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다. 그래도 정의감에 불타는 강철중은 좀 어색... ★★★★
2002년 선을 보인 <공공의 적>의 강철중은 한국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꼽힌다. 이건 나 개인의 단순히 주관적 선정이 아니라 많은, 그리고 다양한 설문조사를 통해 인정받은 사실이기도 하다. 도대체 강철중의 매력은 무엇인가. 강철중은 결코 ‘굳 캅’이 아니라 ‘배드 캅’이다. 범인 검거 실적도 변변찮은 그는 많은 뒷돈을 받아 챙기며, 우연히 획득한 마약을 팔려고 감춰 놓는 아주 질 나쁜 경찰임에 틀림없다. 존속살해범인 이성재에 대한 그의 분노도 순수한 정의감의 발로라기보다는 자신의 얼굴에 칼 그은 놈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 직접적인 동인이다.
그런 강철중이 인정받는 건 오직 하나, 단순 무식함에 근거한 진돗개 습성이다. 한 번 물면 결코 놓치는 법이 없는 집요함으로 인해 그나마 경찰 신분을 유지하는 지도 모른다. 그런 강철중이 6년 만에 귀환했다. 물론 중간에 <공공의 적 2>가 나오긴 했지만, 검사 강철중은 관객과 평단에 외면 받았다.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그 매력적 캐릭터를 검사라는 반듯한 틀 속에 가두어 놓았으니 성공할리 만무했다.
그래서 이번 영화의 제목도 <공공의 적 3>이 아니라 <강철중 : 공공의 적 1-1>로, 2편은 건너뛰고 1편의 적자임을 공식화하고 있다. 그럼 현재의 강철중은 6년 전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는가. 1편의 마지막 장면을 돌이켜보면, 강철중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내사과 경찰은 “강철중, 많이 좋아졌다”며 평가했고, 그런 평가는 6년이 흐른 현재에도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뒷돈을 받는 모습도 없고, 무조건 두들겨 패는 모습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강철중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여러 조건들이 있었을 것이다. 우선 1편에선 전혀 보이지 않았던 강철중 가족의 존재감. 특히 아버지를 삼촌이라 하고 싶은 딸 미미는 강철중이 자제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거기에 사회적으로 비리를 엄단하는 분위기 등이 한몫했을 터인데, 그럼에도 과잉 수사로 징계를 받는 중인걸 보면 단순 무식함은 여전하다.
결론적으로 6년 만에 귀환한 <강철중>은 오락 영화로서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아무리 얌전해 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시시껄렁하고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설경구와 장진의 페르소나인 정재영의 대립은 재미의 보증수표이며, 잠깐 나오지만 문성근의 카리스마는 말할 것도 없고, 1편에 이어 일종의 카메오로 등장한 유해진과 이문식은 재밌는 카메오란 이런 것이라는 정답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엄 반장 역의 강신일과 김 형사 역의 김정학의 비중도 1편에 비해 크게 늘었으며, 특히 대선배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은 당당함을 보여준 연제욱은 앞날을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1편의 특징들을 연상하게 하는 이야기 흐름도 전체적으로 매끄럽다. 1편에서 슬쩍 지나친 이성재의 손톱이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듯이 이번엔 별 것 아닌 듯 보였던 연제욱의 핸드폰 동영상 촬영 습관이 결정적 증거로 작용하며, 강철중 대 이원술이 싸울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자연스럽게 이끈다.
영화는 상영 내내 강우석과 장진의 유머 감각이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며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런 시도에 웃음으로 반응한다. 아무래도 설경구의 유머는 강우석의 것이며, 정재영의 유머는 장진의 것인 냥 느껴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공공의 적>이라는 제목에서 설경구의 강철중이 뚜렷하게 각인되었다면, <강철중>이 제목인 이번 영화에서는 정재영의 이원술이 인상 깊게 남겨진다. 정재영은 보통 영화 속 깡패들이 오버스런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실제 서울에서 오래 생활한 전라도 깡패들의 말투로 현실감을 살렸으며, 아들을 데리고 가족 농원에 가는 가정적 모습과 어린 학생들에게 칼을 쥐어주는 비열한 모습을 동시에 잘 그려내고 있다. 거기에 문성근을 만나고 나오면서 후다닥 차에 타고 도망가는 등 코미디적 상황에서 발군의 감각을 발휘한다.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딸 눈치를 보느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사회 여건이 바뀌어서 그런 것인지, 과도한 정의감에 사로 잡혀 있는 강철중을 본다는 건 좀 어색하긴 하다. 그리고 사회 정의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강우석 감독의 직설적 주장이 강철중의 입을 통해 나오는 건 마치 <강철중의 한반도>를 보는 듯한 부담감을 안겨 준다. 강철중이 굳이 어린 학생들을 비열하게 이용하는 사회를 비판하지 않더라도 관객은 충분히 영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지금보다 조금만 어께에서 힘을 뺀 강철중, 그 모습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