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후벼파는 애절한 회한.......
<속죄>가 원작소설인 영화 <어톤먼트>는 크게 삼부 또는 사부로 구성되어 있다. 13살의 브라이오니의 눈에 비친 이상한 장면과 오해들, 그리고 그로 인해 평생을 짊어질 거짓 증언을 담은 1부, 브라오니의 거짓 증언으로 인해 전쟁의 한가운데 투입되어 전장을 헤매는 로비, 그리고 세실리아와의 짧은 만남을 담은 2부, 자신의 거짓으로 어긋난 두 명에 대한 속죄로 간호사로서 봉사하기로 결심한 18살 브라이오니의 모습을 담은 3부, 그리고 짧지만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애절한 회한이 느껴지는 노년이 된 브라이오니의 에필로그까지.
글쓰기를 좋아하고 정돈되고 조율할 수 있는 세계를 원하는 13살 브라이오니의 첫 희곡은 배우들의 비협조 등으로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소녀의 눈에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목격된다. 로비의 손가락질 하나로 옷을 벗는 언니 세실리아.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낳고, 노골적인 음담을 담은 잘못 전달된 편지, 그리고 로비와 세실리아의 정사 장면은 13살 브라이오니에게 혼란된 감정을 안겨준다. 그런 혼란한 감정은 부모의 이혼으로 맡겨진 사촌 언니를 로비가 겁탈했다는 거짓으로 이어지고, 이제 바로 사랑이 시작된 연인은 헤이지게 되며, 로비는 전쟁의 한복판으로 끌려간다.
런던에서 짧은 만남을 통해 여전히 세실리아의 사랑을 확인한 로비는 전장을 헤매면서 '돌아와'라는 세실리아의 목소리 하나를 의지하며 버틴다. 그렇게 안타까운 연인의 이별은 계속되고, 서로의 간절한 애닮음은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이제 18살이 된 브라이오니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깨닫고 평생에 걸친 속죄의 길로 들어간다.
데뷔작이었던 <오만과 편견>으로 호평 받은 조 라이트 감독은 두 번째 작품으로 역시 근대 영국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내놓았고, 굉장히 까다로운 소설로 알려져 있는 이언 매큐언의 원작 소설을 무리 없이 화면으로 옮기는데 성공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나서 원작소설을 읽어 보았다. 어찌 보면 무의미할 것 같은 쌍둥이의 대화까지도 영화에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걸 확인하고서야 조 라이트 감독에 대해 원작자가 신뢰를 보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처음 브라이오니가 오해를 한 분수대 장면에서 로비가 세실리아가 떠난 후 흔들리는 수면에 살짝 손바닥을 올려놓는 장면이 있는데, 이 역시 원작소설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원작을 변형했다고 한다면 분수대 사건의 실제 이야기와 브라이오니의 오해 장면이 바뀌어 있다든가 노년의 브라이오니의 에필로그가 축약되어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어쩌면 원작에 대한 존중이라고도 보이고, 창작에 대한 결핍이라고도 보이는 <어톤먼트>가 영화로서 빛을 발하는 지점은 역시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내내 배경에 흐르는 피아노와 현을 중심으로 한 단순한 음악은 이야기와 함께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하고, 특히 영국으로 돌아가고픈 로비가 헤매는 바닷가 풍경을 5분 여의 롱테이크로 담아낸 부분은 나도 모르게 감탄을 자아내는 지점이다.
유년기에 지은 죄로 괴로워하던 브라이오니는 혼자 살고 있는 언니 세실리아를 찾아가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뭔가 이야기가 어긋난 듯한 느낌이 든다. 갑자기 방에서 나타난 로비는 마치 유령처럼 브라이오니 뒤로 스쳐 지나갔다가 다시 나타나 브라이오니에게 이 모든 것을 되돌리라며 절절하게 소리친다. 누군가 말했듯이 만약 이 장면에서 뭔가 어긋나 있다고 느꼈다면 그건 영화의 흐름을 잘 따라온 것이다.
이제 영화는 노년이 되어 자신의 마지막 소설을 발표한 브라이오니의 짧은 인터뷰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뭔가 어긋난 듯한 이야기의 비밀이 이 인터뷰에 숨겨져 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짧은 거짓, 그로 인해 헤어진 연인에 대한 속죄의 선물이 바로 그곳에 있다. 마지막에 펼쳐지는 바닷가에서의 로비와 세실리아의 행복한 모습은 그 비밀로 인해 더욱 슬프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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