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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보다는 훨씬 더 좋았던 알맹이... 싸움
leeslid03 2007-12-18 오전 11:31:38 1631   [3]

"하드보일드로맨틱코미디"라는 긴 장르 규정, 포스터와 광고에서 노출되는 두 배우의 싸움 장면, 이런 것들을 보고 나는 "싸움"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뒤집어놓은 "로맨틱코미디"정도로 생각했다. (모든 로맨틱코미디에는 이런 뒤집힘, 엇갈림이 존재하니까 난 사실 싸움을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로 여겼다.) 어떤 사람들은 나와는 반대로 로맨틱코미디 같은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를 기대하였나 보다. 몇몇 실망했다는 리뷰는 대부분 액션에 대한 비판인 것을 보면...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이 영화에 대한 화려한 포장이 탄탄하고 재미있는 알맹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싸움"은 코미디도 있고 액션도 있지만,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하드보일드로맨틱코미디처럼 모호하지 않고, 분명하다.

 

 

이 영화는 그 분명하고 꽤나 심오한 주제를 얘기하기 위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정교하게 나아간다.

 

 

: 만나서 사랑하는 것은 관계를 이루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다. "사랑해"라는 말에는 "나도 사랑해"라는 대답이 돌아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런 순서는 증오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사랑해"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어려움을 줄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네가 생각하는 사랑이 사실은 전혀 다른 모습인데도 서로 똑같은 한 마디말 "사랑해"로만 얘기를 하니...서로의 착각 속에서 오해를 증폭시키기에 딱 좋은 조건이다.

 

 

: 설경구, 김태희 둘이 불 같이 싸우는 것도 사랑이라는 밑바탕의 감정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널 사랑하는 데...너는 왜 그걸 몰라? 이것이 그들이 그렇게 싸우게 되는 마음의 바탕이다.

그들의 싸움이 극한까지 가는 상황은 확실히 하드보일드 하지만, 중간중간에 배경이 사랑임을 관객이 잊지 않도록 한다. (김태희가 설경구를 이혼 후 처음 만날 때 긴장하면서 거울을 확인하고, 설경구의 장난 전화 때문에 중요한 사업기회를 포기하게 되는 것 등)

 

 

: 액션활극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인 비오는 타조농장에서의 개싸움, 여기서 두 사람의 감정 충돌은 정점에 달한다. 김태희이 있는 힘껏 내리치는 쇠철봉을 설경구가 쇠스랑으로 막는 순간! 두 사람은 두 쇳덩이가 부딪치면서 가해진 충격 때문에 쇠를 놓치고 철퍽 주저앉는다. 이때, 모든 증오가 걷힌다. "사랑"과 "사랑"이 동상이몽으로 맞붙어온 싸움이 이 순간 끝나는 것이다. 쇠와 쇠가 맞부딪히는 불꽃 튀는 그 순간에 불꽃 같은 "돈오"의 깨달음을 얻는다. 이제 그들은 감정의 충돌을 끝내고 "관계"로 돌아갈 채비를 할 수 있게 된다. (한지승 감독은 불교적이다. 그러고 보면...)

 

 

: 그들이 원했던 것은 사랑이었으나, 그들의 관계에 필요했던 것은 "사랑해"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였다. 이것이 성숙한 남녀가 부부로 살 때 필요한 대화다. 미안해라고 말하면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단순하지만 결혼생활 한 10년 지지고 볶으면서 좀 깨달은 단계가 되어야 그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깨달음을 얻고 나니, 시계추 뒤에 새겨놓은 마음도 읽게 되고, 젖소와 사람과 송아지가 만드는 가족도 이해하게 되는 것...그것은 어렵게 만들어가는 관계가 주는 또다른 혜택이다.

 

 

공항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한 꽤 심오한 주제의식을 아름다운 은유로 보여주면서 끝난다. 이 부분은 별 다섯개 줘도 될 것 같다.

다시 보여주는 두번째 마지막 장면은 글쎄...이건 좀더 넓은 관객 취향의 스펙트럼을 확보하고 싶었던 것 아니면, 하드보일드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규정에 충실하기 위한 장치인 것 같은데, 난 "첫번째 엔딩"을 마지막 장면으로 보았고 "두번째 엔딩"은 번외 서비스로 이해했다. 그편이 싸움이라는 영화를 내 추억의 명화 리스트에 올려놓기에 더 좋은 방법이었으므로.

 

 

올해 내가 본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영화 순위에 들어가는 좋은 영화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에 접했던 "하드보일드로맨틱코미디"라는 포장이 영화를 보고 나서 더 아쉽게 느껴졌다. "하드보일드로맨틱코미디"라는 광고가 없었다면,그리고 다양한 취향의 불특정 다수가 보는 흥행영화가 아니라 30대 이상의 부부(또는 한때 부부였던 사람들)를 대상으로 한지승 감독의 색깔을 더 분명히 했었다면...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오랫동안 기억하는 별 다섯짜리 클래식이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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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쿤요   
2010-03-1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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