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폭력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
새벽에 일을 시작해 남들 퇴근하는 시간에 일이 끝나는 청담동의 잘 나가는 호스트 승우(윤계상)는 영화 속에서 확실하게 설명되지는 않지만,(괜스레 플레시백이 동원되지 않은 건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다) 한 때는 아버지가 잘 나가는 사업가였으며, 강남에서 태어나 강남에서 계속 거주한 남부럽지 않은 청년이었을 것이다. 군대에 가 있을 때 아마도 사업실패로 집안이 망했을 것이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것이다. 제대 후 잠잘 곳도 없어진 그이지만, 평생을 호화스럽게 자랐기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았으리라. 다행히 잘 생기고 잘 빠진 몸매 탓에 에이스 호스트로 남 보기엔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중이다.
승우보다 일의 시작 시간이 조금은 빠르고, 역시 조금은 빠르게 끝나는 고급 룸살롱의 텐프로 지원(윤진서)은 아마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온갖 폭력에 노출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 폭력엔 어쩌면 단순 폭력과 함께 성적 폭력도 동반됐을 것이다. 지원의 근무 시간이 승우보다 조금 빠르게 시작하고 빠르게 끝난다는 사실은 화려한 밤 문화의 흐름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상징이다. 화려한 밤거리엔 온갖 종류와 수준의 환락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소위 아가씨들을 끼고 노는 술집에도 등급이 있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온갖 직업의 남정네들이 마치 불나방처럼 밤만 되면 네온사인 켜진 거리를 헤매며 돈과 정력을 뿌려댄다. 이들이 뿌린 돈은 그들의 정력을 받아주는 여성들이 살아가는 밑천이 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성들만이 이용할 수 있다는 호스트바의 주된 손님은 룸살롱처럼 낮에는 멀쩡하게 직장에 다니다가 저녁이면 돌변하는 그런 인간들이 아니고, 대부분 동일 업종에 근무하는 여성들이다. 그래서 호스트바의 영업시간은 룸살롱, 단란주점의 영업이 끝나는 새벽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곳의 아가씨들은 남성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호스트바에서 푼다. 호스트들은 여기에서 번 돈으로 명품 쇼핑이나, 도박 등의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대학교 졸업작품이었던 전작 <용서받지 못한 자>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은 윤종빈 감독의 <비스티 보이즈>는 그렇기에 윤 감독의 본격 데뷔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소 TV의 뉴스, 고발 프로그램 등에서나 봤음직한 호스트바. 여전히 많은 일반인들에겐 호기심이 동하는 미지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차기작 준비를 하고 있던 윤종빈 감독은 우연히 실제 호스트를 하고 있는 친구와 만나 얘기를 들었고, 좋은 소재라고 생각되어 자신이 몇 개월간 호스트 생활을 하며 그곳을 직접 경험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기 힘든 호스트바의 다양한 문화들이 세밀하게 담겨져 있다. 복도에 쭉 늘어서 있는 호스트들, 조로 편성되어 손님들이 올 때마다 들어가서 소개하는 장면 같은 것들.
난 개인적으로 호스트바에 반대다. 일부에선 왜 남성들은 되고, 여성들이 그렇게 노는 건 안 되냐며 반문을 하기도 한다. 난 남성이건 여성이건 그런 식의 저질, 퇴폐적인 밤문화에 대해서 공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접대를 받으며 술 마시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건 아니지만(술만 마시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호스트바의 문화라는 건 기껏해야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저질, 퇴폐의 밤문화를 여성화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굳이 따라할 게 없어서 이런 저질, 퇴폐문화까지 따라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게 된 것은 첫째, 이 사회가 확실히 남성 우월주의 사회이며, 둘째, 남성 폭력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룸살롱이나 호스트바, 또는 모든 서비스 직종에서 가장 대우 받는 신분은 '손님'이다. 굳이 '손님은 왕'이라는 격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돈을 내는 손님이 최고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호스트바의 풍경은 룸살롱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이 바뀐 듯 하지만, 술이 들어가면서 풍경은 동일해진다. 룸살롱에서도 남성(손님)이 여성의 가슴을 만지고, 호스트바에서도 남성(호스트)이 여성(손님)의 가슴을 만진다. 그리고 조금만 친해지면 손님인 여성이 호스트인 남성을 오빠라며 대우한다. 그러면서 돈은 여성이 낸다. 어떻게 보면 손님이 즐기는 게 아니라 남성이 즐기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심지어 마음에 안 들면 욕설과 폭행을 하기도 한다. 룸살롱이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바로 사장과 지배인 등이 달려와서 백배사죄해야 할 일이었건만, 호스트바에선 사장이 코빼기 한 번 비치지 않는다. 또 호스트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잘 나가는 텐프로였던 지원은 경력이 쌓이면서(나이가 먹음) 안마시술로의 창녀로까지 위치가 격하된다. 몸을 파는 남자와 몸을 파는 여자는 같이 몸을 파는 직업인데도 이후 삶의 궤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영화에서는 흥미로운 폭력 장면이 두 번 등장한다. 한 번은 승우가 길거리에서 지원을 폭행하는 장면이고, 또 한 번은 재현(하정우)이 미선(윤아정)을 폭행하는 장면이다. 어쩌면 호스트라는 직업과 마초, 남성 폭력이라는 이미지는 좀 상반된 듯 보인다. 마초적 남성이 어떻게 여성의 술접대를 하며 그 대가로 돈을 받아 생활한 단 말인가.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이 윤 감독의 전언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승우의 친구가 룸살롱에서 승우에게 한 말이 일반적으로 호스트에 대한 이미지일 것이다. "남자 새끼가. 그렇게 할 게 없어서 그런 걸 하냐?" 그렇다. 호스트는 남자라면 해서는 안 될, 또는 남성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직업이라는 것이고, 일종의 거세 이미지를 주게 된다. 마치 여성들만 있는 내실에도 출입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의 내시들처럼.
그런데, 오히려 이들이 그 현장을 벗어나면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폭력적인 남성이 된다는 것인데, 이는 남성으로서의 자존심에 상처가 난 데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폭력행사, 일종의 컴플렉스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승우는 지원과 알게 된 초반에 "오빠,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얘기한다. '그런 사람'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선 '남자 새끼가 해서는 안 될 직업'이라는 의미가 분명히 내포되어 있다고 보인다.
윤종빈 감독은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남성 폭력의 순환구조를 군대의 경험을 통해 얘기한 바 있으며, 이번 <비스티 보이즈>에서도 남성 폭력의 구조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어쩌면 윤 감독은 '왜 남성은 여성에 비해 폭력적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건 아닌가 싶다.
※ 영화에는 두 번의 꿈 장면(한 번은 편집)이 등장한다. 승우가 지원과 같이 자다가 갑작스런 악몽에 흐느끼며 잠을 깬다. 그러고선 '왜 혼자 사는 여자가 칫솔이 많냐'며 울먹인다.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킬킬대며 웃었다. 남성의 의심에는 참 여러 가지가 문제가 되는 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을 것인데, 대체 무슨 꿈이었기에 승우는 잠을 깬 것일까? 실제로 촬영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감독이 생각한 꿈 장면은 지원의 침실 문에 많은 남자들이 칫솔질을 하며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꿈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 꿈은 승우의 어머니가 하는 보석상에서 지원에게 목걸이를 사주는 장면인데, 이름과 목소리는 같지만 얼굴은 다른 지원이 등장한다. 한 언론의 인터뷰에 의하면 윤 감독은 실제로 사람들이 꿈을 꿀 때,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인데, 얼굴은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경우를 상정했다고 하고, 지원에 대한 불신 등의 표현이라고 한다.
※ 하정우의 호스트 연기는 그 기가 막힌 능글능글함에서 보이듯이 '역시'란 말이 나올 정도다. 한 기사에서 보니 실제 호스트들이 이 영화를 보고선, 하정우가 호스트 출신 아니냐는 의심을 할 정도라고 했다는데, 차기 한국의 대표적 연기파 배우로서의 성장이 기대된다. 그리고 GOD 출신 윤계상의 연기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가수 출신 배우(특히 아이돌)에 대한 선입견이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윤계상의 연기는 매우 훌륭했다. 이제는 굳이 가수 출신 배우가 아니라 그냥 배우라고 호칭해도 좋을 듯 싶다.
※ 윤종빈 감독은 전작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는 사람을 두 명이나 자살시키더니, 이번에도 역시 죽음이라는 파국으로 영화의 마무리를 장식한다.(이 장면 뒤에 또 다른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실제 영화는 여기서 끝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뒷부분은 정말 사족이다.) 굳이 죽음이라는 파국으로 결말을 내야했는지, 좀 의아스러웠다.
※ 영화는 전체적인 짜임새에서는 떨어진다. 그건 윤계상과 하정우의 캐스팅에 따른 문제였을 것이다. 영화는 마치 몇 개의 에피소드가 그저 나열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승우와 재현의 이야기가 서로간의 긴밀한 연관 하에 진행되지 못하고, 비슷한 시간을 분배하듯이 이 얘기 보여주고, 저 얘기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승우의 얘기가 한참 진행될 때는 재현을 잊게 되고, 재현의 얘기가 진행될 때는 승우를 잊어버린다. 주연 배우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영화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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