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동네에서 까칠하기로 그 명성이 자자하셨던 나의 아버지께서
아무 잘못 없는 데도 정말 실수한 것 없느냐고 몇 번이고 되물어 보실 때면
적어도 그 일에서만큼은 순결했던 내 모습은 얼른 제쳐두고
깡패 만난 코흘리개 아이처럼 없는 주머니 어떻게든 싹싹 털어
먼지같이 가벼운 잘못이라도 내밀곤 했었다.
인정해야만 할 것 같은 아버지의 날카로운 눈초리와
재촉하는 말투에서 나오는 분위기에 압도되어서이다.
강성이 아닌 내 성향 탓에 그러기도 했겠지만
사실 그런 양 같은 심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대답한 내용을 되물어 보는 수법이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이용한 대질수사의 기본 스킬이 되시니 말이다.
더구나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라면 그 심정 오죽할까?
한 사람에게 욕 먹어도 하루 종일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며 가슴을 뒤흔드는데
잘못하면 수많은 사람에게 집중포화를 맞는 그들이라고 그런 마음이 없겠는가?
모두가 예라고 하는 상황에 혼자만 아니라 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딕시 칙스: 셧 업 앤 씽(shut up & sing)”
“닥치고 노래나 하세요~”다소 친절한 금자씨스러운 부제를 가진 이 영화는
가볍게 건넨 말 한마디 때문에 정상에서 맨땅으로 시속200km 곤두박질친
여성3인조 컨트리 밴드 딕시 칙스의 5년간의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슈퍼볼 게임에서 애국가를 부를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던 이 국민 밴드가
국민 마녀가 되기까지 지대하고도 결정적 어시스트를 한
“우린 평화를 원하고 전쟁을 반대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 주 출신인 것이 부끄럽습니다.”
이 말은 월남전에 참전한 병사를 위한 노래“Traveling Soldier”를 부른 후
자연스레 흘러나온 보컬 리더 나탈리의 솔직한 의견일 뿐이었다.
하.지.만
늘 하던 불장난, 기름 이리저리 튀는 유전 터졌을 때 한다고
그시기가 마침 9.11 테러 후
극에 달한 반 중동 정서를 총알 삼아
없는 패 만들어 가며 이라크 침공을 감행하려 했던 타짜 히든 타임 때였으니
우리의 타짜, 부시의 지지율이 그 코만큼 솟은 형국
엎친 데 덮치고 깐 데 또 까는 산 넘어 마운틴의 난세였다.
평소에는 그냥 묻힐 그 발언
적금통장 식 계산이 아닌 러시앤 개씨 식 무대포 사채이자율을 적용하여
눈덩이마냥 커져가니 일파만파 분노한 온 국민 조폭화 되어
스트레스해소 성 발언 “셧 업 앤 씽(shut up & sing)”을 남발하다 못해
갓 나온 그들의 따끈따끈한 앨범 한 번 더 바삭하게 불태우시기까지 한다.
컨트리 뮤직의 비닐 하우스, 소위 온상이 되었던 라디오 방송국들은
보수파의 큰소리에 눈 한번 깜빡이지 못하고 무릎 꿇으니
바짝 구워진 그 앨범 고이 접어 버린 채 그대로 말문 닫는 묵비권 행사를 일관하고
원금의 3~400%를 상환 받은 것도 모자라 일부 무 개념 극렬시민은
장기매매 권유단계를 사뿐히 건너뛰고 바로 살해 협박하시니
자 이쯤 됐을 때, 그 옛날 S.E.S 언니들이라면 어찌했을까?
“We should be We”
“그 입 다물라~”는 항의에 대한 공식성명을 준비하는 자리에서
사견이었을 뿐이라고 모든 책임을 지려는 리더 멜라니의
“서두를 우리는…이 아닌 저는..으로 시작하자”는 의견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호히 끊으며 낚아채는 매니저
“We should be We”’우리라고 해야 해’
논픽션이 아닌 픽션에서는 듣기 힘든 그 말을 듣고야 말다니…….
그들은 기어코 하나가 되어 소나기처럼 퍼붓는 온갖 비난을 다 감수하고야 만다.
그리고는
하루 이틀도 아닌 몇 년의 시간 동안, 아이를 낳고 기르는 그 세월에도
변함없이 하나가 되어 누구도 원치 않는 그들의 음악을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
결국…….
본인들이 아니면 얼마나 아팠을지 모르는 고통의 4년을 보낸 후
덮여진 하얀 눈이 녹아 그 더러운 몰골을 드러낸 흙탕길처럼
모든 거짓이 만 천하에 들어 난 2007년,
문제의 진원지였던 런던의 같은 장소에서 그 망발을 똑같이 되풀이 하니
빗발치던 욕설과 비난 간데없고 오직 찬사와 박수갈채뿐……..
그 끝은 해피엔딩성 어퍼컷…..복수 제대로 하신다.
얼마나 통쾌하던지……
미국 민주주의의 추악한 단면이라고 거창하게 단정짓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미국인의 냄비근성 좀 보라고 고소해 하며 몰아 부치고 싶지도 않다.
허물 많은 나 또한 그리 영양가 있는 말만하고 살지 않았고, 살면서도
이쪽 저쪽 냄비라면 끓여대며 진실하고 강직한 이 거품 물게 할 수 도 있었을 테니.
100%의 진실을 볼 수 없는 ‘나’이고,
안보고도 알 수 있는 냉철한 이성 없는 ‘나’인데
그 누구를 판단하며 누구를 씹을 텐가?
목소리 큰 놈 이긴다며 저마다 소리치는 이 사회에서 맞받아쳐 고함 지르다 보면
내가 걷는 길 또한 바르지 못한 어지러운 진흙 길 되니
귀가 두 개고 입이 하나인 이치처럼
비율제로 두 번 듣고 한 번 말해야 될 것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그때그때의 가치판단이 바뀌는 상황윤리가 대세인 지금.
모든 것이 빠르기만 하여 말까지 가치관까지 따라 뛰는 이 카트라이더 레이싱 시대에
그들이 보여준 강직함과 우정은
버려진 꽁초들 사이에 자태 드러낸 만 원짜리 지폐처럼 눈부시게 아름답기만하다.
책임감으로 부담감으로 힘겨워 하는 멜라니를 보고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눈물의 그 고백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닥치고 노래나 부르라고?
차라리 내가 부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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