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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른이 된 이들의 그때 그 시절, <귀를 기울이면>은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누려야 할 행복한 애니메이션이다.
중3 소녀 시즈쿠는 학교와 시내 도서관에서 책을 한아름씩 빌려보는 독서광.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이 빌린 책의 대출 카드에 늘 ‘아마사와 세이지’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발견한다. 이것 참, 누군지 궁금하고 묘하게 두근거리는 마음. 얼마 후 학교에 놓고 온 책을 찾으러 갔다가 그 이름의 주인공을 만나게 된 시즈쿠는 그와 점차 친해진다. 그런데 또래 남학생인 세이지가 일찍부터 바이올린 장인이 되기 위해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 중이라니, 어쩐지 충격이다. 꿈을 지닌 세이지의 작업실을 드나들고 인자한 세이지의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시즈쿠는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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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된 지 무려 12년 만에, 일본문화 개방의 가장 끝물에서, DVD 출시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개봉하는 <귀를 기울이면>은 이렇게 지나치기엔 정말 아까운 수작이다. 이 작품이 <고양이의 보은>의 원작자이기도 한 만화가 히이라기 아오이의 원작을 각색한 것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의 후계자로 지목했던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유작이라는 건 알려진 사실. 미야자키의 그림자가 엿보이지만 콘도 요시후미만의 섬세한 연출력이 훌륭히 살아 숨 쉰다. 그가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는 물론, 지브리의 현재도 전혀 다른 모습이 됐을지 모른다.
<귀를 기울이면>은 알싸한 첫사랑의 감정과 어떤 미래를 꿈꿀지조차 모르던 시절의 고민을 너무나 산뜻하고 싱그럽게 붙잡는다. 단순한 스토리에서 이토록 풍성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오는 연출력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호소다 마모루마저 부러워할 만하다. 시즈쿠가 다니던 도서관, 세이지의 자전거를 타고 오르던 언덕길, 뚱보 고양이의 안내를 따라 환상의 골동품 가게로 가는 골목골목, 대패와 나무껍질, 바이올린이 가득한 세이지의 작업실 등등 소소한 일상의 공간을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로 만드는 솜씨 또한 훌륭하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사춘기 소녀의 감정들이 그 공간 안에 사려 깊게 녹아든다. 세이지의 작업실에서 존 덴버의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를 부르는 시즈쿠와 멋진 편곡으로 반주를 하는 세이지와 할아버지, 그 친구들의 연주 장면, 새벽녘 자전거를 타고 온 세이지(지브리 역대 최고의 꽃미남 자리를 다툴 만한 캐릭터다)가 시즈쿠와 일출을 보는 장면 등은 10년이 지나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일찌감치 길을 찾은 세이지에게 자극 받고, 세이지의 할아버지가 전해준 골동품 인형 ‘고양이 남작 바론’에게 얽힌 슬픈 사랑 이야기에 글쓰기를 결심하는 시즈쿠의 마음은 지금 이 자리에서 한발자국이라도 앞으로 걸어가고 싶은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제는 어른이 된 이들의 그때 그 시절, 그때 그 마음에 화답하는 <귀를 기울이면>은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누려야 할 행복한 애니메이션이다.
김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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