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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하다.. 정말 암울하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
ldk209 2008-07-30 오전 10:16:02 2118   [4]
암울하다.. 정말 암울하다....

 

우리에겐 6월 항쟁의 열기로 들끓던 1987년. 차우셰스쿠 정권에 의해 낙태가 금지된 루마니아는 혁명 2년 전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한 방에서 20대 초반의 나이로 보이는 두 여성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한 여성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이것저것 챙긴다. 담배, 돈 등을 챙기고, 혹시 시험 준비를 해야 될지 모른다며 노트를 가져가야 할까 고민한다. 그리고는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상점으로 가는 대신에 같은 건물의 친구들에게 간다. 생필품이 부족한 현실. 대체 어디를 가기에 물건을 챙기는 것일까?

 

시놉시스를 보지 않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봤다면 당연히 이런 의문들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경쟁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고, 따라서 의외로 많은 사전 정보들이 입력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대단한 밀도를 자랑(?)한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회이기 때문인지, 영화를 통해 제공되는 많은 정보들을 소화하기에도 벅차다. 그런데 그게 사실일까? 과연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회가 맞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영화에서 그려지는 루마니아의 과거는 우리의 과거와 겹친다. 호텔에 숙박하기 위해 신분증을 제시하고 왜 여기서 묵어야 하는지 이유를 대는 영화 속 루마니아가 이해되지 않고 갑갑함을 느꼈다면 얼마 전 우리에게도 동일한 과거가 있었음을 돌이킬 수밖에 없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여관에서 잠을 자기 위해서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서류에 숙박 이유와 행선지를 적어 넣어야 했다. 여관 주인이 생각하기에 조금만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경찰관의 방문을 받게 된다. 특히 혼자 묵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경찰의 방문을 받았다. 간첩은 주로 혼자 다니니깐. 그런데 그걸 아는 간첩이 정말 혼자 다닐까???? 길거리의 경찰들이 자와 가위를 가지고 있다가, 머리가 긴 사람들을 잡아서 머리를 자르고, 짧은 미니스커트의 여성들은 자로 재서 처벌한다는 걸 현재 시점에서 상상할 수 있을까. 아주 어릴 때이긴 하지만, 당시 풍경들이 떠오른다. 젊은이들은 경찰관을 피해 주로 뒷골목으로 많이 다녔다. 코미디가 아니라 진지하게 당시 풍경을 그려본다면 우리 사회도 루마니아 못잖게 암울했을 것이다.

 

임신을 한 가비타는 불법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해 물건을 챙기는 중이다. 가비타는 조금 어수룩하고 겁이 많다. 친구인 오틸리아는 이런 가비타가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친구를 위해 대신 불법 낙태 시술자를 만나고, 호텔을 예약하느라 뛰어 다닌다. 그런 오틸리아에게 불법 낙태 시술자 베베는 한마디로 끔찍하다. 최악과 차악의 선택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심지어 그 끔찍한 베베는 돈이 아니라 오틸리아의 젊은 육체를 원한다. 그리고 오틸리아는 남자 친구 어머니의 생일잔치에도 가야 한다.

 

영화는 이렇듯 오틸리아를 거듭된 수렁 속으로 밀어 넣는다. 영화를 보다 ‘참, 의외다’라고 느낀 건 영화가 실제 임신을 하고 낙태 시술을 받는 가비타가 아니라 오틸리아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영화가 쉽게 가고자 했다면 가비타에게 앵글을 맞췄을 텐데, 문주 감독은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오틸리아는 마지막으로 가비타로부터 분리된 태아를 처리해야 한다. 어두운 길거리를 헤매는 오틸리아의 등을 바짝 붙어있는 카메라. 이를 통해 보는 거리는 어둡고 불안하며 흔들거린다. 이건 바로 오틸리아의 심정이며, 아마도 거의 자연광에만 의지한 듯한 질감을 드러낸다.

 

크리스티앙 문주 감독은 차우셰스쿠 독재 치하의 여러 특징들 중에서 불법 낙태 시술을 선택했고, 영화는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듯 암울하다. 내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로 암울하다. 그런 혼란과 암울한 정서는 대부분 오틸리아에게 집중되며, 이런 점에서 오틸리아는 신애(밀양)의 또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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