는 너무나 깊숙히 숨겨놓았지만, 아무도 가지 않는 좁은 뒷골목을 스스로 찾아가 내 과거와 접한다.
자신이 숨겨놓았지만 도무지 그것을 덮어놓고 살기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너무나 삭막하다.
위로를 받고 싶었다.
아니, 받아야만 했다.
이 영화의 형식은 너무나 새로워서 처음 접하게 되면 혼란스러울 뿐이다.
도무지 내가 무엇을 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혹시 꿈을 꾼 건 아닌지 헷갈리게 된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와같은 일반적인 관객들은 문득문득 슬퍼짐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
그러나 이미 익숙해진 후 한 번 더 감상을 하게되면 정말 아름다운 꿈을 꾸게 될 것이다.
내 잃어버렸던 순수성.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세상 하나뿐인 첫사랑의 기억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름다운 꿈을 꾸어라.
그 꿈은 너를 꿈꾸게 할지어니.
배우들의 연기는 만족스러웠다.
이 영화를 온전히 혼자 힘으로 이끌어야 했던 강동원은 청춘스타 답지않은 힘을 보여주었다.
이미 영화 속에 그대로 흡수되어 있었다.
신예 이연희는 그 어리숙함, 어설픔이 아마 자신의 역할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 누가 그 모습을 보고 찡그릴 것인가.
비중은 작지만 공효진은 자신의 몫을 다해내었다.
연기자들은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큰 불편함이라던가 거리낌은 없었다.
이 영화를 보고 안타까웠던 점은 이 영화는 절대 흥행할 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대개봉을 할 성격의 영화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컬트무비적일 수도 있기떄문에, 적은 개봉관으로 장기상영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문득 문득 추억하고 싶을 때 찾아가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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