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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하고, 긴장되며, 매혹적이다... 궁녀
ldk209 2007-11-09 오후 8:07:07 4596   [24]
끔찍하고, 긴장되며, 매혹적이다...

 

<궁녀>는 그 소재 자체만으로도 많은 궁금증과 기대를 가지게 했던 영화다. 최근 TV 드라마를 뒤덮고 있는 사극 열풍에서도 알 수 있듯 사극은 대체로 왕을 중심으로 한 남성들의 이야기이며, 여성은 치장의 역할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여성들이 나오는 사극이라, 일단 궁금증이 동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거나 궁녀라는 존재는 매우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궁녀들은 어릴 때 궁에 들어오는 순간 왕의 여자로 평생 살다 죽어야 한다. 물론 모든 궁녀가 실제로 왕의 남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궁녀들은 왕의 눈에 띄기 위해 주로는 외모를 가꾸는 일에 주력했다고 한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다거나 걸레질도 허리를 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독특한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의 규율과 제도가 있었음은 당연하다. 그게 영화에서 그리듯이 그런 가혹한 수준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는 천령(박진희)의 출산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임신까지 한다는 건 궁녀로서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천령의 이러한 경험은 왜 출산 흔적이 있는 월령의 죽음에 그토록 결사적으로 매달리는지를 설명해주는 장치다. 천령의 대사는 이를 직접적으로 얘기한다. "마치 제가 누워있는 것 같네요".  월령의 시체가 발견되고 천령은 자살로 위장된 살해임을 직감한다. 그러나 감찰상궁을 포함한 윗선은 궁 안에서 궁녀가 죽은 이 해괴한 사건을 빨리 묻고 넘어가고자 한다. 천령이 범인으로 확신하는 것은 왕의 종친인 정랑. 바로 천령도 이 종친과 관계를 가지다가 아이를 임신했고 버림받았다.

 

천령의 확신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종친이 범인이라고 하는 증거들이 하나 둘 천령 앞에 등장한다. 숨 가쁘게 범인을 뒤쫓는 천령과 범죄를 덮으려고 하는 음모들이 뒤엉키면서 영화는 그 몰입도를 높여간다. <궁녀>는 기본적으로 천령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와 희빈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데, 당연하게도 영화 초반부터 범인으로 의심 가는 정랑은 스릴러 영화의 특성상 미스테리의 중심은 아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월령의 죽음과 정랑의 플레이보이적 놀음은 서서히 분리되고 죽음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시점에서 갑자기 스릴러 장르에서 호러 장르로 탈바꿈한다. 스릴러로서 대단히 높은 완성도를 보였던 영화였던 만큼 호러로의 방향 전환이 굳이 필요했을까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데, 그나마 이 사실을 알고 영화를 관람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꽤나 당황했을 법도 하다. 마치 한정식을 먹는 도중에 피자가 나오는 격이랄까. 더구나 천령의 입을 빌어 과학적 수사를 그토록 강조했던 영화에 갑자기 귀신이라니 이율배반이라는 지적이 나올만하다. 거기에 궁녀 옥진에 대한 가혹한 고문 장면이라든가(대침으로 손톱 밑을 찌르는 이 장면 때문에 시사회에서 한 여성이 기절했다고 한다. 이 장면은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즌 1의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임프린트>의 고문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임프린트에서는 큰 바늘을 손톱 아래뿐만 아니라 잇몸에도 찔러 넣는다) 허벅지에 수를 놓은 장면 등에서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월령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밝혀지면서 그토록 진실 추구에 목매달던 천령은 입을 다물고 만다. 사실 이러한 천령의 자세 변화는 석연치 않은 감이 있는데,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처음 진실을 추구했던 태도가 정랑에 대한 개인적 복수심에 기반한 것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진실의 무게를 벗어난 데 따른 무력감의 표현이 침묵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전반적으로 꽤 괜찮았다고 평할 수 있다. 특히 심상궁역의 김미경과 감찰상궁역의 김성령, 그리고 희빈역의 윤세아가 눈에 띄었으며, 반대로 주인공 박진희의 경우는 무난하긴 했지만, 기본적인 캐릭터가 잘 맞는 역은 아니었던 거 같다. 박진희는 대단히 활동적이고 씩씩한 캐릭터로서 수사관 역할에는 좋을 수 있지만, <궁녀>에서처럼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는 역치고는 너무 씩씩해 보였다. 그리고 대사가 입에 잘 붙지 않는 느낌도 들었고.

 

어쩌면 영화 <궁녀>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영화 시작과 함께 죽었기 때문에 과거 회상 장면에서만 등장하는 월령(서영희)일 것이다. 처음 월령의 모습은 욕심 없고 순박하고 희생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종아리를 맞는 희빈을 감싸며 얼굴에 상처를 입는 장면 등은 꽤 인상적이다. 그러나 진실이 드러나면서 월령은 화려해지고 탐욕스런 모습으로 변하며, 그런 변화가 죽음을 불러 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영화는 월령의 변화를 자세히 묘사하지도 않고 그다지 설득력 있게 그려내지도 못하고 있다. 관객으로서는 그저 영화가 그렇게 믿으라 하니깐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 캐릭터 상의 몇몇 미진한 부분이나 느닷없는 귀신의 등장, 그리고 귀신을 핑계로 몇몇 장면이 모호하게 처리되는 등의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궁녀>는 대단히 끔찍하고, 긴장되며, 매혹적인 영화다. 대부분 여성들이 나오는 여자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어필하고 있다는 점도 한국 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총 0명 참여)
thesmall
글쿤요   
2010-03-14 21:41
qsay11tem
잘 보고 감   
2007-11-22 09:3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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