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안 맞는 거 같긴 한데, 재미는 있다....
미드 <로스트>로 소위 월드스타가 되었지만, 한국에서의 티켓 파워는 인정받지 못한 배우 김윤진. 어쩌면 허울 좋은 월드스타라는 호칭보다는 연기력이든 흥행이든 그런 쪽으로 인정받는 게 배우로서는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영화 개봉과 즈음해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김윤진이 방송국에 들어오려는데 경비원이 알아보지 못하고 막은 적이 있다고 하는데, 웃자고 하는 소리긴 했지만, 내심 섭섭한 감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스크린에서 법정 드라마를 보기 힘든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은 미국이나 영국처럼 배심원 제도를 채택한 나라가 아니다. 배심원 제도가 없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건 한마디로 재판 과정이 재미없다는 소리다. 한국 재판제도는 철저하게 증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변호사건 검사건 영화에서처럼 구구절절 판사를 향해서 또는 방청객을 상대로 연설을 할 이유가 없다. 그저 미리 증거물을 제시하고, 변호사는 선처를 호소하면 그 뿐이다. 물론 일부 재판의 경우 검사와 변호사의 첨예한 의견이 대립하기도 하지만, 그건 시국사건과 같은 극히 일부분에 한해서이며, 형사사거의 경우엔 거의 보기 드물다. 따라서 <세븐데이즈>의 재판 광경은 한국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익히 보아온 미국의 법정 광경일 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에선 변호사의 승률은 별 의미가 없으며, 90%의 승률을 가진 변호사가 나온다는 건 한국에선 불가능에 가깝다.
어쨌거나 대단히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전작 <구타유발자들>로 흥행에 실패한 원신연 감독의 <세븐데이즈>는 월드스타 김윤진을 주인공으로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일종의 법정 드라마를 시도하고 있으며, 현실성이라는 차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일단 이 시도는 성공했다고 보인다.
매우 빠르게 편집된 초기 화면을 지나 실제 드라마가 시작된 이후에도 영화는 매우 빠른 속도를 유지한다. 100%에 가까운 승률을 유지하고 있는 변호사 지연(김윤진)은 홀로 키우던 딸이 백주대낮에 납치되며, 납치범은 재판이 7일 밖에 남지 않은 살인 용의자를 무죄 석방시키라는 요구를 한다. 지연은 딸을 살리기 위해 살인 혐의가 너무 명백해 보이는 피의자의 무죄선고를 위해 정면으로 사건을 돌파하는데, 여기엔 많은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일단 유괴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을 따돌려야 하고 친구이면서 부패형사인 성열(박희순)의 처벌을 막아줘야 한다. 그리고 피의자로부터 딸이 살해된 숙희(김미숙)에게 사건 정보를 얻어내야 하며, 이 사건에 관련된 아들을 빼내려하는 곧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검사 고위직 간부와도 충돌해야 한다.
이렇듯 지연을 둘러싼 관계들은 복잡하고 혼란스럽지만, 영화는 빠른 속도로 이를 돌파해 나간다. 어쩌면 이렇게 복잡한 얘기를 2시간 남짓한 시간에 풀어야 했기 때문에 빠른 편집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영화는 앞뒤 사정을 고려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정신없이 휘몰아친다. 그러다보니, 유괴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들이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든가, 끔찍한 범죄를 사주하고 직접 실행한 검찰 고위 간부가 굳이 재판 현장에 왜 나와 있나(영화적 재미를 위해?) 하는 정도는 그냥 애교로 넘어가줘야 한다. 영화를 다보고 나서 하나하나 되씹다보면 그나마 영화를 보며 느낀 재미가 날아가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마지막 반전을 보며 그럴듯하다고 감탄하면서도 범인을 예측하기 힘들었던 건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라기보다는 예측할만한 정보의 부족과 예측할 틈을 주지 않는 빠른 속도에 기인하는 건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세븐 데이즈>가 액션 스릴러보다는 두 모성의 대립에 초점을 맞춘 심리 스릴러였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두 모성이 최후의 복수를 같이 준비했다든가 하는 식이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