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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모든 걸 보았는걸요. 어둠 속의 댄서
asura78 2001-02-17 오후 8:18:01 1076   [3]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소문은 무성한데 이제 이 곳에서는 당신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전 당신의 얼굴만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옵니다. 내가 남자라는 젠더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정말로 펑펑 울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 극장문을 나서면서 그런 약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 흘릴 눈물은 내 마음속에 간직한 체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오늘로서 당신의 이야기를 두 번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넘어갔던 것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것들이 내 시각을 점령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전 그제야 그녀를 마음 편히 다른 세상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눈을 뜨고 당신의 모습을 지켜보았지만,두번째 볼 때는 눈을 감고 소리만 들은 체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가끔 저의 두 눈에 비친 일들이 현실이 아니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그래 이건 꿈일 거야 하고 넘어가고 싶은 일들이 요즘 따라 너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은 당신이 겪은 일들과는 비교 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전 고작해야 연애문제, 직장문제이니까 말입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하고 원망의 목소리를 하늘에 매일 같이 띄우지만 하늘은 그것을 들으려고 조차 않았습니다.

전 당신처럼 시력을 잃어간다면 미쳐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보던 모습들의 이미지가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전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저의 눈은 눈물을 흘리는 일밖에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눈물로서 저의 마음을 표현하고, 점점 희미해져가는 사물들의 모습을 눈이 간직한 예전의 기억들을 되살려서 음미하겠지요.

여기 셀마라는 한 여자가 있습니다. 체코에서 이민 온 셀마는 시골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셀마에게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의 앞을 못 볼 정도로 시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셀마는 회사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서 시력검사표를 외웁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낮에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야간작업까지 하겠다고 합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점점 시력을 잃어 가는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었던 이웃 빌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빌은 셀마의 돈을 훔쳐 갑니다. 빌이 셀마의 돈이 든 상자를 지켜보는 장면에서는 정말 내 눈을 잠시 그에게 빌려 주고 싶은 충동이 들기까지 합니다. 자신의 돈을 찾으러 갔던 셀마는 얼떨결에 그에게 총을 겨누게 되고 그녀는 일급 살인죄로 교수형에 매달리고 마지막 노래를 부르며 숨을 거둡니다.

이미 예정된 결말을 지켜보는 걸 상당한 고통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우린 셀마의 미래를 알고, 미리 과거도 보았기 때문에 그 슬픔은 배가 됩니다.셀마는 그런 현실 속에서도 결코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뮤지컬의 배우가 되어서, 보이지도 않는 영화 속 뮤지컬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을 것입니다. 물론 세상은 이렇게 이용해 먹기 쉬운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지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시킨 후 쓰레기통으로 버려 버립니다. 이 세상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나 잡아먹어라'라는 말을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무모한 주인공의 처지에 우린 할 말을 잃게 되지만, 그녀의 삶에 완전히 동화되고 그 주인공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처럼 슬퍼하게 됩니다. 우리 삶은 시작부터 어둠 속에서 시작합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몇 개월 동안 있으면서 이제 어둠이 지근지근하면 빛을 보기 위해서 응애응애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세상이라는 곳이 뱃속에서 생각했던 것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어릴적에는 울음만 터뜨리면 만사가 해결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었던 걸을 알게 되었지요.

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에서 불행을 몰아내고 오직 행복만을 남기고 싶다고 욕심을 부려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속에서 불행을 찾는 것은 눈감고도 찾을 수 있어도 행복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 보다 왜 더 힘든 것일까요. 그리고 가끔 삶을 그냥 포기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건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야 하는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누군가를 위해 흘릴 눈물이 아직까지 내 눈에서 생성되는 걸 보면 저도 사람이긴 사람이나 봅니다. 셀마처럼 저도 눈을 감고..몇 분 동안 이 세상이 보여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려 보았습니다.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 소리들이 내 눈앞에서 하나의 영상을 만들어냈습니다. 24년간 두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했던 그 세계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고 .. 그 순간 전 어둠속에서 희미한 빛을 발견했습니다.

사족

개인적인 비극과 절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시각장애자였던 작가 밀튼은 '보지 못 했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다.불행한 것은 보지 못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지요.(그런데 정말 우리는 살아가면서 비겁해 질때가 많습니다.불의를 보고도 그냥 내 일이 아니라고 넘어가 버립니다)

사람들은 매력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과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차이는 그들이 처한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가짐에 있다고 말합니다.마음가짐은 우리의 삶을 채색하는 마음의 붓이고 우리가 원하는 색은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지만 정말 이 세상을 그런마음으로 살 수 있는지 궁금해 집니다.

웨스 크레이븐의 말이 생각납니다.'살아간다는 것이 공포영화 보다 더 공포스럽다'

(총 0명 참여)
pecker119
감사해요.   
2010-07-03 08:22
저두 한표!   
2003-07-14 19:27
멋진 평이군요... 동감합니다..   
2001-02-25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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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댄서(2000, Dancer In The Dark)
배급사 : 영화사 마그나
수입사 : 조이앤시네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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