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학교에서 독설로 유명한 진중권씨의 특강이 있었다. 특강이라기 보다는 선거 유세를 위해 진보신당 홍보차 왕림하신 듯, 특유의 독설은 2MB와 한나라당을 향해 있었다.
진중권씨는 지금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식코를 보고 상당한 임팩트를 받으신듯, 강연중에 식코를 자주 언급하셨다. 적어도 4-5번은 식코 얘기가 나왔었다.
주로 식코에 나오는 예를 들면서, 이대로 대한민국이 흘러간다면 앞으로 5년안에 일반 서민들은 국가의료보험증을 들고 병원을 가봤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거라고 했다.
미국처럼 의료보험이 민영화되면, 병원에서는 돈 많이 받을 수 있는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을 받지, 국가 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될거라는, 장차 88만원 세대가 될 20대가 들으면 정말 무시무시한 얘기였다.
우리도 식코에 나오는 한 사례의 예처럼, 돈이 없어서 절단된 두 개의 손가락 중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만 접합 수술을 받아야 하거나, 약값을 벌기 위해서 70, 80대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나라에서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대부분의 선진국들 - 미국, 일본, 한국 제외 - 이 보면 분명 인간 이하의 대우라고 할만한 상황에 처할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식코는 이처럼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가지고 있는 의료보험 제도의 허와 실에 대해서 비수를 들고 날카롭게 해부하는 영화이다. 하지만 해부하는것으로 그치지 않고, 다른 선진국들의 사례를 들면서 명백한 해결책도 제시하고 있으며 자칫 너무 지루하고 심각해질수도 있는 주제를 관객이 흥미를 가지고 집중해서 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마이클 무어 감독 특유의 휴머니티와 휴머도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다큐멘터리가 이렇게 재미있고 감동을 줄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은 평생 이 영화를 보고 처음 들었던 감정이다.
이 영화를 단지 미국의 케이스라고 치부하고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크나큰 오산이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경험해왔듯이 미국의 케이스는 바로 우리나라의 케이스와 직결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우리는 미국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꼭 한번 보시라고 당부의 말씀 드리고 싶다.
영화에 나오는 미국 의료보험 제도의 허와 실은 한국인이봐도 상당히 충격적인데, 정작 당사자인 미국인이 보면 얼마나 웃기는 현실이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일까. 의료 결정권을 지니고 있는 보험회사의 의사는 자회사의 이익을 위해 환자의 의료 청구를 무시함으로써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아닌, 죽이는 의사로 변해있다.
911 테러 현장에서 엄청난 양의 가스와 연기를 들이 마시며 생존자 구출 작업을 폈던 미국의 '영웅'들은 만성적인 폐,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정작 미국은 까다로운 보상 기준을 들먹이며 이들의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남은 여생을 편하게 쉬면서 보내야 할 70,80대 노인은 약값을 벌기 위해서 뼈 빠지게 일하고 있으며, 그의 아내인 할머니는 비싼 약 대신 집에 있는 브랜디나 한잔 마시고 만다며 웃는다. 하지만 할머니의 웃음에 서려있는 슬픔은, 겪어 보지 않는 이상 절대로 모를 깊은 슬픔이다.
하지만 언제나 절망속에 희망은 작게나마 존재하고 있는 법. 이런 미국에도 최고급의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쿠바에 있는 관타나모 미 해군 기지이다. (원래 군사 기지는 자국 영토 취급 받는다.)
여기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포함한 전세계 테러범들은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그것도 일주일에 한두번도 아닌, 세번(!)씩이나 받고 있다.
이 사실을 포착한 마이클 무어 감독은 대담한 행동을 벌인다. 자국에서 돈과 의료보험이 없어서 치료를 못받는 환자들을 배에 태워서 쿠바의 관타나모로 출항하는 것. 결국 해군 기지 입성에는 실패하지만, 미국이 증오해 마지 않았던 빨갱이 국가 쿠바에서 마이클 무어와 함께 동행한 환자들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무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의료 서비스를 받음으로써 그들의 고질적인 병들을 치료하게 된다.
쿠바를 비롯해서 영화에는 캐나다, 프랑스의 예가 더 나온다. 모두 무상 의료서비스를 국가에서 제공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프랑스에서는 임산부를 위해 빨래 등을 비롯한 집안일을 도와주는 보모(!)까지 나라에서 보내준다. 이들 모두 이러한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병원에서는 당연히 원무과를 찾아 볼 수 없다.
그나마 'Casher'라고 써있는 곳은 우습게도 치료비를 내는 곳이 아닌, 먼데서 온 환자들을 위해서 나라에서 차비(!)를 주는 곳이니 말 다했다. 물론 이런 나라들의 평균 수명은 미국보다 길다.
왜 다른 나라들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무상 의료 서비스가 미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정착되어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의료보험 민영화를 하게 된다면, 식코 2,3탄은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질것이 틀림없다.
부족한 현실을 인식하고 그 부족함을 채워줄 당연한 권리를 위해서 투쟁하는 모습을 우리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선진국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꼭 자신,가족, 친한 사람들이 돈 없어서 치료 못받아 죽고, 의료보험 회사에서 치료 거절해서 죽어야 정신차릴텐가?
우리나라는 먼저 의료보험 민영화부터 막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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