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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불량이 되더라도 먹고 싶을만큼 탐나는 그들 각자의 영화관
bistar 2008-05-13 오전 12:50:18 9006   [14]

2007년 칸 국제 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로 역대 칸 수상 감독 35명이 만들어낸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 1년 만에 우리나라에 도착했다.
칸이 사랑하는 감독 35명이 만든 33편(다르덴 형제, 코엔 형제가 각 한 편씩 제작했기에 33편)의 각 3분 남짓의 단편들은 감독들의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그들에게 있어 극장과 영화는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게 한다. 동시에 관객들에게 있어서 극장, 영화는 어떤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것이 60주년을 맞았던 칸의 의도였을 테다.

3분이라는 지상과제 하에 만들어진 그들만의 영화관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신기했다. 그 어느 것 하나 평범한 작품이 없고 3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도 2시간 남짓 되는 영화 속에서 느꼈던 감독들의 성향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참여한 감독들 리스트를 보고 그들의 영화 성향을 생각해본 후 영화를 만나면 마치 닮은 것들을 선으로 이어 긋던 초등학교 문제집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이건 이 감독의 냄새가 나는 걸’ 하면서 영화를 보다가 끝에 나오는 감독의 이름을 확인하는 재미, 그것이 이번 프로젝트가 관객을 능동적으로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작품은 보지도 못했고 이름만 익숙한 감독이 있다면 앞에 나온 감독들을 제외하고 남은 카드 중에 국적 등을 고려하여 추측해보는 재미도 있고 같이 보러 간 사람들과 내기를 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


3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허락하면서 감독들을 괴롭힌 의도 안에는 좀 더 자유로운 표현을 주어진 시간 안에 해보라는 괴짜 의식도 담겨있을 듯 한데 결과적으로 33편의 작품이 2시간 안에 모두 소화되는 모습은 ‘2시간 남짓’이라는 극영화의 틀을 너무 지나치게 의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2시간 남짓이라는 기준에 맞추느라 35명으로 감독도 제한이 됐고 리스트를 보자니 꼭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감독만 선정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한국의 감독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이런 시간의 제약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반 영화의 딱 3분만을 보여주는 듯한 롱테이크를 찍다가 ‘3분 됐다’는 사인과 함께 ‘컷’을 외치며 자신의 작품을 마무리 지은 시니컬한 느낌의 작품도 담겨 있다.

칸이 사랑하는 감독들의 집합은 사실 칸의 색채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럽색채 중심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피소드의 시작은 가장 많은 영화가 소화된다는 ‘발리우드’로부터 시작되지만 고다르와 펠리니에 대한 예찬이 가득하고 전반적으로 유럽 취향이다. 세계 3대 영화제가 모두 유럽의 영화제이고 출발이 ‘칸’이니 쓸데없는 트집 같지만 이 부분도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말이 3분이라 다행이지만 무려 35명의 명감독들이 담아낸 33편의 작품을 한꺼번에 보는 것이란 소화불량에 걸리기 딱 좋은 영화보기의 사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3분이긴 하지만 감독의 철학과 위트가 담긴 작품들을 연달아 본다는 것은 (살짝 과장하자면) 장편 33편을 연달아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화력을 요한다. 그래서 보는 과정은 흥미롭고 재미나지만 보고 나서는 작품과 작품의 장면이 섞이고 감독들도 뒤섞여버린다. 각자의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이 조합의 결과물이 한 작품으로 녹아들기를 바라는 의도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한 번의 관람으로 소화하기는 버거운 작품이다. 그래서 동시에 DVD라도 소장하며 생각날 때 조금씩 꺼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2시간을 할애하지 않더라도 3분이면 감독의 색깔을 그대로 읽어낼 수 있는 선물이나 다름없다.

이 초특급 프로젝트를 보면서 감독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이건 어찌 본다면 감독들의 3분짜리 자기 영화관(觀)에 대한 홍보물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밤거리와 가죽재킷이 펍과 어울리며 30초짜리 맥주 광고가 익히 주었던 반전을 선보이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이 감독의 세련미를 느끼게 된다. 극장에서 뮤지컬 영화를 보면서 뮤지컬 넘버를 인용해 사랑을 고백한 아버지와 그 노력에 넘어온 어머니,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자신과 영화와의 인연을 묘사하며 부모님에게 감사를 선보인 클로드 를루슈의 감성은 그의 여느 영화들처럼 감상적이다. 스산하고 폭력적이고 뒤끝이 있어서 나로 하여금 그들의 영화를 못 보게 만드는 우리의 ‘데이빗들’_데이빗 린치와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이 3분짜리 영화에서도 여전히 나와 타협하지 않는 그들 자신을 보여준다. 자신의 영화 <만덜레이>의 영화제 프리미어 장소인 듯한 곳에서 혀로 테러를 저지르는 평론가라는 작자를 망치로 짓이겨버리는 우리의 ‘킬러’ 라스 폰 트리에를 보면서는 데굴데굴 구르고 싶은 걸 억눌러야 했다. 특유의 코미디로 3분을 채우며 여전히 건재한 기타노 월드를 선보인 다케시 아저씨와 살짝 아부근성처럼 보이긴 했으나 끝내주는 랩으로 칸 60주년 축하송을 보여준 월터 살레스의 단편은 살짝 지루한 순간에 발로 흥겹게 박자를 맞추게도 했다. 여전히 ‘화양연화’와 ‘그녀의 숨결’의 세계에 몰입한 왕가위는 여전했고, 도대체 이 사람의 시선이 머물지 않는 곳은 어딜까 싶은 빔 벤더스의 觀도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3편은 난니 모레띠와 로만 폴란스키, 유세프 차이엔의 작품이었다. 직접 등장해서 헐리웃 영화부터 망라한 수다로 대중적 호응을 이끌어낸 난니 모레띠의 역시나 그다운 수다와 일기로 풀어낸 ‘그의 즐거운 영화관에 대한 일기’와 미성년자와의 성추문이 여전히 아킬레스 건인 듯한 로만 폴란스키가 그런 시각을 보란 듯이 뒤엎는 ‘극장에서 에로 영화보기’는 전 극장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 정도로 굉장한 재미를 선사한다. 칸에 첫 진출했던 40여년 전 자신의 경험을 담아낸 유세프 차이엔 감독의 솔직하면서도 위트 있는 작품은 그의 작품을 단 한 편도 보지 못한 나에게 감독과 작품에 호기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감독들의 작품들을 찾아 보고픈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는 매우 훌륭한 홍보물과 같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도대체 코엔 형제와 마이클 치미노의 작품이 나왔었는지 모르겠고 첸 카이거와 장이모우의 작품이 헛갈린다. 시대가 사랑하고 칸이 극찬한 감독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만나는 건 장편이든 단편이든 역시 소화불량감이었다. DVD가 나오면 꼭 소장하고 틈날 때마다 다시 꺼내봐야겠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극장이라는 곳은 참으로 각별하다. 영화와 제대로 만나게 하는 특수한 공간인 그 곳은 단순히 ‘극장’이라고 표현하고 그치지 못할 만큼의 엄청난 요소들을 관객 개개인에게 심어주는 공간이다. 멀티플렉스가 아닌 단관 상영 시절에 극장의 매표소, 대기실, 그리고 각 극장마다 달랐던 팝콘 냄새, 의자의 느낌, 통로의 느낌 등은 극장이라는 것이 영화 이상의 가치를 지니며 우리 안에 자리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칸 국제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질 제이콥의 60주년 기획은 적절했다. 영화를 꿈꾸고 영화로 소통하고 영화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극장, 영화에 대한 표현을 하도록 장을 마련해 준 것은 그들 각자에게도 신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신나는 결과물을 보게 되는 관객에게도 이 기획은 큰 선물이 된다. 동시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생각해본다. ‘나의 영화관’은 어떻게 표현해보면 좋을까? 뭔가 창의적인 표현방법을 나 역시 그들처럼 즐겁게 생각해보며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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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영화관(2007, To Each His Own Cinema / Chacun son cinema)
배급사 : (주)유레카 픽쳐스
수입사 : (주)유레카 픽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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