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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무겁고, 진지한 슈퍼히어로 영화라니.... 다크 나이트
ldk209 2008-08-06 오후 11:54:52 6298   [22]
어둡고, 무겁고, 진지한 슈퍼히어로 영화라니.... ★★★★☆

 

이 영화는 어둡고 무겁다. 실제 영화의 질감보다 더 어둡게 느껴지는 건 분명 히스 레저의 안타까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제일 놀라운 건 아이맥스로 찍었다는 거대한 액션장면도, 하늘을 유유히 떠다니는 배트맨의 날개도 아닌, 히스 레저와 크리스찬 베일, 이 걸출한 두 배우의 실제 모습이 가면 뒤로 완벽하게 감춰진다는 것이다.

 

‘진실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평론가부터 관객까지 <다크 나이트>에 대한 호평이 줄을 잇고 있다. 아마 최근 평론가와 일반 관객의 의견이 이렇게까지 일치단결(?)한 영화가 있었을까 싶다. 이 어두운 영화에 극찬이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조커 일당이 은행을 터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말하고자 함은 무엇인가. 그런 바로 혼란이다. 은행 강도들은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며, 이 과정에 은행 직원도 개입한다. 이 모든 혼란의 뒤에 ‘조커’가 있다. 사람들 사이의 의심을 증폭시켜 심리적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조커는 한마디로 순수한 악, 그 자체다. 조커가 악을 행하는 이유는 다른 범죄자의 그것과 다르다. 이유가 없는 범죄다. 그래서 그를 유혹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유혹할 수 없는 존재만큼, 욕심이 없는 존재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 그를 유혹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는 바로 ‘배트맨’이며, 조커는 어쩌면 배트맨의 어두운 면이다.

 

배트맨은 단연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중적 상황, 딜레마, 역설, 양면성의 상징이다. 범죄자를 처단한다는 선한 명제에도 불구하고, 배트맨의 존재 그 자체는 분명히 현대 법체계의 이단아이며, 사법 체계의 붕괴를 의미한다. 배트맨을 흉내 낸 자경단은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문제는 배트맨이 존재함으로서 고담시는 범죄자를 끌어 모으는 블랙홀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조커’의 등장은 배트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마치 밝은 햇볕 아래에 그림자가 만들어지듯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몇몇 인터뷰에서 이러한 상황이 미군의 이라크 주둔이라는 정치적 해석으로 가능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됐고, 감독 역시 그에 동의하고 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정의를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겠다며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존재, 그 자체가 테러를 불러오는 아이러니한 상황. 내한한 부시 대통령이 한국군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하니, 먼 나라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 자체가 무정부이며, 카오스인 ‘조커’는 영화 상영 내내 세상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 ‘투 페이스’는 인간 의지가 개입할 수 없는 동전 던지기로서 운명을 결정짓는다면, ‘조커’는 선택의 여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 선택이란 건 최악이냐? 차악이냐? 정도가 아니라, 어느 것을 선택한다고 해도 최악인 그런 선택들이다. 레이첼을 구할 것인가? 하비를 구할 것인가? 또는 흑인 갱들에게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선택을 강요하기도 하고, 배트맨의 정체를 폭로하려고 한 변호사의 죽음과 병원 폭파를 내걸기도 한다. 도시 전체를 향한 거대한 협박에 시민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되고, 조커는 서로의 배를 폭파시킬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한다. 조커가 증명하고 싶은 것은 한 가지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

 

배트맨이라고 이런 혼돈의 상황에서 자유로울 리 없다. 하비의 애인이 된 레이첼, 그녀는 더 이상 배트맨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면 자신의 옆에 남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브루스가 보기에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없어지면 더 큰 혼란과 범죄가 들끓는 고담시가 될 것이다. 정말 그런지 입증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배트맨을 없애겠다며 더 큰 악이 고담시를 위협한다. 배트맨은 강직한 경찰인 고든과 범죄와의 전쟁에 돌입한 하비에게 고담시의 미래가 있음을 확신한다. 둘이라면 배트맨이라는 가면을 벗어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비를 위해 후원회까지 열어주는 브루스 웨인. 여기에서 또 다른 정치적 의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좋은 지도자를 뽑으면 그 사회는 좋아지는가?’ 분명한 건 ‘나쁜 지도자는 그 사회를 확실히 나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도 6개월 만에 20년을 후퇴시킬 정도로. 그러나 그 반대는 잘 모르겠다. 나쁜 지도자가 사회를 나쁘게 만드는 것만큼 좋은 지도자는 그 사회를 좋게 만들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럼으로써 발생하는 정치적 무관심이 어쩌면 ‘조커’가 원하는 혼돈의 뿌리일지 모른다.

 

이 정도만 해도 이 영화의 주제는 슈퍼히어로 영화답지 않게 너무 무겁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선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배트맨은 고담시를 구하겠다는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든 시민의 휴대폰을 도청하는 범죄를 저지른다. 내부자의 반발이 있기도 하지만, 그건 조커를 잡아야 한다는 목적 아래 무시당한다. 또는 미뤄진다. 거기에 조커는 배트맨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배트맨의 결정이 미뤄질수록 죽어가는 시민들은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조커인지 배트맨인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비난은 서서히 배트맨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 틈을 조커는 놓치지 않는다.

 

‘어차피 너나 나나 사람들에게는 괴물에 불과해’

 

<다크 나이트>는 어둡고 무거우며 진지한 주제 의식이 감싸고 있는 슈퍼 히어로 블록버스터 영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보는 사람까지 어둡고 무거우며 진지해질 필요까지는 없다. 왜냐면 이 영화는 무엇보다 재밌기 때문이다. 도입부의 은행털이 장면부터해서 배트맨이 거대한 마천루에서 뛰어 내리는 장면, 망토를 펄럭이며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배트맨, 특히 대형 트레일러가 회전하며 뒤집히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이런 액션 장면은 아이맥스 필름으로 촬영했다고 하는데,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보면 차이를 확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엔 35mm로 촬영한 것과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것만은 사실이다.

 

거대한 액션장면과 함께 무엇보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인상적 연기가 압권이다. 모두가 죽은 히스 레저의 연기를 얘기하는데, 말 그대로 명불허전이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약간 입맛을 쩝쩝 다지듯 혀를 날름거리며 말하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뱀, 바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악의 화신 뱀의 모습이다. 태초부터 있어온 악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니. 폭탄이 늦게 터지자 약간 어리둥절하는 귀여운 모습까지도 끔찍하게 만드는 그의 연기는 말 그대로 소름이 끼칠 정도다. 거기에 시의 적절하게 받쳐주는 음향 효과는 긴장감과 공포, 혼돈을 배가시킨다.

 

영화를 보는 152분이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이 영화가 주는 몰입감은 대단하다. 어쩌면 이 영화는 별도의 하이라이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내내 조커가 만들어내는 혼돈 속을 해매면서 긴장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분명 허점은 존재한다. 이를테면, 배트맨은 총알이 박힌 벽을 잘라서 거기에서 지문을 찾아 아파트로 찾아와서 창문을 살펴본다. 그러나 조커는 그럴 줄 알고, 함정을 파 놓는다. 대체 어떻게? 사실 이런 부분에서 약간의 캐릭터 부조화가 일어난다. 조커는 분명히 악의 원천이자 미치광이로 그려진다. 그는 미치광이일 뿐만 아니라 거짓말쟁이(자신의 입이 왜 찢어졌는지를 설명할 때마다 달라진다)에 스스로가 혼돈 속을 헤매는 존재다. 그런데 그의 범죄는 대단히 치밀하여 1분 1초의 어긋남도 일어나지 않고 마치 창조주(!)처럼 모든 걸 통제한다. 그렇다. 그는 <다크 나이트>에서 분명 창조주요 모든 만물의 운행을 통제하는 신의 위치에 올라 있는 존재다. 그런데 그의 행동은 전혀 통제되지 않고 준비되지 않으며, 돌출적이라고 느껴진다. 그것 자체가 바로 조커라고 한다면 할 말없지만, 모든 걸 그렇게 정의내릴 수 있는 존재라니... 그토록 정의로운 검사가 사랑하는 애인의 죽음 앞에 또 다른 악의 화신인 ‘투 페이스’로 변신하는 것도 조금은 꺼림칙하긴 하지만, 모든 극과 극은 통한다는 명제로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그리고 알프레드가 브루스 웨인에게 들려준 버마 숲에서의 경험담은 관객의 예측을 빗나가도록 의도한 건 아닌가 한다. 알프레드는 귀중한 보석을 다 버린 범죄자를 어떻게 잡았느냐는 질문에 '숲을 태웠다'고 말한다. 숲을 태운다는 건 더 큰 혼돈을 의미한다. 즉, 조커조차도 놀랄 거대한 혼돈. 그러나 결국 조커가 유일하게 당황하는 순간은 인간들이 끝내 자신이 예상한 혼돈 속으로 빠지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응한 그 순간이었으며, 조커의 당황은 곧 검거로 이어진다. 버마 숲은 어쩌면 맥거핀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약간의 흠에도 불구하고 즐거움을 해칠 정도는 아니며, 영화적 설정으로서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일찍 죽어 영웅이 되거나, 오래 살아남아 악당이 되거나’

 

그 동안 나에게 배트맨은 팀 버튼의 배트맨이었다. 팀 버튼이 창조한 고담시와 배트맨, 그리고 조커, 펭귄맨, 캣 우먼은 놀랍도록 컬트적이고 비현실적이며, 그만큼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제 크리스토퍼 놀란이 창조한 고담시와 배트맨, 조커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놀랍도록 현실적이고 거대하다. 누구는 팀 버튼의 고담시와 잭 니콜슨의 조커를 뛰어 넘는다고 표현하지만, 뛰어 넘었다기보다는 새로운 창조라고 불러주고 싶다. 난공불락과도 같았던 팀 버튼의 세계를 뚫고 새로운 배트맨 세계를 창조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배트맨 비긴즈> 때만 하더라도 굳이 새로운 배트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크로스토퍼 놀란 감독이 배트맨 3편 제작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빨리 듣고 싶어진다.

 

※ 이제 와서 보면 히스 레저가 아닌 조커를 상상할 수 조차 없지만, 처음 조커 역을 로빈 윌리엄스, 폴 베타니,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욕심을 냈었다고 한다. 다들 연기라면 한가닥씩 하는 배우들인지라 이들이 만들었을 조커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특히 폴 베타니. 3편이 만들어진다면 이들 중 한 명에게 조커가 맡겨질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매기 질렌홀이 맡은 레이첼 역에는 에밀리 블런트, 레이첼 맥애덤스가 거론됐다고 하고, 아론 에크하트가 맡은 하비 덴트 역에는 맷 데이면, 휴 잭맨 등이 거론됐었다고 한다.

 

※ 이 영화가 미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올리면서 한국에서의 흥행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글쌔. 이 영화는 슈퍼 히어로 블록버스터라기보다는 시카고를 무대로 한 어두운 범죄 영화에 더 가깝다. 따라서 <스파이더맨>같은 슈퍼 히어로 영화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여지도 분명히 있다. 거기에 기존 한국 영화팬들의 성향 - 어두운 영화보다는 밝은 영화를 선호 - 을 고려해 보면, 미국에서만큼의 거대한 흥행은 힘들지 않을까.

 


(총 0명 참여)
ldk209
고맙습니다... ^^   
2009-01-01 01:49
pikax302
수많은 리뷰들중 저한테는 가장 잘읽힌 리뷰네요!   
2008-08-09 15:07
1


다크 나이트(2008, The Dark 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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