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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더 재킷
ohaeng 2007-10-28 오후 2:20:30 1834   [6]

     어제는 무비스트에서 주최한 <자켓The Jacket> 모니터 시사회에 다녀왔다. 장소는 서대문역 앞에 드림시네마. 영화가 막 시작되고 화면이 좀 이상했다. 처음에는 <데쓰 프루프>의 타란티노 감독처럼 편집으로 장난을 친 줄 알았다. 그런데 장난이 아니라 진짜란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자막 때문이었다. 자막이 너무 커. 그리고 자막의 아랫도리가 잘려서 보이질 않는 거였다. 이게 무슨 일이람. 80년대 이전 극장에서 간간히 경험하던 일이 추억으로 되살아났다. 영사실에서 이리저리 렌즈를 만지고 있는지 화면이 스크린 너머로 커지기도 하고 360도 회전을 해서 작아지기도 하고, 그렇게 3분이 지난 뒤에 극장 안에 다시 불이 켜지고 상영이 멈췄다. 행사 관계자가 앞으로 뛰어나와 사과를 하고 스크린 하단을 가리고 있던 천을 내려서 세로길이를 늘였다.
 
     다시 3분쯤 지나 불이 꺼지고 처음부터 상영되기 시작했다. 이때 김새게 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등장하곤 하는데, 바로 전화를 받는 사람들이다. 상영하기 전에 배터리를 빼주는 게 예의일 텐데 도무지 모른다. 해외에 거주하는 회원들은 자기네들이 사는 곳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내가 극장에 가보면 한번 이상은 그런 사람을 꼭 본다. 그것도 바로 근처의 좌석이라 어두운 극장 안에서 빛을 발하는 핸드폰 불빛은 여간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다. 70년대의 우리네 자동차 문화를 연상케 하는 모습들이다.

     모니터 시사회이긴 하지만 해당 영화의 자료는 다 알아두고 가는 성격상 시놉시스는 미리 살펴보고 갔다. 완전한 블라인드 시사회도 아니고 모니터여서 행사 안내문에도 간단한 줄거리는 나와 있었다. 산만하고 복잡하다는 평이 좀 있어서 적이 긴장하면서 봤는데 덕분에 집중이 잘되었다. 평을 안 좋게 써올린 분들에게 감사한다. --;

     배우들의 연기는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헐리웃에서는 아마 평범한 수준일 거다. <007 카지노 로얄>에서 6대 제임스 본드로 발탁된 다니엘 크레이그를 영화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 캐릭터에 몰입이 된 건지 다니엘 크레이그의 캐릭터로 연기를 한 건지 알기 어려웠다. 남자 주연을 맡은 에드리언 브로디는 <킹콩>에도 나왔다는데 영화 자체가 존재감이 없어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피아니스트에서 보여줬던 연기는 아직 뭉클하다.

     요즘 아파트 욕실에는 천정의 환기구만 있고 창문이 없는 경우가 많다. 문을 닫고 불을 끄면 완전한 암흑으로 변하는 공간이다. 그곳에 의자 하나를 놓고 불을 꺼고 문을 닫은 채 의자에 앉는다. 시선을 15도 정도 위로 한 채 눈을 뜬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예전에 오컬트 관련 서적에서 영적인 현상을 불러일으킨다며 이 방법을 소개받은 적이 있다. <자켓>의 전체 이야기를 연결 짓는 핵심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진다.

     알파인 그루브 정신병원의 시체안치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체안치실을 본 사람이라면 시신이 들어가면 딱 맞는 크기의 박스형 공간이 중층으로 쌓여 있는 방임을 알 거다. 차곡차곡 쌓은 닭장 같은 곳. 바로 그곳에 잭 스탁스(에드리언 브로디 扮)는 치료를 명분으로 갇힌다. 금지된 치료. 허가받지 않은 실험. 몸이 묶인 채 시체안치실의 칸 하나에 갇힌 잭은 불 꺼진 암흑에서 무엇이든 보려고 눈을 부릅뜨지만 암흑 뿐 보이는 것은 없다. 좌절하고 분노하려는 순간 그의 눈은 시공간을 넘어선 곳을 보게 된다.

     자신의 미래를 보고, 그 미래의 장면에 담긴 미스터리를 풀려고 노력한다. 그 추적의 와중에 알게 되는 다른 사람들의 비밀. 가슴 아픈 과거에 매여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이것을 본 잭의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화에서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행동으로 나타난 결과를 보고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잭은 자신이 죽을 날이 언제인지 미리 알았지만 동시에 알게 된 다른 이들의 불행에 먼저 마음이 쏠린다. 조건 없는 이타심利他心이 잘 드러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잭이 어떻게 죽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그 장면에는 어떤 장치가 없다. 하나의 장면으로 나타날 뿐이다. 주인공의 죽음을 가볍게 처리하는 이 부분에서도 잭은 자신과 남을 연결한 더 큰 세상을 위주로 생각이 돌아감을 알 수 있다. 그런 사람이라는 것. 나를 먼저 생각하고 그 뒤에 여유가 있을 때 남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남을 한 덩어리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것. 헐리웃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깊이’가 담겨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처음으로 연결된다. 눈발이 휘날리는 설원의 들판 사이로 난 길. 길가에 멈춰선 픽업트럭. 약에 취한 채 울렁증에 시달리는 여자. 어쩔 줄 모르는 어린 딸.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총상을 입고 기억상실이란 병을 얻어 귀국한 잭이 지나가다 모녀를 돌본다. 마지막 장면에서 잭은 자신이 내민 도움의 손길이 현실화 한 것을 본다. 잭이 알던 재키(키아라 나이틀리 扮)는 약물중독자인 어머니의 죽음 이후 외롭고 슬프게 살아가던 웨이트리스였다. 마지막 장면의 재키는 간호사가 되어 출근하는 길에 잭을 만난다. 만나는 상황은 동일하다. 다만 첫장면에서 보여준 차는 낡은 픽업트럭으로 재키의 신산한 삶을 표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의 재키는 산뜻한 노란색의 폭스바겐 비틀을 몬다. 재키는 잭을 태우고 출발한다. 잭은 어머니와 통화하는 재키를 바라보며 자신의 소망이 이뤄졌음을 알아차리고 마지막 기쁨을 맛본다. 그리고 비틀의 뒤창 너머에서 환한 빛무리가 다가와 실내를 가득 채운다.
 
     처음과 끝이 이어지는 것은 동양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다. 윤회輪廻.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며,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를 만들어가는 질료이다. 그런 데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라는 물음을 얻게 된다.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크게 다르지는 않다. 헐리웃 영화에서 드물게 경박하지 않으면서 깊은 성찰이 담긴 작품을 봤다. 하긴 여기엔 독일과 영국이 제작에 참여한 공로가 커보인다. --;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가볍다. 오늘도 뭔가 하나를 배우고 간다는 생각이 들기에.

http://ohaeng.net/


(총 0명 참여)
thesmall
글쿤요   
2010-03-1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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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킷(2005, The Jacket)
제작사 : Mandalay Entertainment / 배급사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수입사 : (주)코리아스크린 / 공식홈페이지 : http://www.thejack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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