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초반, 애정없는 남편에게 면회를 가고, 시어머니에게는 그 면회가 그들의 대를 이을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순이(수애)는 그래도 그 모든걸 순종하듯이 따릅니다. 요즘 시대사람인 저를 포함한 관객들은 누가 저러고 살아?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너무 구닥다리식 영화를 떠올리게하는 영화초반에 살짝 불만을 가졌습니다. 배경이 베트남전이 벌어졌던 과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부감이 들었죠.
그러나, 이후에 순종하기만 했던 그녀가 남편을 찾아 베트남으로 가면서부터 영화는 흥미로워집니다. 이전까지는 정말 고리타분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설정은 모두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더욱 부각시키기위한 설정이었습니다. 순이는 남편을 만나기위해 위문공연단에 들어가고, 베트남의 호이얀까지 가기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둘씩 감춰졌던 자아의 속꺼풀들을 벗어내기 시작하고 변해갑니다.
이 과정들은 흥겨운 노래들과 함께 볼만하고, 리얼감 넘치는 볼만한 전쟁씬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영화에 빠지게 합니다. 사실, 보다보면 그다지 큰 내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말이죠.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특징이자, 이준익 감독님 영화의 특징입니다. 동성애를 내세운 왕의 남자를 빼고는, '라디오 스타'나 '즐거운 인생'등의 영화는 사실 소재만으로는 그렇게 끌리지 않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본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인해 서서히 관객들은 모였습니다. 이번 영화도 그랬죠. 블럭버스터 시즌에 과거배경, 사랑얘기 등의 설정은 그다지 끌릴만한 내용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번 영화 역시 보게되었고, '최고다!'라는 말이 나오는 영화는 아니지만, 이번에도 관객들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영화임을 느끼고 나왔습니다.
다만, 중반의 흥겨운 위문공연씬, 리얼한 전쟁씬, 순이에서 써니로 변화해가는 과정 등은 모두 재밌고 볼만했지만, 정작 마지막 장면의 엄태웅과 수애가 만나 전쟁 한복판에서 서로 울면서 정지된 사진처럼 끝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더욱 아리까리하게만 했습니다. 분명히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라고 노래를 부르는 써니의 모습은 자신의 서방에게 하고싶은 말인것 같은데, 그렇다고 영화의 내용을 쫓다보면 둘이 없어 못죽을 정도의 애정을 느낄만한 사랑의 이야기라는 느낌도 못 받았습니다.
남편은 자신에게 애정을 못느끼고 월남에 훌쩍 간 사람이고, 영화상으로만 보면 초반 써니의 남편에 대한 애정도 크게 못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비록 남편을 찾아 떠나게된게 시어머니에 떠밀려서라는게 크긴 했지만, 그녀가 그 긴 여정을 하면서까지 전쟁의 한복판에서 이런저런 댓가를 치르면서까지 남편을 찾아 부른다는게 선뜻 이해가 되진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다 그러고 살면서 정이 든거다, 그 긴 여정을 하다보니 남편에 대한 애정이 더 강해졌다고 하면 할말이 없지만말이죠...
오히려 영화의 대부분은 순종스럽던 써니가 위문공연단에 들어가면서 노래를 좋아하는 그녀의 본성답게 그녀의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이 훨씬 더 흥미롭고 재미있었으며, 왠지 영화도 그것을 어느정도 보여주는듯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장면을 그렇게 못 박음으로써 일종의 사랑이야기, 그것도 부부 내미가 둘 다 월남까지 돌아돌아 생고생을 하면서, 이제서야 서로 눈물을 흘리며 뭔가를 깨닫고 느낀것 같다는 그들의 '길고 긴 월남돌아 끝낸 부부싸움'같은 느낌은 지울수가 없었습니다.
써니의 자아찾기 여정과 그녀의 사랑찾기, 그리고 그녀를 통해 하나둘씩 온정을 느끼게되는 그녀의 신비로운 치유능력. 그녀의 노래는 전쟁한복판에서 밴드를 살리고, 군인들의 사기를 살리고, 치유의 능력이 있는 신비로운 노래로 그려집니다. 영화를 보면서 예전 애니메이션중에 '마크로스'라는 애니에서 노래가 가진 힘으로 전쟁을 종식시킬만한 힘이 있음을 그려낸게 생각나더군요.
결국 저는 영화를 재밌게 봤음에도, 뭔가 불분명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슴도 뭉클하고, 볼만도 했는데, 결국 이 영화의 정체성, 혹은 이준익 감독님이 주로 하고싶었던 얘기가 무엇인지 확실히 못 잡겠더라구요.. 사랑, 그리고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고싶었던 얘기는 맞는것 같은데, 사랑얘기라고 치기에는 그들의 사랑이 그렇게 애절할만하다고 느끼지 못했고, 사람얘기라고 하기엔 너무 광범위하고, 제목이나 마지막장면을 봤을땐 사랑얘기인 건 확실한것 같고...감독님의 말하고자 바가 조금은 아리까리했습니다..
바로 앞에 앉아있지만 마음은 닿을수 없을만큼 너무 멀어 '님은 먼곳에', 이제는 몸마저 너무 멀어져버린 월남에 있기에 '님은 먼곳에'. 신파적 내용전개에 그 설득력마저 약하지만,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릴수 있는 힘은 가진 영화입니다. 재미도 있고 볼만도 하지만, 뭔가 잘 모를듯한 감정, 하지만 아스라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그러한 감정선만이 주로 남았던 영화가 바로 '님은 먼곳에'였습니다. 감정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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