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궤도'는 한마디로 지독하게 느리고 지루하게 응시하다 집요하게 주시하는 영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중반부에 졸았다가 끝까지 보았을 정도로 감상자체가 쉽지 않은 영화였는데, 이것은
대사가 없기 때문이 아닌 너무나 단순하게 구성된 영화형식에 기인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므
로 본인은 '궤도'를 카메라가 주도하는 드문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감독은 영화 속 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카메라의 위치변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
졌다. 흥미로운 것은 말없음으로 일관하며 끌고 가는 이 영화에서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변화
하는 과정이 인물의 행동뿐 아니라 대상을 잡는 카메라의 위치로도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는 걸 느꼈고, 남녀의 심리적 단절을 물리적 거리와 위치로 꾸며낸 영화는 외로움과 그리움
이 곁치는 가운데 사랑과 애증이 뒤범벅되는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멜로드라마를 아련한 연변
의 초록 위에 펼쳐놓기에 이른다. 온전한 대사하나 없을지라도 낯익은 연변의 풍광은 끝 모를 지
루함을 상쇄시켜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분명 어디선가 보았을 법한 너무나 평범해서 지루하
고 그럼에도 자꾸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초록과 나지막한 언덕아래의 풍경들. 그러나 이것은 우
리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일반인들의 낭만적 상상적이 그려낸 전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
러므로 감독이 선택한 배경이란 겉은 연변이로되 몇몇 장면을 뺀다면 세상 어디라고 해도 무방
할, 인간을 둘러싼 보편적 삶의 환경에 다름 없다. 어쩌면 본인이 '궤도'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인물들의 내적 변화와는 무관하게 변함없는 푸름을 보여주었던 어느 마을 풍경 때문이었는
지 모른다. 말 한 마디 없이도 이어지는 감정의 파동과 지루한 동어반복적 카메라 워크에 오기
가 나서라도 눈 부릅뜨고 영화를 보는 정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반복적 영상이 부리는 마법이
라고 말할수 있는 영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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