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사이버 범죄, 끔찍한 우리들의 자화상... ★★★
<킬 위드 미>를 보면서 인류 무기의 진화 과정이 떠올랐다. 아마도 최초의 무기는 인간의 몸 그 자체였으리라. 주먹, 발길질, 머리. 그러다가 돌멩이가 등장했을 것이고, 철기시대에 들어와서 쇠로 만든 칼이나 창이 무기의 주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 것이다. 오래 전 무기의 특징은 대부분 직접 상대를 찔러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어느 정도의 죄의식을 안겨 주게 된다. 총의 발명과 무기의 진화는 바로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이다. 사람을 죽이는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그것이 실제 내가 죽였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버튼 하나로 사람을 죽이는 세상.
이라크 전쟁은 그런 차원에서 보면 전쟁의 신기원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다. 최첨단 스텔스기의 조종사는 미국의 자택에서 아침에 부대로 출근, 스텔스기를 몰고 공중 급유기의 도움을 받아 대서양을 횡단, 이라크에 엄청난 양의 폭탄을 투하한다. 그가 투하한 폭탄은 이라크 군인들만이 아니라, 이라크 어린이들을 포함한 많은 이라크 민간인들을 죽인다. 그렇게 자신의 임무를 끝낸 스텔스기는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돌아온다. 아침에 출근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조종사는 저녁에 아내, 아이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며 힘들었던 하루(?)를 마감한다.
마치 컴퓨터 게임을 보는 듯한 화면으로 폭탄을 투하한 조종사가 죄의식을 느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이버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리플 전쟁은 어쩌면 이라크 전쟁보다 더 끔찍한 방향으로 진화한 살인 도구일지도 모른다. 잔인한 살인 현장에 생중계되는 사이트. 접속자가 많아질수록 더 빨리 죽게 되는 구조인 이 사이트에 몰려든 수많은 접속자들 중 대다수는 그저 구경꾼에 불과할 뿐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고작 나 한 명 더 접속했을 뿐인데...’ 사실, 대부분의 뻘글, 낚시글들이 베스트에 올라오는 것도 이런 심리의 일환이다. 그래서 이런 글에 대한 최선의 방지책은 무관심, 무플이 된다.
살인 사이트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자들은 좀 더 자극적 영상을 원하고, 왜 살려뒀냐며 살인자를 책망한다. 이들에게 UCC로 생중계되는 살인은 그저 게임에 불과하다. 단순 구경꾼들은 잔인한 리플을 보며 이들을 책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사이트의 특징은 단순한 구경꾼들조차 살인의 공범이 되게 한다는 점이다. 구경꾼들도 분명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되뇌인다. ‘나 하나뿐인데, 어때’
<킬 위드 미>가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명확하다. 사이버 범죄에 무감각해지는 네티즌들의 추악한 이면에 대한 폭로이며, 그런 무관심과 동조가 결국 자신들의 피해로 연결된다는 점을 강도 높게 경고한다. 전혀 무작위로 선정된 듯한 피해자들은 범죄자의 면밀한 검토에 의해 선정된 피해자들이다. 그들이 실제 살인을 저지르거나 범죄 행위를 벌인 건 아니다. 그들은 끔찍한 사건의 단순한 방관자 또는 퍼 나르기 했을 뿐이다. 그러나 영화는 방관자라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그것도 매우 잔인한 영상으로 보여준다.
꽤 긴장감 있게 진행되는 <킬 위드 미>의 살인 장면들은 정확하게 <쏘우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물론, <쏘우>의 살인기계들은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킬 위드 미>는 스스로의 의지로는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쏘우> 식의 잔인함이 싫다. 같은 이유로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천천히 보여주는, 그래서 너무도 생생한 <킬 위드 미>의 살인 장면도 꺼려진다. 잔인한 살인 장면이 주제 의식을 좀 더 강하게 부각시킬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로 좀 더 많은 계층이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되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킬 위드 미>에서 흥미로웠던 것 두 가지. 여기저기서 한국과 관련한 얘기들이 나온다. 아마도 영화의 소재상 IT 강국인 한국이 거론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범인이 죽었을 때, 살인 사이트의 게시판에 범인이 죽었음을 안타까워하는 리플들이 달린다. ‘천재가 죽었다’는 등의 리플들. 이 마지막 장면을 보며 미모를 자랑하는 어떤 여성 범죄자의 사진이 공개되었을 때, 많은 네티즌의 반응이 떠올랐다. ‘이렇게 예쁜 여성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리 없다’ 는 등의 반응들. 심지어 여성 범죄자 팬 카페까지 등장하곤 했다. 살인 사이트에 대한 영화속 반응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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