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알콜중독자가 한 사람이 있다. 술을 너무 좋아해 월급도 통째로 갖다 쓸 정도다. 그런 그가 과거에는 '혁명투사'였다고 한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대통령궁을 나와 헬기를 타고 도주하던 1989년 12월 22일 오전 0시 8분, 그는 그 시간 이전에 광장으로 뛰쳐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16년이 지난 시점에, '혁명의 당사자'로서 방송에 출연한다.
하지만, '방송 출연'은 그의 실체에 대한 의문만을 제기됐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방송에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한다. "그때 그 시간, 광장에 그 작자는 없었다"는 주장들이 쏟아진다. 이 알콜중독자가 '비밀경찰'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자꾸 그러면 방송까지 고소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혼란스럽다. 누구의 말이 맞다는 것인가. 확실한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이게 혁명의 쓸쓸한 오늘일 수도 있다. 제아무리 혁명에 앞장섰어도 초라한 오늘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증언자들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 말처럼 엉뚱한 자들이 혁명의 열매를 사칭하며 독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듯,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는 '블랙코미디'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알콜중독자로 전락한 초라한 역사선생을 등장시킨 것이 흥미롭다. 학생들에게 혁명을 물어봤자 자신들의 '차우셰스쿠 축출'이 거론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대혁명'이 나온다. 혁명의 열기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무미건조해질 뿐, 남는 것이 없어진다. 혁명의 비극이다.
현재의 루마니아는, 차우셰스쿠의 잔당들이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우리 근현대사를 보는 것과 같다. 그렇듯,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며, 변화는 거짓일지도, 이뤄질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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