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넘는 영화 역사에 한 획은 제대로 그은 작품이 있었다. 1999년 세기말에 개봉했던 영화 [매트릭스] 였다. 난 그 영화를 99년 5월 강남 신사동에 있던 지금은 없어진 [시네마천국] 이라는 극장에서 봤다. 본 후의 느낌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제껏 이런 영화는 듣도 보도 못했고 헐리웃 블록버스터에서 그런 심오한 내용을 쿨하게 담아낼지도 몰랐다. 그 이후 워쇼스키란 이름은 스필버그나 마이클 베이처럼 기대를 자아내게 하는 그런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들 형제(지금은 남매이지만)의 작품 매트릭스 2,3는 약간 미흡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제 매트릭스를 벗어난 새로운 작품 [스피드 레이서]가 나왔다. 이번에도 일본 만화 [마하 고고]가 원작인 워쇼스키의 작품은 역시나 현란한 이미지의 향연이 가득했다. 총 천역색의 알록달록한 화면, 만화도 아닌 것이, 실사도 아닌것이, 뭐라 한마디로 설명짓기 힘든 화면, 이제껏 다루어졌던 레이싱 영화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액션씬들.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선 분명 워쇼스키의 작품다웠다.
또한 우리나라의 비나 박준형, 일본의 사나다 히로유키, 중국계 배우, 유럽과 미국을 망라한 다국적 출연진 등 이 작품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혼합하는 워쇼스키 감독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저 거기에서 끝이다. 너무나 아쉽게도 말이다.
매트릭스 3 레볼루션의 국내 포스터 카피는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였었다. 마치 그 카피를 복사한듯한 '당신의 상상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라는 카피를 들고 나왔지만 애석하게도 이 영화는 매트릭스가 가져다 준 충격의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한다. 미국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대한민국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은 결코 아니다.
왜냐고? 일단 이 작품에는 등장 인물이 너무나 많다. 작품 제목인 스피드 레이서(주인공 이름이다) 가 메인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 예를 들자면 그의 형, 아버지, 어머니, 또 다른 조직, 비가 분한 태조 토고칸 등등..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내다 보니 누구에게 집중해야 할 지 이야기가 혼란스럽다. 최근 엄청난 흥행몰이 중인 아이언 맨이 아이언 맨에 초점의 80% 이상이 집중되어 있는 것과 비교하면 산만하다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오색천연한 알록달록한 화면은 시각적 쾌감을 전달하기 보다는 시각적 피로감을 더해준다. 이것은 클로버 필드의 흔들리는 화면이 짜릿함을 유발하기 보단 구토를 유발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또한 우리 관객들에겐 그닥 흥미가 떨어지는 레이싱이라는 소재, 일본색이 잔뜩 묻어나는 분위기 또한 우리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소재가 못 된다.
한국 관객들에게 이 작품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아마 '비'가 비중있는 조연으로 등장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직접 작품을 본 바로는 비는 생각보다는 비중이 크다. 하지만 만족스럽진 못하다. 역시나 서양인이 바라본 동양인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얻어터져 코피를 줄줄 흘리고, 서양인의 도움을 받아 살아나고, 우승은 하지만 역시나 다른 서양인들의 도움으로 얻은 승리요, 영어 발음은 나쁘지 않지만 대사는 짧기 그지없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순 없겠지만 '비'만 기대하고 이 영화를 보기엔 2시간 20분 가까이 되는 런닝타임이 부담스럽다.
결론적으로 살짝 비추다.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하게 될 것이고, 그냥 비디오 게임을 스크린으로 본다거나 비가 외국영화에 비중있게 출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을 수준이다. 아 한가지 팁. GOD 출신의 박준형이 영화 종반부 잠깐 등장한다. 대사는 전혀 없고 단 4컷 등장하는 것에 그치지만 우리 관객들에겐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겠다. 특히나 폭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그 다리 쩍벌린 자세. 기대해도 좋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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